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에카와 도모히로 '산책하는 침략자'

clint 2021. 12. 27. 10:54

 

 

줄거리

바다에 면한 작은 항구 마을 콘린초, 카세 신지는 사흘간 행방불명된 뒤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발견된다. 의사는 그를 진찰하고 뇌질환으로 진단한다. 그전까지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던 나루미는 새로 태어난 사람 같은 신지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 은근히 기대를 갖는다. 같은 시기,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처참한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할머니가 일가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녀는 신경 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리고 그 후, 마을에 기묘한 병이 퍼진다. 특정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병으로, 신지의 증상도 이것과 비슷하다. 의사인 쿠루마다는 알 수 없는 이 전염병에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이웃 나라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마을은 불길한 기운에 휩싸인다. 콘린초는 동맹국의 대규모 군사기지가 위치해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마을로 취재를 온 사쿠라이는 외계인을 자처하는 아마노라는 소년을 만난다. 아마노는 일가족 살인 사건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타치바나 아키라의 동료라고 말한다한편, 카세 신지는 일을 그만두고 매일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고 있다. 그래도 뇌질환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지는 나루미에게 고백한다. 실은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외계인이 나타났다. 그들의 목적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탐사를 하는 것이다. 탐사를 위해 그들은 먼저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안전하게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이드를 찾는다. 가이드가 구해지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으로 들어가 필요한 개념을 모으기 시작한다.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한 해안가 항구 마을에서 벌어진 이 기괴한 사건은 흥미진진하다.

지구에 불시착한 ET처럼 귀여운 외계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구를 침공해온 외계인처럼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다. 이 외계인은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스며들어 인간을 탐구한다. 외계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 소유, 공동체 같은 개념을 수집한다. 문제는 한번 빼앗긴 개념은 그 사람에게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개념을 뺏긴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대체 외계인은 이 개념을 가져다가 무엇에 쓰려는 것이었을까?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면 비로소 그 답이 보인다.

 

 

카세 신지는 실종 3일 만에 바닷가에 나타난다. 상처투성이 맨발에 죽은 금붕어 한 마리를 들고 넋을 놓은 채. 나루미는 모든 기억을 잊은 듯한 남편 신지를 보고 당황한다. 이 일로 오랜 별거 끝 이혼 직전이었던 두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그즈음 마을에는 연이어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 할머니가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개념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려 주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전직 경찰 쇼조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마을 상황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게다가 자신에게 가이드를 해달라며 나타난 고등학생 마코토가 외계인임을 목격하게 된다. 나루미의 형부이며 경찰인 히로키와 친구로 지내는 쇼조는, 나루미에게 신지가 외계인이란 사실을 알린다. 이들 앞에 나타난 신지는 자신은 떠나야 할 때가 되었고, 떠나게 되면 육체는 죽게 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남편 신지가 죽는다는 말에 나루미는 자신에게서 사랑이란 개념을 가져가라고 간청한다. ‘사랑이란 개념을 가져간 신지, 아니 신지의 육체 속 외계인은 무사히 자신들의 별로 돌아가 지구 침공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개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의 사고는 이 개념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 사전상 의미이다. 그렇다면 가족의 개념이 없으면 인간이 살아갈 수 없을까? 소유의 개념을 상실했다거나 사랑이란 개념을 잃어버리면 인간이 존재하기 어려울까? 이 작품을 보면 인간이 인간 외형을 갖췄다고 해서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들이 빼앗긴 개념은 단순히 사전식 의미가 나열된 문장이 아니다. 오랜 시간 경험과 감정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인간의 구성 요소인 것이다. ‘사랑이란 개념을 가져간 외계인 신지가 사랑이란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쓰러져 우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이 작품은 본격 SF 멜로극이다. 외계인이 나오니 SF가 맞고 사랑이란 강렬한 엔딩이 있으니 멜로도 맞다. 하지만 SF나 멜로를 살짝 걷어내면 그 자리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개념 없는 인간은 외계인과 비슷한 것 같다. 표현이 달라져야 할지 모르겠다. ‘이 개념 없는 인간 같으니!’이 외계인 같으니!’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