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풍의 5막 극. 종을 만드는 장인과 숲속의 요정 사이의 사랑과 비련을 그려낸 작품이다, 자연주의로부터 신낭만주의로 옮아가는 예술가의 내면생활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1896년 작이다.
종(鍾)을 만드는 유명한 장인(匠人)인 하인리히는 숲속의 요정들을 감화시키기 위해 종을 만들어 산속 교회로 운반하는 도중에 그리스도교의 적(敵)인 요정들에 의해 종(鍾)은 깊은 호수 밑으로 굴러 떨어져 버리며 하인리히는 실신하고 만다. 꿀벌의 요정(妖精) 라우텐데라인의 도움으로 소생한 하인리히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처자(妻子)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새로운 사랑에 힘입어 다시 종(鍾)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인리히는 자기가 만든 종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얼음덩이를 녹여내는 그러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산 아래의 속세에서는 하인리히를 산속에서 종을 만드는데 정력을 집중하지 못하게 들볶는다. 목사, 학교의 교장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하인리히더러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직책을 담당하라고 핍박한다. 하인리히는 극단적인 모순의 소용들이 속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게 된다. 한 쪽에서는 산속의 신화적인 세계가 하인리히를 유혹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산 아래의 평범하고 따분한 세속세계가 그의 등골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한 쪽에서는 절세의 미인인 라우텐데라인이 그를 향해 윙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강지처 마리아가 오라고 손짓한다. 파우스트처럼 하인리히의 마음속에서는 두 개의 심장이 고동치고, 두 개의 영혼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하인리히는 청신한 산속의 신화세계를 동경하면서 라우텐데라인과 매일 만나면서 같이 살고 싶었지만 세속의 사회와 처자들은 하인리히를 조용히 살 수 없게 만들며, 그 호수에 빠져버린 종은 늘 신음 같은 소리를 내곤 한다. 바로 하인리히가 이처럼 갈등하고 방황하고 있을 무렵에 아내가 자기의 가출로 인해 호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가는데, 그러는 사이에 라우텐데라인은 개구리의 정령(精靈) 니켈만의 아내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다시 숲속으로 돌아온 하인리히는 라우텐데라인의 양모 노파에게 한번만 다시 라우텐데라인을 만나게 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요파(妖婆) 요구는 들어줄 수 있으나 목숨과 맞바꾸는 조건으로 독배를 마시라고 한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하인리히는 자기는 결코 완전무결하게 산속의 신화세계에 속하는 존재로는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하인리히는 독배를 마신 뒤 라우텐데라인의 입맞춤을 받으면서 죽는다. 하인리히는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태양이 떠오른다, 자연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부르짖는다. 자연 속에서 하인리히는 구원을 받는다.

이 극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이 극은 예술가와 현실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산속의 그 신화세계는 예술가들에게 속하며, 예술가들은 그 속에 빠져 들어가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자기의 예술적 창조 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숙명적으로 현실사회를 이탈할 수는 없다. 예술가들과 현실 사회 사이에는 언제나 대립적 상황이 펼쳐지게 되며 이러한 모순과 갈등은 예술가들의 내심속의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주게 되는 법이니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 극은 하우프트만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상징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이 극을 창작하던 당시 하우프트만은 개인 사생활에서의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었다. 그때 하우프트만은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마그리트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으며 이 일로 하여 그의 조강지처 마리아는 가출하여 미국에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하인리히는 한편으로는 자기에게 무한한 창작적 격정과 영감을 선물해 주는 마그리트를 깊이 사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강지처 마리아에 대해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두 녀인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을 겪는 하우프트만의 그림자가 이 극에 짙은 음영(陰影)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하우프트만의 개인 사생활의 그림자이며 그의 내심적 갈등과 방황의 상징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 극에 등장하는 매개 인물 형상들도 모두 각자의 상징적 의의를 갖고 있다. 목사와 학교의 교장은 현실생활속의 용속한 세력을 상징하고, 처자(妻子)는 가정의 부담과 속박을 상징하고, 라우텐데라인은 이상 ․ 행복 ․ 자유 ․ 영감‥ 청춘의 힘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인공 하인리히 본인은 인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스럽게 신음하면서 선택의 곤혹 속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 Gerhart (Johann Robert) Hauptmann ]
1862. 11. 15 프로이센 슐레지엔 바트잘츠브룬~1946. 6. 6 아그네텐도르프.
독일의 극작가·시인·소설가.
19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유행하던 슐레지엔의 한 휴양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그곳 주요 호텔의 소유주였다. 1880~82년 브레슬라우 예술교육원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1882~83년에는 예나대학교에서 과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883~84년 로마에서 조각가로 일하다가 1884~85년 베를린에서 공부를 계속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시인과 극작가가 되려는 결심을 했다. 1885년 유복한 마리 티네만과 결혼하여 베를린 근교의 에르크너에 정착해 정치·신학·문학 등 여러 분야에 손을 대는 동시에 자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흥미를 지닌 일군의 과학자·철학자·전위작가들과 교제했다.
1889년 10월 공연된 사회극 〈해뜨기 전 Vor Sonnenaufgang〉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긴 했지만 하우프트만을 하룻밤 사이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강한 사실주의 색채를 띤 이 비극은 19세기의 수사학적이고 고도로 양식화된 독일 드라마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고무되어 하우프트만은 유전이라든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곤경, 개인적 욕구와 사회 제약 사이의 충돌 같은 자연주의적 주제를 다룬 뛰어난 극들을 빠른 속도로 연속 발표하면서 사회적 현실과 일상언어를 예술적으로 재생산했다. 가장 주목받은 인간적 작품일 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에도 매우 비판적이었던 〈직조공들 Die Weber〉(1892)은 1844년 슐레지엔 직조공들의 폭동을 동정하는 입장에서 극화한 작품이다. 〈평화의 축제 Das Friedensfest〉(1890)는 신경증을 보이는 가정 내의 소란스런 관계를 분석하고, 〈고독한 인간들 Einsame Menschen〉(1891)은 아내와 그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젊은 여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한 불행한 지식인의 비극적 종말을 그렸다.
하우프트만은 〈마부 헨셸 Fuhrmann Henschel〉(1898)로 프롤레타리아의 비극을 다시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가정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악화되는 한 노동자의 밀실공포증을 연구했다. 그렇지만 비평가들은 그가 〈하넬레의 승천 Hanneles Himmelfahrt〉 (1894)에서 자연주의 신조를 포기했다고 느꼈다. 이 작품은 학대받던 한 구빈원의 소녀가 죽기 얼마 전에 꾼 꿈들을 시적으로 환기시킨다. 풍부한 베를린 사투리로 씌어져 성공한 희극 〈비버 털 코트 Der Biberpelz〉(1893)는 한 약삭빠른 여자도둑을 중심으로 그녀가 허풍스럽고 우둔한 프로이센 장교들과 대결해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아내와 불화상태에 있다가 1904년 이혼했고, 같은 해 배우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마르가레테 마르샬크와 결혼했다. 마르샬크와는 이미 1901년부터 슐레지엔의 아그네텐도르프에 있는 집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하우프트만은 자주 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여생을 주로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독일 자연주의를 정립했으나 후기 희곡에서는 자연주의 원칙들을 포기했다. 말년의 희곡에는 동화적이고 사가적인 요소들이 신비적 종교성 및 신화적 상징주의와 뒤섞여 있다. 〈카를 대제의 인질 Kaiser Karls Geisel〉(1908)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 개성의 근본적인 힘을 그린 작품과 당대인의 운명을 자연주의적으로 파고든 〈도로테아 앙거만 Dorothea Angermann〉(1926) 같은 작품이 병존한다. 하우프트만의 극작활동에서 마지막 단계는 〈아트리덴 4부작 Die Atriden-Tetralogie〉(1941~48)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이 4부작은 비극적 그리스 신화를 통해 하우프트만 시대의 잔인성에 대한 공포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 사회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있다.
하우프트만의 장편·단편 소설, 서사시들은 극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하며 종종 주제면에서 내적으로 얽혀 있다. 〈그리스도 안의 바보, 에마누엘 크빈트 Der Narr in Christo, Emanuel Quint〉(1910)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현대판으로, 경건주의의 황홀경에 사로잡혀 있는 슐레지엔의 어느 목수 아들의 격정을 묘사한다. 그에 대비되는 인물은 하우프트만의 가장 유명한 소설 〈조아나의 이단자 Der Ketzer von Soana〉(1918)에 나오는 배교자 사제인데, 그는 이교적인 에로스 숭배에 빠진다.
초기 작가생활에서 하우프트만은 한결같은 노력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후기에 더 많은 작품을 써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고르지 않았다. 예컨대 야심적이며 환상적인 서사시 〈틸 오일렌슈피겔 Till Eulenspiegel〉(1928)과 〈위대한 꿈 Der grosse Traum〉(1942)은 학술적 구조와 철학적·종교적 사상을 훌륭히 종합시켰지만 문학적 가치는 불확실하다. 만년의 몇 십 년간은 우주론적 사변으로 인해 무대 위에서나 독자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다가오던 인물들을 창조해내던 타고난 재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독일에서 누린 문학적 명성은 비할 데 없는 것이었고, 나치 정부는 그에게 거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는 독일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망명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 않았으나 정치적으로 순진했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남아 있었고, 슐레지엔 주변지역이 소비에트 적군에게 점령당하고 나서 1년 후 죽었다. 하우프트만은 20세기 초 독일의 가장 탁월한 극작가였다. 그의 광대하고 다양한 문학적 생산에 통일적인 요소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어린 관심으로, 이는 사회를 비롯한 다른 기초적 힘들에 의해 대개는 수동적으로 희생당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된다. 그의 극작품들, 특히 초기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자주 공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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