희곡 작가인 주인공 김인은 어느 날 기획자로부터 원고료를 선금으로 받고
상업주의적인 작품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는다.(헨리 밀러의 소설을 희곡 각색)
그러나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해 보려 해도 상상력이 작동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무의식의 심층 표현인 꿈속에서는 고양이로 상징되는 현실적 감시의 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포르노로 각색하고 있는 헨리 밀러조차도 순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강박적인 부정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한 김인은 창작이 막힐 때마다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는 타락한 신성에 대한 확인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그로 인해 그의 언어는 각색만을 반복할 뿐이다. 이러한 불능에 대한
참담한 강박관념에 자신의 중지를 잘라버리는 자해 행위로 비약한다.
그리고 15살 소녀 삼녀의 등장. 습작으로 희곡쓰는 걸 도와달라고 찾아온
삼녀. '무지개'란 작품을 쓰려는 그녀를 결국 절망과 욕망의 표출로
강간하고 자살을 유도하고, 그녀의 '무지개란 대본을 입수해 자신의
작품인양 재창작한다. 그 작품이 '해바라기'이다.
그리고 김인의 방화로 옆집 모녀들의 죽음, 그간 관계했던 여성들의
사체를 뒤뜰에 묻는 행위들이 밝혀지고 끌려가게 된다.
사체를 묻은 땅 위에서 '해바라기'가 자라난다.
장정일의 『해바라기』는 1996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지상 발표된 장막 희곡이다. 1998년 극단 ‘열린무대’에 의해 공연되어 ‘부산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다시 ‘전국연극제’에 출품되어 단체 장려상을 수상했다. 우화적인 배경과 공간, 풍자적인 독창적 스타일로 형상화된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포스트모던 드라마이다. 노골적인 성 담론과 교살 행위가 배경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종말론적 현실을 반증하기 위한 패러디와 패스티쉬를 앞에 드러내어 독자에게 표층적인 충격과 함께 심층적 난해함을 안겨 주고 있다. 극중의 작가는 무의식의 심층 표현인 꿈속에서 고양이로 상징되는 현실적 감시의 눈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해바라기 꽃 속에서 불타는 장면을 목격한다. 예술가가 현실에서의 제작자의 협박과 꿈속에서의 악몽에 시달리다 결국 육체는 구속되지만 어머니의 모성으로 영혼을 정화 받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에게 있어 성적 이미지는 신성의 타락을 나타내기 위한 예술적 은유이다.
- 송명희 (문학평론가)
장정일의 작품을 페미니즘 담론에서 해석할 때, 여성을 끝없이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남성중심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바라기'는 순수한 창조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어찌보면 악에서 피어난 악의 꽃이다. 장정일의 작품을 페미니즘 담론에서 해석할 때, 여성을 끝없이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남성중심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여기자든 출판사 여직원이든 소녀 팬이든 한결같이 모두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들이며, 김인의 성적 대상에 불과하다. 성적 대상이란 점에서는 유일하게 순결한 여성으로 등장하는 이웃집의 삼녀라고 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녀의 순결은 성폭력의 희생물로서의 제의적 의미를 부가시킬 뿐이다. 타락한 여성이든 순결한 여성이든 그녀들은 모두 김인의 절망과 희망의 제전에 바쳐지는 희생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 위에서 '해바라기'는 붉게 꽃 피워질 수 있었다. 장정일의 남성중심적 의식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장정일이 남성중심적 의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의 작품세계는 진정한 해방과 자유정신으로 더욱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고약한 울음소리로 김인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고양이>가 <해바라기>로, 또 <무지개>로 한 단계씩 심상을 전이시키면서 종국에는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고양이 소리가 들립니다. 고양이 울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김인의 희망과 섬세함을 헤아리는 독자는 김인이 강간이나 일삼는 파렴치한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그는 "신성의 타락이 성적 타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태" 속의 희생자이면서 모성 속에서 신성의 회복을 일관되게 집착한 인물로 드러난다. 그래서 김인은 말하지 않는가.
“나는 저 달의 아이....저 달의 정부, 달의 죄수입니다"라고.
-세계의 문학 1996년 겨울호 "작가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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