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북에 미쳐서 재산을 탕진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민 노인은
노년에 이르러 자수성가한 아들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아들의 고향 친구들이 모인 날, 민 노인은 그들의 간청으로 오랜만에 북을 잡고,
이 일로 아들 내외로부터 심한 타박을 듣는다.
대학에 다니는 손자 성규의 축제에서 하는 봉산탈춤 공연에 성규의 부탁으로 민 노인은 북을 잡게 되고,
성규가 데모에 참가했다가 잡혀가게 되자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1986년 제10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대학생들의 전통 문화에 대한 심취와 학생 운동으로 대변되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인 7, 80년대에서 인간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여기에서 파생되는 현대인의 삶의 가치가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가족사적 구조로 접근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북'으로 표상되는 본원적 삶을 추구하는 할아버지 세대와 실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아버지 세대의 갈등이 아들 세대에서 융합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당대의 사회 현실은 민주주의나 평등주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가문이나 뿌리를 따지는 풍토가 잔재해 있었다. 학생들은 데모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며, 예술가나 장인들의 삶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천대받으면서도 북을 놓지 않았던 고집스러움을 예술혼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민노인의 삶의 역정은 자유분방한 예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아들인 민대찬은 아버지의 방랑으로 인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로서 명예와 실리를 추구한다. 한편, 손자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할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갖춘 인물로서, 할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줄 것을 아버지에게 요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사적 아픔이 아닌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각 세대의 상이한 가치관을 보여 주며, 나아가 각 세대 간의 갈등이 단절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나아가는 화해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것은 작품의 제목인 '흐르는 북'을 통해 상징적으로 처리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단절된 듯이 보이는 세대라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고통을 공유하고 이를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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