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근형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clint 2022. 4. 22. 11:53

 

 

 

무대는 지방에서 농사를 짓는 큰형의 집이다.

극의 내용으로 보아 시대적 배경은 3, 40년 전쯤으로 보이지만 막걸리병에 붙은 인쇄물은 요즘 생산되는 막걸리라 배경이 현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당에 벤치형태의 약간 긴 의자가 놓였는데, 그 위에서 음주하고 연극이 전개되다가 차를 몰고 가는 동작을 보여 벤치가 차로도 연출된다. 귀에 익은 대중가요의 멜로디가 음악으로 깔리고, 정면 방문이 열리면 대금을 부는 연주자의 모습과 극 분위기에 어울리는 대금 소리에 관객은 감상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농기구가 등장하고 배달부가 우편물을 전하고, 갓난 어린애가 포대에 쌓여 등장하고, 마당 모퉁이에 개가 자리를 잡는다. 놀라운 것은 여배우가 개 역할로 출연한다. 연극은 도입에 노년에 접어든 통통한 체격을 가진 인물과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홀쭉한 체격을 가진 남성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홀쭉한 사람은 아들 문제로 무척 고민하는 모습이고 통통한 사람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방 막걸리를 마셔댄다. 홀쭉한 사람의 아들이 여자를 건드려 애를 낳게 하고는 행방을 감추고, 아기를 낳은 여자가 아기를 데리고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훌쭉한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아들의 여자와 아기를 떠맡을 여유가 없는지 여자와 아기를 데리고 시골에 있는 형 집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통통한 사람도 시골길에 동행한다. 다 같은 동향인이라 홀쭉한 사람의 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물이 말러가는 형편이니 농사짓기의 어려운 현실은 다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큰형인 농사짓는 사람의 아들은 성추행 문제로 회사에서 해고가 된다. 그것과 연관이 되어 가족에 대한 불성실로 해서 이혼까지 당할 처지가 된다. 부인은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여성이라는 설정이다.

 

 

 

 

큰아들 역시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설정이고, 시골 아버지 집으로 내려와 몸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법원에서 또 다른 이유로 출두 명령서를 보낸다. 우체부가 출두 명령서를 전하려 하지만 이 집 부인인 노모는 아들의 행방을 모른다며 우편물 수령을 거부한다. 이혼하려고 큰아들의 처가 도착하고, 그리고 작은 집의 아들이 건들여 애를 배게 한 아기 엄마와 아기가 모두 이 집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이 모여 함께 잠을 자게 된다. 시모와 며느리가 밤새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아침 이별을 고하려는 며느리에게 모든 집의 어머니가 그렇듯이 아들과 며느리가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며느리는 남편의 알려진 비행뿐만 아니라 더 많은 죄를 저질렀기에 도저히 다시 합칠 수가 없노라 하고 떠나가려 한다. 시모는 며느리에게 무말랭이와 시래기를 잔뜩 담아 준다시모와 며느리는 포옹하고 헤어진다. 떠나려는 며느리를 보고 어머니는 방에 있는 아들에게 네 처가 떠난다!” 고 큰소리로 알려준다. 아들은 방문을 열고 아내에게 "잘 가라"는 말을 하고는 방문을 금세 닫아버린다. 마침 이때 이 집의 개가 새끼를 낳으려고 끙끙거리다가 드디어 새끼를 낳기 시작한다. 노모와 아기 엄마가 개가 새끼 낳는 걸 들여다본다이때 우체부가 다시 등장한다. 그러면서 저수지 근처에 이 집 며느리 같아 보이는 여인이 승용차를 세우는 것을 보았는데, 얼마 후 다시 보니 텅 빈 승용차만 덩그러니 있더라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하니 모두 며느리가 자살을 한 게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된다노모는 방안의 아들에게 어서 나와 저수지로 가보라며 방문을 연다. 그러자 대들보에 목을 맨 아들의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열린 문을 통해 보인다. 모두 경악을 하며 뒤로 벌렁 주저앉는다. 그때 기다리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폭우다. 그러자 집 주인인 아버지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하며 밭으로 가려고 삽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두 형제의 남루한 삶과 인생 이야기를 애잔한 가족사()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정직하게 땅을 섬기며 농부로 살아가는 형 창호의 시골은 가뭄으로 땅이 갈라지고 성공한 아들 재철은 미투로 몰락해 자살로 극단적인 삶을 선택한다. 동생 창식은 성공의 욕망으로 시골을 떠난 뒤 교도소를 전전하며 쪽방에서 살아가는 유명한 노름꾼으로 아들은 대를 이어 노름판을 다닌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는 나약한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가뭄의 자연현상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지키고 살아가는 창호와 형제의 가족사를 그리며 인간, 운명, 삶과 인생, 죽음 등을 묵직한 성찰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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