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시덕 '사병동(死病棟)'

clint 2025. 6. 27. 10:42

 

 

어느 밀폐된 병원 거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환자.
그들의 기다림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자칭 구원을 내세운 의사가 온다.
환자1, 2는 그 의사가 구원자일 것을 기대했으나...
그도 하나의 평범한 인간임에 불과함을 발견한다.
그 의사의 수첩을 주워 적힌 글을 읽어본다.
"어느 철없는 아이, 엄마가 그리워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점심 때가 되어도 얼마가 오지를 아니한다. 
해가 어찌나 눈부신지 손으로 햇볕을 가린다. 
저녁 때가 되서는 멀리 있는 엄마를 찾을까 
두 손으로 쌍안경을 만들어 사방을 살핀다. 
아이는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울기를 시작한다. 
울면서 사다리를 하늘에 걸고 그 위에 올라섰다. 
쌍안경을 만들어 먼데를 바라본다. 
그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아니라도 좋으니 빨리와 달라고. (사이) 
그래서 나는 아빠가 되어 아이에게 우유를 먹인다. 
자장가를 불러가며 따뜻한 우유를 먹여야지." 
환자1, 2는 아빠가 구원자이며 의사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휠체어를 밀고 다시 들어오는 의사를 
그들은 자신들 대신 의사를 강제로 태우고는
또 다른 구원을 찾아 떠난다.

 

 


1971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인 윤시덕의 '사병동'은 

그해 9월 드라마센터에서 박원경의 연출로 공연되었다.
사병동은 지금의 호스피스 병동을 말하는데 지금 환자들이
있는 곳을 뜻하진 않는다. 이 말은 환자1이 청진기로 의사 머리를 
진찰하고 들었다는 말인데 이 역시 환자1의 자의적 해석이다.
어쩌면 이곳은 정신병동인지도 모른다.

 


연속의 시행착오 - 작가 윤시덕
살면서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시행착오였습니다. 현재 행하는 일조차 착오임이 물론이요. 과거의 전부와 아마 미래의 전부도 착오일 것입니다. 줄기찬 착오의 연속 속에서 그것에서의 탈피를 갈망하다 죽음이라는 시행착오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관객들이 시간을 소비하며 감상하신 작품이 지루했다거나 하찮았다는 사실은 인류 이래의 시행착오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그 뜻은 더욱 굳어집니다. 우리가 잉태되는 순간이나 태어나는 순간에 판단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니라도 될것이 아닌가하는 의문과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두 가지 사실을 복합한다면 "너라면 한번..." 하고 내보냈다는 시행착오입니다. 한껏 많은 인간의 생명이 스쳐간 방위에 착오를 거역한 만족의 웃음을 띤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 시각에 이 땅위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도 "너라면 한번..." 하고 꾸준히 시도하는 의지로 인간은 영위되어 가고 있습니다. 착오에서 기적을 이룬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하여야 할 일이 있다면 인간의 마지막까지 계속 시행 착오에서 얼마나 맛있는 시행착오인가와 얼마나 보람있는 착오셨었나하는 정도의 차이뿐입니다. 

▲ 45년 인천 출생
▲ 64년 제물포고 졸업
▲ 20년 연세대 건축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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