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은 선택함으로써 그 자신의 성격을 드러낸 다고 하였다. 또한 성격은 미리 숙고함으로써 결정되며 이성적 원리와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성격이 선택을 이끌어 내고 그것이 그를 특징짓는다. 하지만 오늘날, 개인의 일상적 삶은 더 이상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개인의 미시적 삶은 큰 사회구조라는 거시적 틀 속에서 조종, 통제되어 지고 거시적 세계의 한 수단으로서 이용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은 이 거시적 사회체제 속에서 버려지게 될까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진실보다는 사회로부터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개인 스스로 앞다투어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며 선택하게 한다. 김숙종 작의 <애플 혹은 사과>는 바로 이러한 거시적 체제하에서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낸다. 극은 노인이 자신의 잊어버린 비망록을 쓰레기 야적장에서 찾다가 자신의 물건들을 버리러 온 사내와 만나며 시작된다. 자신의 일을 '너무나 성실하게' 기계처럼 수행하던 인물 '사내'는 공사현장에서 죽은 인부의 딸인 소녀가 현장 사무실에 찾아와서 상황판에 적힌 "무사고 일수 120일"을 보고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에게 말한다. 사내는 이 말을 들은 이후 그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즉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작업 인부들에게 강요하면서 수많은 희생을 가져오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리고 자신의 비망록을 찾는 자신의 목적 외에 어떤 것도 관심 없는 노인은 현실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며 다른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인물이다. 극에서 이 두 인물의 공존은 비록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 언정,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극은 이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며 실체조차 될 수 없었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계획들이 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그리고 이는 결국 누구의 목적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작가의 글 - 김숙종
나는 단 한순간도 하나의 나 인적 없다. 내 안의 수많은 나가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또 다른 내가 생성되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선악의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적게는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많게는 인생의 전환점에 대한 선택까지 수많은 자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해 하나의 결정이라는 좁은 길목을 통과한다. 그런 내 눈에 신기한 사람들이 있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들,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도 않으며, 그래서 감정 조차 보이질 않는다. 수많은 비리 사건에도 의연하게 고개를 든 채 카메라를 돌아보는 그들에게서 살인자의 짖 은 피비린네가 진동을 한다. 자아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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