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장 부쇼의 연출로 '열린 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는 이 작품은 1979년에는 라디오 '프랑스 퀼튀르'와 라디오 '스위스 로망드'에서 희곡 낭독으로 소개되었다. 1997년에는 엑쌍프로방스 3bisF극장에서 즈느비에브 위르테방 연출로 낭독 공연이 있었다. 2005년에는 피에르 에티엔느 빌베르 연출로 오스트발트에서 '물과의 만남 축제' 참가작으로 공연을 했다. 최근 2007년에 장-샤를르 무보 연출로 파리 마레극장에서 낭독공연이 있었다. 한 남자는 앉아 있고 한 여자는 서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앉으라고 계속 권한다. 여자는 과거에 알던 남자가 이 남자를 닮았고, 그 사람도 앉으라고 똑같이 권했다고 하며 거절한다. 여자는 과거에 큰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하며, 왜 그때 문병을 오지 않았느냐, 많이 기다렸다고 하며 원망한다. 여자는 떠나는 척도 하고 자신의 발목을 만지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하지만 공중으로 뛰려다 넘어진다. 남자는 여자를 일으켜 의자에 앉게 만들어준다. 여자가 드디어 앉을 때 남자는 떠난다.
남자가 서있고, 여자는 서 있다는 사실 외, 이들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텍스트 상에 전혀 지시된 바가 없다. 길에 있는지, 병원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은 정신병원에 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여자에게 앉으라고 권한다. 여자는 끝까지 거부한다. 왜?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성인 남자가 여자 아이를 꾀어내는 장면 같기도 하고, 첫 만남에서 남여가 서로 유혹하는 장면 같기도 하면서, 실망한 첫 사랑, 첫 연애 경험의 실패, 발병 등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넘어 연극적으로 드라마틱한 장치를 많이 숨기고 있다. 이 작품에서 동작으로 앉았다, 섰다만 있다. 여기서 서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고, 반면에 앉아있다는 것은 부동자세, 장애자, 부상자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 앉는 데서 더 나아가 눕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꼼짝을 못하는 상황이고, 여자는 그 주변을 돌며 서있다. 이 남자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하나의 연극적인 게임이다: 앉는 사람이 지고, 서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계속 서있던 여자가 드디어 앉으려고 할 때 남자는 떠난다. 여자가 진 것이다.
인간관계의 문제가 주가 되면서 아이러니, 풍자, 삶에 대한 철학이 들어 있다.
또 한편으로, 이 작품은 인생을 잔인한 게임으로, 잔인한 파워게임으로 보고 있다. 페로 동화 〈빨강 망토〉의 늑대와 소녀 같은 관계 설정도 가능한 해석일 것이다. 늑대가 할머니를 집아 먹은 후,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할머니로 분장해 할머니 침대에 누워서 할머니 흉내를 내며, 할머니 집에 들른 손녀 꼬마 여자애를 결국 잡아먹었다는 이야기. 결론적으로 살기 위해 남의 자리(상대방의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즉 남을 죽여야 한다는 늑대의 논리까지 확대 해석해 볼 수 있다.

장-뤽 라가르스 원작의 <상대방의 자리(La place de L'autre)>는 부조리극이다. 의자가 5개 등장하는 무대에서 남자와 여자는 대화를 나누기도,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 역시 독특하다. 나이 든 남자는 의자에 앉아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젊은 여자는 무대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암전 한 번에 의자가 하나씩 사라지는 구성으로 매 장면마다 다른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가 쉴새없이 나눈다.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유하는 남자와 이를 절대 거부하는 여자. 이들의 대립이 연극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게끔 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나이가 어려보이지만,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다는 우위를 이용하여 남자에게 인생에 대한 훈계를 한다. 게다가 그녀가 남자를 두고 나갈 때 남자가 보이는 절망적인 반응, 그리고 물렁한 사탕을 남자에게 강제로 먹이는 모습을 보아 의자라는 공간과 의자를 벗어난 공간은 서로 다른 위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를 의자에 앉히려고 하고, 여자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한다. 그리고 여자는 점점 더 과격하게 움직이고 종래엔 공중으로 뛰려다 넘어지고 드러눕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남자가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이 의자 밖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바뀐 결과를 이겼다, 그리고 졌다.라고 표현한다. 즉 이들의 대화와 몸짓이 결국은 하나의 승부가 되었던 것인데, 이 승부의 결과가 무엇을 낳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 쇠약해 보이는 여자의 대사만이 막연히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두 가지의 분명한 대립이 존재했지만,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의미있는 행위도 아니다. 이들의 승부는 남자가 이기는 방식으로 끝났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의자를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결국 연극을 통해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이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지만, 이 대화는 두서없고 막연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모든 의미가 확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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