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하유상 '회색의 크리스마스'

clint 2023. 10. 8. 16:33

 

 

 

 

<회색의 크리스마스>는 가정 비극에 속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건축기사 윤 기사의 잘 짜여져 있고 화려한 응접실에서 아내인 오 여사와 여러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이 비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희곡은 장막인데도 불구하고 장면전환이 전혀 없이 하나의 장면에서 여러 인물과 사건이 결합, 종결 지워 진다. 희곡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도입부인데 이때 이 연극의 장소와 시대, 또 극을 벌이는 인물이 소개되며 앞으로 진행될 사건이 관객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다. 그러나 장소, 시대, 인물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이 인물인데, 특히 인물끼리의 관계가 갈등구조를 엮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회색의 크리스마스>는 윤삼중이란 한 인물과 그와 관계된 가족 구성원 들과의 여러 갈등 요인이 비극적으로 집약되어 있다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두번째 아내와의 갈등.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했지만 거절당해 남자는 자살하고 결국 정신이상자가 된 맏딸 은희. 가난한 고학생과 결혼하려고 하지만 끝까지 반대에 부딪치자 결국 가출까지도 결심하게 되는 둘째 딸 경희. 못마땅한 맏아들인 화가 지수, 둘째아들인 시인 민수. 뿐만 아니라 지수로 인해 아버지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비극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결국 윤기사의 과거가 밝혀지고 둘째아들 민수가 자살하면서 극은 종결 되고 만다작가는 이처럼 윤 기사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들을 실타래 풀어헤치듯이 흥미롭게 결론에 도달시켜 준다. 마치 추리극처럼 예견된 결과를 도덕적 완성으로 귀결시켜 주고 있다.

 

 

 

희곡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란 여러 가지 측면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이야기의 전개에 오밀조밀한 맛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희곡이 안고 있는 삶의 표현이다. 하유상 선생의 희곡의 근원은 사람들의 삶의 여러 유형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놓고 냉철하게 비판하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것을 추리 적으로나 코믹하게, 한편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스스로 택하게 되는 인물의 자화상을 묘사해 놓고 있다. 물론 그것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는 사건이 되어 극의 재미를 기발하게 촉발시켜 준다. 장막희곡인 <회색의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글 하유상

희곡에서 장막과 단막의 구별은 실상 매우 막연한 것이다. 가령 비록 막으로는 단막이지만 상연 시간은 2시간 가까이 걸린다든지, 또는 그 이상 걸리는 경우, 이것은 단막이라기보다도 장막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실제 예를 든다면 스트린드베리의 〈줄리 아씨〉는 1시간 30분쯤, 로망 롤랑의 〈사랑과 죽음의 희롱〉은 2시간쯤, 클라이스트의 〈깨어진 항아리〉도 2시간쯤, 그리고 필자의 작품 〈회색의 크리스마스〉도 2시간쯤 걸리게 되어 있다. 또한 많은 장면으로 되어 있지만 막은 한 번밖에 안 내리는 경우(근래에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많다)이것 역시 길이로 말하면 장막극이지만 개념상으로는 단막극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면(Scene)은 어디까지 장면일 뿐, (act)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막극(one act play)인 것이다. 가령 실례를 들면 하우프트만의 〈한네레의 승천〉은 단막이지만, 여주인공 한네레가 현실의 장면과 꿈의 장면을 암전(暗轉)으로 여러 번 바꾸게 된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하게 구별 지으려면 장막극에 대해서는 '하나'라는 뜻의단막(單幕)'이 아니라 '짧다는 뜻의단막(短幕)'이란 용어를 써야 할 것이며, 단막(單幕) 또는 1막극에 대해서는 막이 많다는 뜻의 '다막극(多幕劇)”이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현 '문(門)'  (2) 2023.10.10
최원석 '변태'  (2) 2023.10.09
최치언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2) 2023.10.07
김숙종 '싱싱 냉장고'  (1) 2023.10.04
최진아 '그녀를 축복하다'  (1) 202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