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숙종 '싱싱 냉장고'

clint 2023. 10. 4. 15:08

 

무대에는 거창한 냉장고가 주인공처럼 서 있다.
선희란 여자는 냉장고란 물건을 섬기고 춘범이란 남자를 섬긴다.
선희란 여잔 밥하고 요리하고 뜨개질하는 일편단심 민들레다.
요즘 세상에 천연기념물로 보호할 멸종위기 생물로서 독하고 똑똑하고 명민해야

잘 나가는 요즘 세상에 암 컷도 아닌 암컷이다.

춘범이란 남잔 고시생 탈을 쓴 거머리로 패륜껄렁이 늑대다.

이런 춘범을 선희는 몸 바쳐 돈 바쳐 뜨개질로 옷 바쳐 고시패스를 위해 봉사한다.
선희에게 유일하고 절친한 친구 미진이 있는데 춘범 정체를 안다.
미진은 춘범이 나쁘고 밉지만 자기께 아니니 강요나 할 뿐.

웃기고자빠진 관계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가자 하나 끄덕 안 하는 선희 똥고집.

일편단심 천연기념물이란 바위에 계란 치기만 해대는 미진이다.

사는 꼴이 한심하고 개 같아 항상 불만이 충만한 미진,

애인 고시패스라는 망상에 희망을 품고 평화로운 선희.

여기에 춘범의 고시동기친구란 깡패 같은 동식이 나온다.

춘범은 동식의 애인를 꼬셔 도망간 친구 아닌 원수라 찾아온 거다.
동식은 춘범 행방을 선희에게 다그치고 날뛰며 다 때려 부순다.

이 과정에서 무참하게 얻어터지고 망가지는 선희. 뜨개질로 떠준 옷 입고

바람핀다는 춘범 정체를 밝혀줘도 끄떡없는 선희.

춘범이랑 선희가 첨 어떻게 만나 관계발전 했는지도 밝힌다.

기막히게 어이없을 정도로 파격적 장면으로 충격파를 던져주는데..
극은 미진이 마지막으로 왔다가고.. 춘범이 또 오고..

선희가 받은 돈 챙긴 춘범은 미진이 남긴 수면제 약통을 영양제로 보고..

또한 끝으로 동식이 왔다간 뒤 결말의 충격을 준비한다.

 

 

 

 

<싱싱 냉장고>의 주인공 선희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종적인 인물로 비춰 지지만, 그런 선희가 "방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냉장고에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저장하는 방식은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춘범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었던 선희는 급기야 그를 냉동 저장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엽기적 행각과 선희라는 인물의 부드러운 품성 속에 내장된 집착과 맹목이 개연성 있는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애정을 갈취하는 이기적인 춘범의 성격을 행위로 작동시키는 상황설정 덕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싱싱 냉장고〉에서 춘범이 선희의 수면제를 영양제라 우기며 입안에 털어넣도록 만드는 상황을 구축한 작가의 솜씨는 매우 비상하다. 사기꾼 춘범이 선희의 약을 영양제라 생각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삼켜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기적이고 삐뜰어진 사기꾼기질 때문이다. 춘범이 잠이 들어야만 선희는 우악스런 그를 문제없이 냉장고로 옮길 수 있다. 이처럼 인물의 성격이 추동하는 개연적 상황을 매끄럽게 짜내는 솜씨야 말로 김숙종 극작의 큰 장점이다. 대개 솜씨 없는 작가는 우연적 계기와 개연성 낮은 행동으로 예상가능한 정직한 플롯을 구성하고 그런 경우 대부분 '극적'이라는 긴장의 창출에 실패한다. 〈싱싱 냉장고〉 에서는 인물이 놓인 상황, 인물의 성격, 그것을 매개하는 계기와 동기 (미진의 동성애적 성향은 다소 작위적이지만)가 치밀하게 짜여져, 암시와 반전의 효과까지 덤으로 불러낸다.

 

 

 

 

(김숙종)
최용훈 연출로 공연된 김숙종의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보고 감탄했다 고백컨대 당시에는 공연의 성공이 섬세한 연출과 2인극의 연기 앙상블에 힘입은 바 크다고만 생각했었다. 이후 우연히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희곡 텍스트를 읽게 되었다 희곡텍스트 그대로 성공적으로 공연된 드문 사례라는 것을 알고 나니, 희곡텍스트가 공연의 성공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짜인 드라마를 공연으로 만난 것이 기쁘고 행복했다 참 오랜만에 극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12년 서울연극제에 참가한 〈콜라소녀〉를 반갑게 관람한 후 극작가 김숙종을 만날 수 있었다. 국문학의 희곡 전공자지만 나는 본격적인 극작가론을 써본 적이 없다. 극작가라는 존재의 경계적 성격을 의식해서이다. 희곡은 결국 공연으로 증명 되는 존재라고 늘 생각해왔던 탓도 있다 그래서 극작가 김숙종을 만나는 일 은 특별하고 설레였다. 직접 만나고 보니 김숙종, 차돌처럼 단단했다. 작가인 '척하는' 요란스런 포즈도 찾아볼 수 없다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면서도 세상을 달관한 처사처럼 심지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옹골찬 기질을 내보였다. 김숙종은 지방에서 상고를 졸업한 후, 보통의 직장인으로 삶의 고단함을 견뎌내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김숙종에게 글쓰기는 대단한 포부나 의지가 아니라 삶의 즐거움이고 매일매일 치러내야 하는 일상처럼 당연한 노동인 듯했다 마치 소설가 신경숙이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되었을 때,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할 때처럼 의연해 보였다. 김숙종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동인은 숭의여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것이겠으나, 대학입학 역시 고졸자에게 불리한 사내제도를 안타깝게 여긴 회사 사장님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닉한 것은 글쓰기에 매진한 나머지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직장을 그만 두고 공모전 당선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하루 종일 작품만 썼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김숙종은 회상했다. 김숙종의 작가로서의 데뷔는 근로자 문학제 희곡부분 금상을 수상한 〈달집태우기〉(2003)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후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작인 〈싱싱 냉장고〉(2005년 박장렬 연출로 공연), 2006년 낭독 공연한 〈빌라, 상그릴라〉, 2008년 '2인극 페스티발' 희곡 공모 당선작인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2009년 극단 작은 신화 최용훈 연출로 공연), 2009년〈템프 파일〉(극단 민예 김성환 연출로 공연)과 해양문학상 희곡 당선작인〈배웅〉 (2009)을 거쳐, '배우, 희곡을 만나다' 공모 당선작인 〈콜라소녀〉<2012년 극단 작은 신화 최용훈 연출로 공연)를 발표했다. 정리하고 보니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쉼 없이 매진한 성실함이 눈에 들어온다. 김숙종은 2009년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공연하기까지 5년 이상 혼자 지우고 다시 쓰는 습작을 계속했다 습작 기간 동안 김숙종을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작품이 무대화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공연되는 글이라는 특징 이 희곡텍스트의 본질이지만, 실제 공연될 수 있는 희곡텍스트를 창작하는 극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혹 희곡텍스트가 무대화되는 경우에도 스스로의 자의식에 폐쇄된 채, 무대와 연출과 관객과 소통하는데 서룬 극작가들도 많다. 그에 비해 김숙종은 최소한 희곡텍스트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무대화되었을 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라도 극작가의 창작 활동이란 사성에 한정되지 않는 공적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에게 극작가 김숙종이라는 존재를 알린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은 우여곡절 끝에 2009년 '2인극 페스티벌'을 통해 무대화될 수 있었다.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공연 이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는 김숙종의 수줍은 고백은 이강백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강백은 자신의 어두운 지하방을 떠나 세상을 만난 것이 첫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연출가를 만나러 나선 길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렇다. 연극은 세상을 만나는 통로이다. 여타 문학작품이라고 그렇지 않겠냐마는, 연극은 한 시공간에 함께 모여 직접적 경험을 나눈다는 특별한 심미적 효력을 발한다. 그러니 극작가는 함께 나눌 수 있는 경험을 무대 위에 만들어낼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