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가오싱젠 '독백'

clint 2015. 11. 6. 21:02

 

 

 

 

 

 

「독백」 (1985)은 가오싱젠의 연극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잘 나타나는 모노드라마다. 제4의 벽으로 대표되는 서구 근대 연극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배우 자신과 역할과 극중 인물의 관계를 모색하고, 표현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작가의 박품 설명
「독백(獨白)」은 연기 예술에 대한 나의 작은 선언이다. 이 모노드라마에서 나는 연기 예술에서의 배우와 그의 역할, 그리고 자기 개인의 독특한 인생 경험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 이 삼자의 관계를 제기했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연기는 중성적인 존재인 배우를 통해 다른 양자를 연결시키고, 이 삼자가 서로를 관찰하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고, 또한 이 삼자가 모두 관객과 교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연기의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이전 사람들 이 이것을 충분히 해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서양 연극은 본래의 전통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 며, 많은 유파가 생겼고, 많은 실험을 거쳐 매우 다양해졌다. 그러나 그 많은 공연과 실험 가운데 벌써 새로운 위기가 드러나고 있는데, 바로 희곡 작품과 연출, 연기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부조리극 이후, 지금 서양의 연극은 이미 연출가가 군림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연극의 개념과 표현 수단을 찾아내려는 그들의 시도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폴란드의 그로토프스키 ( 1933~1999)와 칸토르(Tadeusz Kantor. 1915-1990)는 뛰어난 연출자, 연기자로, 그들의 실험은 모두 연극적인 것이었다. 다만 만약 연극의 개념과 방법의 혁신을 추구한다면서 새 세대 극작가의 작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위대한 연극 작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동양 연극의 혁신에 있어서도, 희곡의 창작과 연출, 연기가 새로운 인식하에 힘을 합하여 서양 연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내가 실험을 통해 발굴해 내고자 하는 것은 연극이라는 예술 본연의 잠재력이지, 이 예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나는 반연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연극 예술이 탄생할 때부터 지녀온 생명력을 회복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민간의 설창과 재담, 약장수의 입담, 농촌의 떠돌이 극단, 마당놀이, 상시 지역의 당집 굿, 강서 동북지역의 탈춤에서 티베트의 장극에 이르는 산골의 각종 탈놀이 및 중국 서남 지역 소수 민족들의 원시 종교 의식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 중에서 현대 연극의 개념과 형식을 꽃피울 씨앗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망명 후에 창작한 작품으로는 「도망」(1989), 「생사계(生死界)」(1991). 「야유신(夜i觀申)」(1993). 「대화와반문〔對話與反詰〕」(1994). 「산해경전(山傳)」(1994). 「주말사중주(週未四車ᅳ奏)」(1995). 「팔월의 눈(1997) 등이 있는데. 이들 후기 작품은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않았으나. 오히려 유럽과 대만에서 꾸준히 출판. 또는 공연되었다. 「도망」은 직접적으로 '천안문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쓰였다. 소요 사태에 참가했거나 연루되어 도망치던 세 사람이 한 창고에 숨어들면서 펼쳐지는 갈등과 고뇌를 담았다. 작품을 통한 그의 망명 선언인 셈이다. 「야유신」은 한 몽유병자의 의식 속에서 현대인의 욕망과 양심, 진실과 허상, 의미와 언어 표현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매우 현대적이면서 무게 있는 작품이다. 현실과 몽유의 이중 구조를 통해 인간의 내면,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파헤쳐 보려는 집념이 보인다. 아방가르드적인 서구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지만, 그 저변에는 극작가의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가 진지하게 펼쳐진다.
「대화와 반문」은 프랑스에서 먼저 발표되었고, 2001년 아비뇽 연극제에 서는 작가가 직접 연출하여 무대에 올려져 호평을 받았다. '팔월의 눈」은 7세기 중엽부터 당나라 말기인 9세기 말까지 약 250년에 걸친 시기 오대조 홍인대사가 육대조 혜능(慧能)에게 법통을 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선(單)의 역사와 전설을 통해 현대인에게 눈처럼 신선한 무상무념의 선의 정신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마치 한여름 무더위 속에 순식간에 녹아버릴, 또는 아예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8월의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