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유태인 창녀와 사생아 아랍 소년의 <모모와 마담 로자르>…
이 두 사람 앞에 펼쳐진 생이란 쓰레기고 말라 비틀어진 눈물 자국이고
삶의 도피자고 외로운 그림자고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환상가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수가 있을까? 모모가 물었을 때 하밀 할아버지는 지긋이 눈을 감고 외면하며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수가 있다고 거짓 대답한다.
모모가 외롭게 혼자 흐느낀다.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 …
역시 사랑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가 11년만에 찾아왔을 때
마담 로자르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소외된 인간의 집단 속에서 깊은 사랑을 모모에게서 느낀다.
모모는 어머니가 몸을 팔아먹고 산다 해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고
내가 만나게 되면 사랑했을 것이고, 엄마를 돌보아 주었을 것이고
엄마를 위해 좋은 뚜쟁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모는 커서 어른이 되면 빅토르 위고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얘기를
책으로 쓰겠다고 희망을 갖는다. 여기에 깊은 사랑이 있다.
이 두 사람에게는 슬픔이 있고 웃음이 있고
그리고 고독이 있고 죽음이 닥쳐오지만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원작자 로맹 가리는 소설 ‘하늘의 뿌리’와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 상을 2번 수상한 이색 경력을 가진 작가다. 원래 공쿠르상은 한 작가가 중복 수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후일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으로 또 한 번의 공쿠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자기 앞의 생’ 출간 후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와 비교되며 ‘자기 앞의 생’ 이외에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소설가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죽기 전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음을 밝히며, 결론적으로는 콩쿠르상 중복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은 파리 슬럼가의 허름한 아파트에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르와 그녀에게 맡겨진 열 살 소년 모모의 이야기다. 인생만큼 쉽지 않지만 호기심 많은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매일매일 새롭지만 로자르는 그런 모모가 걱정이 된다. 로자 아줌마와의 소소한 대화가 모모를 지탱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로자 아줌마의 비밀이 밝혀지며 모모의 아버지라는 남자가 불쑥 찾아온다. 선반 위 소품들 하나하나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프랑스 부엌 한 켠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첫 장면은 어린 아이와 푸근한 느낌을 주는 할머니의 등장이었다. 로자르는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수많은 아이들을 돌봤고, 아이들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워낸다. 모모를 두고 간 부모는 세 살이 된 모모를 이슬람교도로 키우기를 부탁했다. 동급생들보다 체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모모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로자르와 단둘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로자르는 모모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모가 자신의 곁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로자르는 모모가 창녀와 어울리거나 포주가 될까 내내 걱정한다. “궁둥이를 내려서는 안 돼!” 라는 말을 반복하며 끝내 포주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극이 흐르는 가운데 로자르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20살 때 삼십 분만에 싼 가방을 들고 독일군에게 끌려갔다 온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인종, 종교, 세대 등 모든 사회적 기준에서 다르고 같이 살아가지만 서로가 속해 있는 시간이 다르다. 열 살의 모모가 로자의 시간을 따라 갈 수 없다. 어느 날 로자르가 쓰러지게 되고, 그 결과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와중에 모모의 아버지가 집을 찾아와 이슬람교도로 성장했을 자신의 아들을 찾는다. 로자는 모모를 유대인으로 키웠다고 거짓말하고, 모모는 로자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춘다. 모모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임에도 유대인으로 자랐다는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후,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서 산다. 그들은 더 이상 7층 계단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7층 계단은 로자르에게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높이기도 하다. 더 이상 독일군이나 사회복지사가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는다. 모모는 “노인들은 추억 속에 갇혀 산다”고 하면서 로자의 남은 추억에서 함께 사는 것을 택한다. 로자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남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잣대와 사랑이라는 단어의 원초적인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만 유대인으로 자랐기 때문에 아들을 거부하는 모모의 아버지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키워낸 로자는 상대적이다. 로자는 모모에게 있어 모든 것을 품어주는 세계가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종, 종교 등의 타이틀은 모모의 앞에 붙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결국 그 모든 단어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 또 죽어가는 한 사람의 앞에서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암’ 아니면 ‘치매’로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 이 작품은 ‘죽을 권리를 주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모모의 대사처럼 행복은 ‘추억 속에 갇힌 노인’에게도 필요하지만, 추억에 갇히기 전까지 누구와 사랑하며 어떤 추억을 만들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프랑스의 소설가. 본명은 로만 카체프.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니스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군으로 참전했다. 종전 후 공훈을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194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이 프랑스 비평가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프랑스 외무부에 들어갔고 이후 외교관 자격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볼리비아의 라파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1949년 『거대한 옷장』을 펴냈고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프랑스 영사 시절에 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결혼했다. 1958년 미국에서 『레이디 L』(프랑스어판 출간은 1963년)을 펴냈고, 1961년 외교관직을 그만두고 단편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1962)를 발표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1975) 『여자의 빛』(1977) 『노르망디의 연』(1980) 등의 소설을 남겼다. 소설뿐 아니라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했다. 사후에 남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1974) 『가면의 생』(1976) 『솔로몬 왕의 고뇌』(1979) 그리고 『자기 앞의 생』(1975년 공쿠르상 수상작)을 썼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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