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소유욕에 사로잡히면,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해학적인 코드로 풀어낸 작품이다. 지주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하찮은 땅뙈기에 지나지 않는 토지에 집착하는 러시아 지주들의 끝 모를 탐욕. 각자 소유한 ‘개’의 우수성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제정 러시아의 어리석은 지주들의 대결이 자못 우스꽝스럽다.
〈곰〉이 공연된 무렵 체호프는 단막 슈트카 〈청혼〉을 탈고한다. 1388년 10월에 마무리된 〈청혼〉은 같은 해 11월 10일 검열을 통과했고, 1889년 5월 3일 《신시대》지에 실렸다. 체호프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설가이자 극작가 쉐글로프가 〈청혼〉을 무대에 올렸다. 1889년 4월 12일 체호프는 쉐글로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는 당신의 〈별장 남편〉과 나의 〈청혼〉이 실패할 거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들을 13일에 상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천재적인 연출력이 그런 징후를 극복하고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청혼>은 국립극장 무대에서는 상연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희곡을 요리하세요. 물론 많이 상연할수록 좋을 겁니다. 이익이 더 많을 테니까요..” 그러나 체호프 어머니의 예상과 달리 〈청혼〉은 많은 관객을 동원했으며, 훗날 말르이 국립극장에서도 상연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청혼〉은 젊은 지주 이반 로모프가 이웃한 지주 스테판 추부코프의 딸에게 청혼하러 왔다가 벌어지는 사건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청혼>이 재미있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극단적인 성격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희극적인 상황 때문이다. 그들 모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토지와 소유물에 집착한다. 몇 푼 나가지도 않는 토지에 집착하는 지주들의 끝 모를 소유욕이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청혼〉의 주인공들은 토지를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입씨름을 거듭하다가 애초에 마음먹었던 의도를 잊어버린다. 로모프는 나탈리야에게 청혼하러 온 사실을 망각하고, 추부코프는 그 사실을 딸에게 통보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만큼 그들은 토지 논쟁에 목숨을 건다. 토지와 관련된 설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누구의 개가 더 나은가 하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를 두고 그들은 또 다시 논쟁을 벌인다. 슈트카를 쓰면서 체호프는 “단막극은 모름지기 ‘난센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등장인물이 나름의 얼굴(성격)과 목소리(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와 같은 주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희극이 〈청혼〉이라고 할 수 있다 로모프는 서른다섯의 건강한 남자임에도 흥분하면 심장마비가 일어날 정도로 부실한 인간이며, 추부코프는 ‘기타 등등’ 이라는 군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인물이다. 추부코프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나탈리야는 아버지 못지않게 토지와 개와 같은 소유물에 집착함으로써 강한 성격의 일단을 보여준다. 추부코프가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한 다음에도 나탈리야와 로모프는 곧 말싸움을 시작해 객석에는 웃음이 터진다. 〈청혼〉에서 체호프는 인간 모두에게 잠재된 소유욕과 과시욕을 19세기 러시아 지주들의 외관과 성격을 통해 드러낸다. 그들의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밝고 맑은 웃음이 극장을 가득 채우고, 관객은 만족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왜 웃는지를 심각하게 따지거나 생각하지 않고, 웃음을 통한 원기회복에 지극히 만족하는 것이다. 관객에게 최대한의 웃음을 선사한다는 보드빌 장르의 규칙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희곡 가운데 하나인 작품이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헨릭 입센 '리틀 에욜프' (1) | 2021.04.10 |
---|---|
안톤 체호프 '기념식' (1) | 2021.04.04 |
안톤 체호프 '곰' (0) | 2021.04.04 |
안톤 체호프 '결혼 피로연' (1) | 2021.04.04 |
안톤 체호프 '싫든 좋든 비극배우' (1) | 2021.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