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게오르그 카이저 '병사 다나카'

clint 2015. 11. 6. 21:08

 

 

 

 

카이저는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존스타인벡(1902~1968)의 장편소설로 1939년 출판되었다. 거대 자본에 의한 농업 기계화로 생환 터전을 상실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비판했다.)를 읽고 구상 중이던 <병사 다나카>를 지인인 스위스 극작가 아륵스(Arx : 1895~1949. 카이저가 스위스로 망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 줌.)와 함께 집필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륵스는 카이저의 천재성에 대한 외경심에서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이에 카이저는 단독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직후인 1939년 말에 3막극 <병사 다나카>를 쓰기 시작해서 1940년에 완성했다. 같은 해 11월2일 스위스 취리히 극장에서 이 작품을 초연했는데 일본대사관의 항의로 이후 공연목록에서 제외되었다. 중립국의 위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스위스 당국이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독일초연은 1946년2월13일 베를린 헤벨 극장에서 있었다. 군국주의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병사 다나카>는 작가가 스위스망명 중에 쓴 가장 뛰어난 평회주의 반전극으로 꼽힌다. 일본 대사관이 공연에 항의했지만, 작가는 꼭 일본의 사회적 상황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1931년 일본의 만주공격이 카이저의 선택을 정당화했을지라도, 그는 어떤 특정 군대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군국주의 전반을 비판한 것이다. 즉, 그는 이 드라마를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항의와 공격 수단으로 썼다고 할 수 있다. 망명지 스위스에서 카이저는 이 드라마를 쓰면서 반파시즘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으며, 독일과 동맹국인 일본을 군국주의에 대한 그의 공격에 적합한 배경으로 이용했다. 카이저는 이 드라마를 구상했을 때 물론 히틀러를 염두에 두었고, 전제군주국가 일본과 나치 독일을 비교하는 것도 극작에서 주요 관심사였다. 독일 동맹국인 일본은 베를린 - 도쿄를 축으로 하는 군국주의의 한 극점이었을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천황과 총통의 신격화를 도모했다. 따라서 카이저는 이 드라마로 독일 나치즘과 파시즘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이저는 스위스 망명기간 중군국주의 비판과 함께 점점 더 사회주의에 경도했다. 그는 경영 합리화, 생산수단 개선 및 공동소유, 주 30시간 노동 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현대 국가제도는 인본주의와 유물론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이저는 <병사 다나카>에서 이 같은 사회주의 관점을 바탕으로 20세기 프롤레타리아의 인간적 상황을 묘사했다. 따라서 <병사 다나카>는 전쟁의 사회적 배경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궁극적으로 침략전쟁으로 귀착하는 군국주의의 경제적 착취를 맹렬히 고발하는 사회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극의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작가가 추구하는 몇 가지 이념과 주제를 살펴보자.

 

 

 

 

1막은 "농사꾼 다나카의 초라한 오두막집"을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한 농촌과 농민의 목가적 풍경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그 뒤로 사회적 궁핍과 고난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면서 군국주의와 가난한 농부의 삶 사이의 관계를 상세히 묘사한다. 처음에 다나카는 가족과 국가의 질서 속에서 그 두 가지 를 확고하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사회질서 내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복종과 의무라는 톱니바퀴 부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천황의 군인으로 특권을 향유하기도 한다. 가족은 휴가를 받아 귀향하는 그를 위해 호사스러운 환영행사를 벌인다. 2막에서 밝혀지는 것처럼 이 환영 행사에 드는 경비는 부모가 누이동생을 판 돈으로 이자와 세금을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충당한 것이다. 휴가를 나온 다나카는 가족 내에서 아들 다나카가 아닌, 군인 다나카로만 불린다. 인간보다 군인이 우위에 있고, 인간이나 아들로서 가치는 존중되지 않는다. 인간 가치의 상실이 인간 개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군인들의 면전에서 다나카의 가족들은 거의 노예처럼 경외심을 보인다. 군인인 손자 앞에서 절을 하는 할아버지와 들에게 술과 담배를 권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군국주의에 의한 전통적인 예의범절과 도덕 파괴, 가족 간 위계질서 해체를 볼 수 있다. 다른 사회계층에 의한 착취의 희생자로 등장하는 다나카 가족을 비롯해 가난한 민중은 이러한 군국주의의 폐해뿐 아니라 자신들이 겪는 궁핍과 천황을 비롯한 사회상류 층이 누리는 부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고난을 겪고 궁핍하지만 동포의 선(善)과 인격을 믿는다. 여기서 민중은 군국주의나 민족주의와는 동떨어진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들이다. 다나카 가족 묘사에서 가난하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한 농사꾼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소박한 농민들의 긍정적인 특성들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다나카의 어머니는 축제 음식을, 아버지는 술을 모든 이웃과 나누고자한다. 이들 역시 봉급을 아껴 기근에 시달리는 이웃을 돕고자 한다. 신문에서 농민의 운명을 접하고는 매일 마른 고기를 모으고 술을 살 돈을 절약한다. 여기서 민중은 카이저의 새로운 인간들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기존의 부정적인 민중 관을 수정하면서 표현주의의 새로운 인간이 가지는 긍정적 특성을 이들 민중에게 전이하고 있다.


카이저의 표현주의 시기 작품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간의 특징 역시 이타주의와 이웃 사랑이다. 그러나 거기서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이타주의가, 여기<병사다나카>에서는 물질적 이타주의가 강조되고 있다. <가스>3부작 등 표현주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민중이 익명성, 집단성을 지니고 있다면, 여기서는 개인적, 인간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인간적인 면이<가스>3부작에 나오는 민중과 구분된다. 다나카 역시 카이저가 묘사한 이전의 새로운 인간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 그와 구분된다. 다나카는 표현주의 드라마의 새로운 인간처럼 이웃, 동포, 민중과 화해할 수 없는 적대 관계에 처한 적이 없으며, 항상 그들의 일부로 존재한다.

 

 

 

 

2막 무대는"유곽"이다. 귀대한 뒤 다나카는 뛰어난 사격 솜씨로 포상휴가를 받아 동료들과 함께 유곽을 찾는다. 여기서 유곽은 다나카의 의식이 변하는 장소다. 농촌의 피폐한 상황과 농민의 굶주림이 다나카를 순종적인 태도에서 흔들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유곽에서 우연히 누이동생을 발견하고, 부모가 고리 이자를 지불할 수 없어 팔려 왔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서 분연히 일어서는 것이다. 누이동생과 끔찍스러운 만남으로 인해, 왜 병사가 너무 많이 알면 군 복무를 수행할 수 없는지, 연체된 고리대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따라서 은폐되었던 사회실상을 인식하고 나아가 비인간적인 사회 상황과 원인을 간파한다.
카이저는 진실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예증해 보인다. 즉, 다나카 가족을 예로 들어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인 물질적 착취, 재산압류, 비인간화, 가정 붕괴, 전통적인 미풍양속의 파괴 등을 지적한다. 다나카의 새로운 비판적 태도는 그가 직접 체험한 특수하고 구체적인 사례에서 비롯한다. 그가 변화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또한 유곽은 사회실상, 군국주의 국가의 실체 등에 대해 인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나카는 여기서 진실을 알게 되고 사회의 허위를 꿰뚫어보게 된다. 그리고 천황과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당한 일들도 인식하게 된다. 이 같은 인식이 행동으로 옮겨져 누이를 치욕으로부터 지켜 주기 위해 그녀와 그녀를 품에 안으려는 하사관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누이 살해는 구원과 해방, 정화 행위를, 하사관 살해는 군국주의 대표인 천황 살인을 상징한다. 누이를 요구하는 하사관의 잔인성에서 불현듯 다나카는 신처럼 믿었던 천황의 참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국가와 군을 위해 복종, 봉사하던 자가 정의를 위해 국가와 천황에게 도전하는 자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의식화 과정을 통해 다나카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소박한 병사에서 회의하는 자, 선동하는 자, 좀 더 인간적인 세계를 동경하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과정은 진실에 이르는 비극적 각성과정 이기도 하다. 결국 누이동생과 운명적으로 만난 사건이 다나카의 행동에 다른 민중과 구분되는 변화를 가져오고 극 진행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제 다나카는 이중 살인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피고가 고발자로 변하는 3막 심문 과정이 전체 드라마의 압권이다. 처음에는 자기 운명에 굴한 것처럼 공소장 내용. 재판자의 부연 설명을 겸손한 자세로 경청한다. 다나카는 재판과정 대부분을 침묵으로 일관한다. 다나카의 침묵은 극적 효과를 고조하는 역할을 한다. 군법회의는 누이를 살해한 죄는 용서하지만, 상관 살해는 중형을 면키 어렵다고 판결한다. 그러나 다나카는 가장 모범적인 군인이었기 때문에 사면을 바랄 수도 있다. 천황에게 용서를 빌면 되는 것이다. 다나카는 이 같은 체제 질서를 회복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이 없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엄청난 요구를 한다. "천황이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 발언이 바로 드라마의 핵심이다. 재판장에게는 누이동생 살해보다 하사관 살해 때문에 빚어진 군 기강과 위계질서 파괴가 더 중요하고, 다나카로서는 완전히 부당한 사회질서를 인식한 터이므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자 이름으로 천황을 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극 마지막에 다나카는 긴 독백과 같은 연설을 통해 군대와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국가체제와 천황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미래의 인도주의가 다나카의 이 발언에서 표명되고 있다. 다나카는 동포들의 모든 불행이 천황 책임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천황 스스로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법정에서 다나카는 개전의 정을 보이는 천황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 본다. 무섭게 천황을 고발하는 다나카의 입을 법관들이 막아 버린다. 겉으로 보이는 법관의 온화함은 폭력을 우아하게 위장한 것이다. 다나카는 끌려 나가 일제사격으로 처형당한다. 둔탁하게 울리는 처형의 북소리가 인류의 장송곡처럼 울려 퍼지면서, 결국 각성한 인간이 전제군국주의 권력 체제 안에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법정에는 정적이 감돌고, 무대 지문에 따르면 배경에 있는 천황 사진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카이저의 작품에서 흔히 그렇듯 개인의 저항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극이 끝난다. 다나카가 천황의 권위를 모독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결국 다나카 역시 누이처럼 죽음을 통해서만 억압적인 인권 침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의 죽음을 통해 한편으로는 독재의 강도가 완화되거나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된 인간이 전제군주국가의 비인간적인 모습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드라마를 움직이는 생명력, 즉 극적 긴장이 고조되는 요인은 꺾을 수 없는 독재의 무서운 강도와 각성한 새로운 인간의 위대성이라는 두 요소의 대립이다.
카이저는 다나카라는 일본인 병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인간의 품위가 왜곡된 사회조직에 의해 어떻게 훼손되는지 보여 준다. 근면하고 선량하며. 순수하고 정직한 한 병사의 처형은 한마디로 군사독재 체제가 얼마나 잔인하고 파괴적인 것인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다나카의 희생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일개 무력한 개인이지만 온당치 못한 체제에 대해서는 자기 생명을 걸고서라도 저항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한 개인의 억압과 약탈에 대해 인류를 대신해 고발하고 있다.
카이저는 이처럼 군국주의를 공격하고 있지만, 군국주의 자체는 드라마 구성에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군국주의의 영향, 그것이 드리우는 지속적인 그늘이다. 그 그늘이 소박한 인간들의 삶을 어둡게 하고, 농부의 아들 다나카의 비극을 초래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드라마는 무력 통치와 전쟁, 경제적 착취와 인권침해의 결합을 보여 주는데 이는 작가 망명 이후 창작활동을 규정짓는 요소다. 카이저는 이 드라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전쟁과 침략이 목표인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권력 체제는 인간 공동체가 벗어나야할 가장 저급한 체제임을 강조한다. 일본 농부들의 비참한 상황, 황궁의 호사스러움, 인간의 부자유 등은 카이저에게 감옥 국가인 독일에서 행해지는 정치적 억압을 고발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는 자유 억압을 탄핵하고자 했다.

 

 

 

 

아륵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병사 다나카>에 대해 카이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자유가 없이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때문에 나는 감옥국가인 독일을 떠났다. 그러나 집단적 광기는 전 지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점점 더 중대되고 있다. 미친 자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끔찍스럽고 비참한 일이다. 현재가 끝장났다면 미래라도 건지련다. 그러니까 난 해방된 독일을 기다려야 한다. 나의 죽음을 넘어서서 라도.
전쟁, 그건 삶과의 이별이다. 병사 다나카가 고발의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다. 무엇에 대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 제복을 입은 자의 비겁함에 대해, 군국주의로 추락하는 것에 대해. (...) 이제 병사 다나카가 온 세계를 향해 흔드는 횃불에 불을 붙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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