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기훈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

clint 2022. 5. 26. 09:00

 

 

 

삶의 끝 언저리에 다다른 은퇴한 피아니스트는 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의 삶과도 같은 피아노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망각의 방 속에 가두어 놓았던 사랑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자신에게 희망을 걸고 멀리까지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주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바라보았던 시골의 풍경과, 집을 떠나 피아노 선생님 댁에서 머물며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겪어야 했던 시절,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인 줄리아드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을 전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음악의 영재들이 모여 있는 줄리아드에서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학생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지만, 우연한, 그러나 운명적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만남으로 인해 음악과 삶의 의미를 모두 바꾸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의 실력에 대한 감탄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녀의 광기어린 천재성으로 인해 점점 오기와 질투로 바뀌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연주 파트너가 된 자신의 형편없는 실력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그녀도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망신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 계획은 보기 좋게 그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버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동료들은 깊은 자괴감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는 음악을 매개로 그녀와의 깊은 소통의 세계로 이끌리게 되고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일탈을 꿈꾸고, 결국 진정한 음악을 찾아 여행을 가면서 중요한 연주회를 펑크 내고야 만다그 일로 그와 그녀는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하기에 이른다. 시골 마을의 가난한 음악 신동에서 퇴학을 맞은 신세로 전락한 그는 허름한 옷차림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그때, 그가 그녀와의 사랑 이야기를 망각 속에 가두어 놓게 할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가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것이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녀의 방 앞에 선 그에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그녀의 마지막 연주를, 손가락 하나가 없는 손으로 그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그는 슬프고 아름다웠던 인생에 단 하나뿐인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자신에게 진정한 음악의 가치를 가르쳐 준 그녀를 망각 속에 가두게 된다.

 

 

 

 

무대에는 한 대의 피아노가 있다. 그리고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더 이상 그것을 연주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 손가락이 굳어버린 나이든 피아니스트는 한 평생 예술가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삶에 대해 질문 하고,다른 피아니스트는 그의 이야기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가 살아온 인생과 예술이 이야기와 음악으로 관객에게 들려 진다. 음악의 배경을 이루는 역사적 사실과, 배우의 연기가 표현하는 허구적인 삶은 선율과 독백을 타고 극장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다.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2011년 창작 초연으로 국내에서 성황리에 공연한 데 이어 2012년 프랑스 아비뇽 Espace Saint - Martial의 초청으로 아비뇽 연극제 OFF에 참여하여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유도하며 성공적 공연을 마친 바 있는 작품이다. 2012년 하반기 서울 공연에서는 국내 공연 시 초연하였던 남성 공연진의 공연과 프랑스 공연을 진행하였던 여성 공연진의 공연을 번갈아 진행함으로써, 다채로운 관극을 가능하게 했다. 일상이 예술과 만나고, 과학과 예술이 융합하고, 예술 장르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은 음악 감상과 연극 관람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색다른 심미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로 연기와 연주가 접목된 공연형태를 갖는다. 클래식 거장들의 명곡을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듣는 동시에 배우의 독백을 통해 그 음악들을 눈으로도 감상하게 된다. 아울러 생의 끝 무렵에 서 있는 늙은 피아니스트가 들려주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치열한 삶에 대한 독백을 통해 음악, 더 나아가 예술과 인간의 감성에 대해 성찰해 본다.

 

 

여성 공연진의 공연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진아 '예기치 않은'  (1) 2022.05.26
윤기훈 '피아노포르테, 나의 사랑'  (1) 2022.05.26
김숙종 '애플 혹은 사과'  (1) 2022.05.24
이해성 '고래'  (1) 2022.05.24
이홍우 '이돌근, 죽데기로 광 먹다'  (1)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