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보토 슈트라우스 '재회의 삼부작'

clint 2023. 1. 20. 10:02

 

 

우리는 슈트라우스의 세번째 극작품 <재회의 삼부작>에서, 작가의 처음 두 희곡에서 만난 등장인물들과 세번째로 재회하게 된다.. 이번에는 미술협회의 전시실이 그 무대가 된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오후 미술협회장 모리츠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미술 전시회의 예비 관람회에 협회원과 친지들을 초청한다. 이런 행사의 성격상 이 작품에는 17명이라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10대의 어린이로부터 60대말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며 또한 그들이 종사하는 직업도 여러 가지이다. 이런 상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미술 전람회장에서 만난다. 이들은 모두 인텔리 계층에 속하며 예술 애호가들이다. 또는 그들은 적어도 예술 애호가로서 자처한다. 이들은 미술관 전시실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전시된 그림들을 관람하며 한가로이 오가는 가운데 수시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에 이들 간에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그들의 내면세계와 상호간의 인간관계가 드러난다. 따라서 이들은 미술 전시회를 보면서 자기들의 감정과 의식을 표출하며, 이로써 또한 자신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부부 또는 연인이던 간에 쌍으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미술협회장 모리츠와 그의 연상의 연인(?)인 수잔네의 관계는 이 희곡의 발단부이며 핵심을 이룬다. 이들은 끊임없이 접근과 결합을 시도하지만 언제나 또 다른 결별로 이어지곤 한다. 모리츠- 수잔네의 이런 관계는 다른 쌍들에게서도 여러 가지 변형으로 나타난다. 결국은 희극적인 에피소드로 끝나긴 하지만, 모리츠는 의사 로타르의 별거중인 부인 루트와 도피 행각을 시도하기도 한다. 백화점의 판매부장인 펠릭스와 재능이 없는 화가인 마르리스간에도 역시 애증관계가 지속된다. 펠릭스는 마르리스를 학대하며 당장 헤어지자고 강요한다. 이에 궁지에 몰린 마르리스는 요한나에게 접근한다. 요한나의 연인은 그녀를 떠나가서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원로 배우인 프란츠는 역시 배우인 아들의 생일을 맞아서 찾아왔지만, 아들은 연인 엘프리데가 바로 어제 그를 떠나버렸기 때문에 허탈감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도 프란츠는 미술협회 이사인 키퍼트의 이혼한 부인 엘프리데에게 접근한다. 우연히도 이들은 동명이인이다. 엘프리데의 11살 아들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고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버릇없이 군다. 안스발트는 일시적으로 수산네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약종상인 마르틴과 부인 비비안네는 가장 행복하고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마르틴은 부인 몰래 애인이 있다고 프란츠에게 고백하며, 비비안네는 안스발트에게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젊은 작가인 페터는 가난하고 고독한 예술가의 전형처럼 보인다. 연극이 진행됨에 따라서 이러한 섬세한 인간관계의 윤곽이 아련히 드러나기는 하지만 어떤 뚜렷한 극적인 발전은 전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에서도 사건 진행을 확인할 수 있다. , 모리츠가 마련한 미술 전시회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은 미술협회 이사회에 의해서 금지된다. 이사인 키퍼트가 이사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1막에서는 전시회의 금지가 예고되고, 2막에서는 발표되며, 3막에서는 철회된다. 예비 전람회에 초대된 손님들은 처음에는 모두 전시회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 금지령이 내려지자 모두들 모리츠에게서 등을 돌린다. 키퍼트는 두 번 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전시회의 금지를 통해서 그의 권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그의 금지령은 예술 검열이라는 정치적 행위'로 파악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특정 그림에 대한 반감에서 유래한다. , 성적으로 민망한 자세로 <회장들의 카니발>이라는 그림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이 그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이 그림을 제거하고 다른 그림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전시회는 다시 허락된다. 또 하나의 사건 진행은 모리츠와 수잔네, 그리고 루트와의 삼각관계이다. 전시회 금지가 발표된 후 모리츠는 루트와 도피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의 모험은 역전 호텔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결국은 사실상 바뀐 것이라곤 없다.

그러면 이러한 사건 진행이 거의 없는 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이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는 동안 그들의 수많은 이합집산을 통해서, 그들의 대화와 독백을 통해서, 그들의 민감한 반응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희곡의 제1막 제1장은 수잔네의 긴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이 독백에서 모리츠와 자기와의 관계가 성취되지 못하고 영원한 기다림의 상태로 지속됨을 탄식한다. 그 녀는 무엇보다도 모리츠를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모리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어디까지나 상반되는 감정의 양립이라는 모순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녀에게는 모리츠와 관계에 있어서 언젠가 "위대한 감정"이 나래를 펼 때를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힘겨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잔네의 기대는 물론 끝까지 이뤄지지 않고 희곡이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끝난다.

 

 

수잔네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기증 환자들이다. 각각 한쌍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이혼을 했거나 별거 중이거나 또는 연인에게 버림을 받는 등 분열과 갈등의 파트너 관계를 드러낸다. 파트너와의 원만치 못한 관계로, 또는 그외의 다른 이유로 인하여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심리적 고뇌를 하고 있다. 인쇄공 리하르트는 지난밤에 읽은 장편소설의 줄거리를 펠릭스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의 줄거리가 제대로 기억 나지 않자 그는 분통을 터뜨린다. 그가 기억력을 상실하게 된 것은 그가 일하는 인쇄소의 오프셋 인쇄기에서 나오는 어떤 위협적인 소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잠 못 이루는 밤에 소설을 읽지만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펠릭스에게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다가 중단하게 되자 불끈 화를 내며 수치심에 잠긴다. 그러나 펠릭스도 처음부터 리하르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서 그 자리를 피하려 하고 있다. 펠릭스는 알레르기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는 물론 들판에도 못 나가지만 심지 어는 미술관에서 곡식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재채기가 난다고 호소한다. 이같이 등장인물들은 수다스럽게 말은 많이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대화는 갈등을 해소하고 인간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등 어떤 실제적인 변화를 이룩할 만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공허한 잡담에 불과하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대부분 각 자 자기의 내면의 고뇌를 표출하는 독백화 된 대화들이다.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전시회의 제목은 물론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하나의 반어적인 암시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 예술공간인 미술관으로 도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림을 통해 실재를 경험하려고 하며, 또는 예술을 실재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갇혀 있는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막연하게나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 우선은 수잔네와 모리츠의 관계 또는 마르리스와 펠릭스의 관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참을 수 없는 현상태가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들은 또한 집단으로서도 이런 "기다림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써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이 희곡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또다시 기다림의 구도로 모여 있는 가운데 비비안네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거론된다. 이에 대해서 프란츠는 쉴러의 「빌헬름 텔」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한다. "죽음은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다. 기한도 주지 않고 데서". 이 희곡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이어지는 사실적인 차원과 각종 문학적 인용이나 암시를 통한 성찰의 차원이 교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미 이 희곡의 제목도 괴테의 「정열의 삼부작」을 암시하고 있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며, 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 희곡은 엄격한 고전적 희곡 기법을 통해서 통제되고 있다. 즉 이 희곡은 서막과 제1 6, 1 6장 그리고 제1 7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3막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각 장은 영화의 암전 기법을 원용하여 더 짧은 장면들로 세분된다. 이렇게 해서 극도로 세분화된 단편적인 장면과 대 화가 고도로 거교적인 등장인물의 배치를 통해서 연결된다. 장소는 미술관의 전시실로 한정되어 있고, 시간은 예비 전시회가 열리는 어느 여름날의 정오(1), 오후(2) 그리고 늦은 오후(3)로 한정되어 있어서 공연시간과 공연된 시간이 거의 일치한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들의 담론을 통해서 일종의 리얼리즘이 생겨나게 하는 기법은 슈타인의 연출로 1974년 샤우뷔네 극장에서 공연된 고르키의 「여름 손님들」을 번안할 때 개발한 것이다. 「재회의 삼부작」은 주제나 기법에 있어서 고르키의 희곡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1904년의 "여름 손님들" 1975년 「재회의 삼부작」에 나오는 "여름 손님들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보토 슈트라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