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의 집 거실. 파계한 스님이 여자를 찾아온다. 여자는 아픈 남편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고, 시어머니와 함께 절을 찾곤 했다. 그곳에서 스님과 여자는 만났고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여자는 스님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했었고, 스님은 어느 날 파계를 하고 여자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스님이 막상 떠나자고 하니 망설인다. 3개월이 흐른다. 스님은 카우치 포테이토가 되어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그런 스님을 말없이 바라보는 여자. 여자의 남편은 죽었고, 스님과 여자 그리고 여자의 시어머니가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때 여자에게 떠나자고 애원했었던 스님은 이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자신은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게스트하우스에 중년부부가 오게 된다. 그들 역시 갇힌 세계에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중년부부의 모습을 보며 스님과 여자의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중년부부가 떠난다. 중년부부의 삶의 태도가 여자의 삶의 틈을 파고든 것일까? 여자는 더 이상 갇힌 세계에 살지 않고 떠나겠다고 결심
한다. 여자는 스님에게 함께 떠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스님은 소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자를 바라볼 뿐이다. 스님은 떠날 수 없다고 말하며 거대한 소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구자혜의 <먼지섬>은 삶의 어둠과 가벼움을 정서적으로 잘 그려나갔지만 작위적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철학적인 목표가 분명한 작품으로 닫힌 세계에서 나가려고 하지만 닫히고, 점점 스스로가 자기에게 갇힌다는 목표치를 가지고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작가의 글 : 구자혜
“인간은 과연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은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 아니, 변화했다 할지라도 진정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토록 바라던 삶의 방향이 있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제자리 혹은 전혀 바라지 않았던 자리에 와 있는 인간들에 대한 주목으로 출발한 희곡이다. 변형된 변화는 사실, 변화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어놓은 금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기대어 변화를 희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 오류로 인해 우리는 욕망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거짓으로 위장하여 변화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결국,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변화에 대한 본질을 왜곡시킨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나 쉽게 변화되지 않는, ‘변화’에 대한 희망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보며 스스로의 삶의 태도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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