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한 고등학교의 체육관으로 모이는 낯선 아이들
폭력과 도박을 하는 자살 미수의 준범,
일등 강박관념에 반항하는 수경,
사랑한 남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나연,
아버지와 체육 코치의 일방적인 지시에 대립하는 종수
술, 담배에 학생들 사이에 짱으로 불리는 은일 등이다.
무엇인가 잘못했기에 이곳에 불려왔다는 이들의 서먹한 관계는
곧 서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바뀐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모습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대립과 싸움을 유발한다.
특히나 종수와 은일의 대립은 사사건건 서로의 참견으로 부딪히고
사건을 야기시키는 극의 중요한 행동으로 작용된다.
수업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군대조교 같은 선생님이 등장하면서
일요일에 진행되는 문제아들에 대한 특별 교육은 시작된다.
원리원칙을 따지는 선생님과 자유분방한 아이들 사이에
불가피한 대립이 발생하는데 결국 선생님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 속에서 학생들 서로간의 이해와 우정이 싹튼다.
학교 수위아저씨도 가끔 들러 아이들을 격려하고,
저녁에도 찾아와 선생의 지나친 강요를 대신 말해준다.
이들을 위한 특별교육의 프로그램은 유격 훈련을 방불케하는
오전 수업과 정서함양을 기치로 짜여 있는 반성문 작문으로
모두가 쉬는 일요일 날에 벌어지는 그들의 짜증과 대립은
서로간의 주장으로 점철되어 가는데....
"네 멋대로 해라"는 말썽꾸러기 문제아 7명의 학생들에게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등교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행해지면서
이에 빈발하는 아이들의 불만과 불평, 또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강압적인 모습들이 극 전체에 깔려있고
그 밖에 웃음과 재미, 슬픔이 드러나고 있다.
선생님과 부모님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와 학생들간의 단절된
의사불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참고 견디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과 고통에 찬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이들 또한 자신의 주장에만 열은 올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결국 이들의 대립은 서로에게 어떤 이해를 요구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는 무엇에 대한 항변의 목소리인지
서로가 귀기울여 봄직하다.
청소년, 그들의 자리는… 이재환(작가)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집단을 이루며 살아간다. 인간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잘나거나 잘난 체를 하는 개체들은 예외하고 말이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동질감에서 유발되는 낯설지 않음과 자기 확인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명제는 인간이라는 개체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집단의 기본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이란 최소 단위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선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가족이라는 구성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서로간의 의사소통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이루는 각 구성원들은 마지못해 모여 사는 또 다른 개체들의 모습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때에 가장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가족 또는 집단의 미성숙하고 여린 개체들일 것이다. 청소년의 문제가 사회전반에 걸쳐 심각한 상황이라고 연일 떠들어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쥐고 있는 어른들에 의해서 말이니 참으로 양심없는 어른들의 옹색한 자기 변명 으로 들린다. 가족(소외), 학교(경쟁), 사회(무관심) 그 어떤 곳에서도 소속감을 박탈 당한 청소년들의 문제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 똑똑하고 잘난 어른들이 그것을 몰랐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네 멋대로 해라"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를 모두 대변해주고 있지는 않다. 그만한 시선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작가의 글이 자칫 과격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청소년의 외로운 방황과 갈등 중에 보편성을 지닌 몇 개의 상황만을 공부, 사랑, 죽음 등 얘기하고 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오늘의 청소년들이 느끼기에 고리타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결책 없이 과거에서부터 존재해온 이야기를 또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야기는 청소년들의 주장이 옳다고만 말하고 있지 않다. 외로움 때문에 떠벌리고 있 으니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갈등이 한번에 치뤄야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사고는 문제의 핵심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안이한 태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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