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원일 '어둠의 혼'

clint 2021. 4. 7. 14:57

 

 

늘 숨고 어디론가 헤매고 다니다 불쑥 나타나곤 했던 아버지가 순경에게 잡혔다는 소문이 장터 마을에 퍼지게 되고, 모두 아버지가 총살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갑해는 당장의 배고픔과 아버지라 부를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슬플 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전부터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순경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어머니를 지서로 끌고 가는 등 갑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이 커져 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제 지서에 잡혔으니 더 이상은 집에 순경들이 밀어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식량을 구하러 이모 댁에 가신 어머니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와 아버지가 하셨던 행동을 회상하며 아버지가 왜 여태껏 도망만 다녀야 했는데, 빨갱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쁘기에 잡히면 총살을 시키는 것인지, 아버지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인지 등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져갔다. 그리하여 이모 댁에 도착한 갑해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 지서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모부 손에 의해서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갑해는 흐느껴 울며 무작정 강가로 향해 달렸고, 강가에서 이제는 집안을 떠맡은 기둥으로서 힘차게 버티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1973'월간문학'에 발표된 작품으로 분단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단편소설이다. 이념적 혼란의 와중에 처한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통해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던 당대 지식인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사건을 저녁 한나절의 시간으로 압축하여 현재형 문장으로 서술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그 비극성을 생생하게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전쟁이 지닌 비극성을 보여 준다. 한국 전쟁의 비극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한 민족끼리 벌여야 했던 전쟁이라는 점에 놓여 있으며, 이것은 분단 상황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지은이는 어린아이의 시점을 택함으로써 사상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이데올로기 대립이 야기한 한 가정의 파괴와 한 소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그림으로써 그 비극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서술된 소년의 내면 세계는 지나치게 솔직할 정도로 '배고픔'이라는 절대적인 빈곤의 상태에 대한 서술과 '수수께끼'로 압축된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 겹쳐지면서 당대 사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짚어 내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가족 관계의 단절과 가난을 초래한 것이 개인의 책임이냐 시대 상황의 책임이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소년으로 하여금 그것을 스스로 모색하게 한다. 결말부에 가서 이모부가 소년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굳이 보여준 이유도, 전쟁이라는 역사적 혼란의 이유를 묻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소년에게 남겨진 과제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전쟁 전후의 상황에 대한 단정적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는 작가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며 새삼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모습은, 삶의 외경을 통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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