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린 노티지 '스웨트'

clint 2021. 3. 16. 21:56

 

 

 

이 작품은 미국의 극작가 린 노티지의 2015년 작 <Sweat>이다. 제목인 'sweat’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우리말에서 땀이 의미하는 것처럼 노동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공장지대인 레딩을 배경으로 2000년과 2008년을 오가며 진행된다. 2000년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1994년 발효된 뒤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들까지 멕시코로 떠나거나, 남은 기업들은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들어오는 저가제품의 공세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폐업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던 무렵이다. 이때를 전후해서 미국은 제조업 붕괴의 정점을 찍었고, 그 후로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수호자들과 그들을 부추겼던 미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IT를 중심으로 하는 신산업체계로 재편된 새로운 경제가 이들을 충분히 먹여 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노동계급의 붕괴만 현실화 되였다. 이 작품은 바로 이 현상, 노동계급의 붕괴를 가장 작은 사회단위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 그리고 각 개인의 내면의 변화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때 각 개인은 흑인이고, 히스패닉이고, 백인이다 이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두 주요인물 트레이시와 신시아가 각각 백인과 흑인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평생을 바쳐 일해 온 회사가 라인을 폐쇄하면서 이들의 삶이 파국에 처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요하게 부각된다. 노티지가 그려내려 한 것은 각 인종들 사이의 갈등과 그 갈등으로 인해 도달하게 되는 파국이 아니라 그 반대다. 인종은 다르지만 이웃이자 동료로서 잘 유지되어 오던 사람들의 관계는 이들을 둘러싼 안정된 체제가 붕괴될 때 함께 붕괴되고, 그 과정에서 각 인종에 속한 개인들이 각자 시험에 들고, 고난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주목하고 있다. 린 노티지는 흑인 여성작가다. 흑인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두 차례(2009<폐허>. 2017<스웨트>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티지는 자신이 흑인여성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지 말아달라고 요구해 왔다. 자신이 쓰는 이야기들이 물론 주로 흑인,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한 것이지만, 그 삶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와 경제체제 전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고, 그 규정성은 보편적으로 중요한 주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고 바로 그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레딩의 바(BAR). 스무 살 언저리부터 같은 공장에서 일해 온 신시아와 트레이시는 동료 제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지만 어딘가 냉랭한 분위기가 감돈다. 신시아가 관리자로 승진하면서 같은 자리에 지원했던 트레이시와 불편한 사이가 되었던 것. 갈등은 공장 라인이 순식간에 폐쇄되면서 절정에 달하고, 두 사람의 아들 크리스와 제이슨마저 일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의 삶과 오랜 연대가 녹아 있는 그 바(BAR)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부품처럼 쉽게 교체되는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극적 묘미로 극대화시킨 수작으로, 작가에게 두 번째 퓰리처상을 선사했다. 지구 반대편 작은 바(Bar)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노동자의 좌절과 불안한 시대상이 맞물려 예고 없이 무너지는 일상의 공포를 가장 현실적인 스릴러로 확장시킨다. 마침내 모든 것이 깨지고 흩어지는 순간, 다음을 향한 작은 희망의 단서가 보인다.. 

 

 

 

인종과 성차별, 온갖 수모를 묵묵히 견뎌내며 공장 관리자로 승진한 신시아. 성취감도 잠시, 비용 삭감을 결정한 회사의 명령으로 평생 함께한 동료들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퇴근 후 술 한 잔에 서로를 다독였던 친구들이 이제 피켓라인(노동 쟁의 때 출근 저지 투쟁을 위해 파업 노동자들이 늘어선 줄) 너머에서 그를 비난한다. 자신의 선택이 배신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기억해둬. 우리 중 한 사람은 뒤에 남아 싸워야 한다는 걸.”

 

작가는 새로운 장을 시작할 때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지문’으로 제시한다. “억만장자 포브스가 공화당 경선을 포기했다”든가, “레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엄마와 다섯 자녀가 홈리스가 됐다”라든가, “26세 남자가 우드워드 스트리트의 바를 나서다가 총에 맞았다”라든가, 심지어는 농구팀의 준결승전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개인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사회적 운명’에 대한 암시다.


Lynn Nottage
극작가. 1964년에 뉴욕시 브루클린 출생. 피오렐로 라과디아 예술고등학교 재학시 첫 희곡 〈베로나의 어두운 면The Darker Side of Verona〉을 썼다. 이후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예일대학 대학원에서 희곡을 공부했다.
그의 주요 작품은 〈기쁨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Crumbs from the Table of Joy〉(1995), 〈속옷Intimate Apparel〉(2003), 〈우화Fabulation〉(2004), 〈폐허Ruined〉(2008), 〈그건 그렇고, 베라 스타크를 소개합니다By the Way, Meet Vera Stark〉(2011)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폐허〉가 그에게 첫 번째 퓰리처상 (2009)을 안겼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작품에 담으면서 시종일관 미국 사회 내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를 통해 차별은 피해자를 해칠 뿐만 아니라 가해자 또한 이유 없는 폭력의 주체로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스웨트Sweat〉(2015)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 주제를 미국 제조업의 몰락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다룸으로써 인종 간 폭력과 계급의 문제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노티지는 이 작품으로 두 번째 퓰리처상(2017)을 수상했고, 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작가가 되었으며, 2019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