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만 뜨면 한 가지 생각뿐인 섬 노총각들이 단 하나뿐인 처녀지만 ‘대그빡이 모자란 것’이 치명적인 흠인 동네 팔푼이 봉애를 겁탈하는 참상과 사생아를 가진 순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섬 청년 순보의 우직한 사랑, 그리고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봉애를 겁탈한 섬 총각이 불러일으킨 비극...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운명은 인연을, 인연은 연분으로 맺어지며 새로운 희망을 낳는다.
89년 제 7회 전국연극제 장려상 수상작<안개섬> (김창일 작, 연출, 포항시민회관)은 감정이입과 연민 의식의 유발이라는 관점에서 폭발적인 힘을 얻어냈으니 이 작품을 기점으로 김창일은 87년부터 3년간 연속 전국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던 것이다. 처녀가 없어 결혼못한 섬노총각들의 비정상적 행태와 그 참상을 고발한 이 공연은 그것의 시사성과 고발성 등으로 일단의 강점을 보유하면서도 동시에 뭉클한 감동과 뜨거운 심령적 정화 과정을 감상층 모두에게 맛보게 하고 있다. 전라도 낙도지역 사람들의 참상을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내려 하면서도 섬사람들의 진솔하고 끈적끈적한 인간애를 특유의 사투리억양과 정감언어로 살려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가장 우리다운 연극의 맛과 멋을 일깨워주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도회지로 빠져나간 섬처녀들 때문에 장가도 못가고 욕정을 해소할 길 없는 총각들이 정신박약 상태의 봉애를 겁탈하여 임신시킨다. 우직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섬총각 순보는 며느리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자하는 병든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술집 색시를 돈주고 사오려 하지만 돈만 날리고 술집 색시는 도망을 가버린다. 어머니가 위독하자 임종전에 아내를 맞이해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네 팔푼이 처녀 봉애를 어머니 면전에 데리고 온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졸지에 순보는 봉애를 진짜 아내로 맞이하는 운명에 처한다. 봉애는 사생아를 출산하지만 순보는 모든 것을 관용하고 이해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욕정을 가눌 길 없는 동네 노총각 석봉은 봉애를 또 다시 겁탈하기에 이르고 봉애는 물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내를 잃고 울부짖는 순보의 모습, 감상층은 뜨거운 비장미를 주체할 길 없다. 결혼을 포기해야하는 척박하고 절박한 어촌의 참상, 세월이 흐르고 갈매기소리 들려온다. 그 옛 상처를 아우르며 딸과 더불어 그물코를 꿰메는 순보, 자연 속에 터를 두고서 가난한 삶일 망정 이를 관조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인물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 김창일의 휴머니즘 세계관이 말끔하게 마무리되어 펼쳐진다.

무대는 현실을 모방 재연한 사실주의 무대 양식이라기 보다는 양식성을 겨냥한 상징 무대로 일관하고 있다. 이 공연 무대는 좀더 세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상징성과 사실성의 조화가 무리없이 창출되어 무대 구성법의 측면에서 한층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무대 양쪽은 단이 설정되어 좌측 단은 순보가 살고 있는 실내 공간을 상징하고 우측 단은 술집과 같은 또 다른 공간을 상징하여 준다. 단의 활용은 장면 변화, 무대 구조물 이동 등의 번거로움을 없애주는데 기여한다. 무대 후면은 나무 각목으로 만들어진 격자형 무대 셋트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들은 오솔길이거나 사람들의 이동 상황을 알리기 위한 통로 구실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불특정 상황과 공간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장치들이다. 호리존트에 투사된 빛깔은 각 상황마다 달리 계산되어 투사되어진다. 낮과 밤의 차이, 평화로운 상황과 겁탈 내지 죽음을 맞이하는 절박한 상황 등이 음향의 지원과 더불어 농밀하게 창출된다. 봉애의 죽음과 순보의 절규는 감상층 모두의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온다. 연출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횃불을 사용한 표현주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투신, 절박함, 죽음 소식의 전달 과정, 아내의 시신이 옮겨지는 과정, 시신을 마주한 순보의 절규, 일초 일초가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데 이는 급박함을 알리는 음향과 기민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다이나믹한 신체언어를 통해 극대화되어진다. 언어는 이 상황에서 거의가 생략되어 있다. 단말마적인 언어, 외침, 단음절에 가까운 절규가 주종을 이룬다. 장송곡이 공연장 전체를 가득 메운다. 주인공의 아픔은 관객 모두의 아픔으로 전이된다. 아내 봉애의 시신이 옮겨지는 순간은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처리되어 또 다른 미적 파장을 드리워 낸다. 다시는 건너지 못할 이승과 저승 간의 다리가 무대 후면 격자 구조물을 통해 이미지화 된다. 호리존트에 투사된 장례 행렬은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있고 이는 현실에서 초현실 영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죽은 봉애가 선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순보에게 다가온다. 감정의 싸이클이 조절되기 시작한다. 장례 행렬이 음향과 조명의 지원을 받아 복바치는 감정 폭발로 이어지게 했다면 뒤이어 펼쳐지는 산자(순보)와 죽은자(봉애)의 춤은 차분함과 절제의 미학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부분은 <안개섬>의 제 14장 부분이다. 13장에서 횃불을 이용함으로써 표현주의 연극 미학을 일깨워 주었다면 14장은 초현실주의 연극 기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 점에 대한 이해를 위해 14장 부분을 잠깐 인용해 보기로 하자. 이 장면은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으며 오직 지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장송곡이 은은히 퍼지고 무대는 어둡다. 호리존트 푸른조명을 배경으로 천천히 봉애의 상여 나가는 모습이 그림자 처럼 윤곽만 보일 뿐이다. 차츰 무대 중앙에 적색 조명이 들어 오면 봉애가 소복을 하고 순보와 마주 앉아 풀꽃으로 왕관 목걸이 등을 엮어 봉애에게 씌어주고 걸어준다. 봉애는 좋아서 밝은 웃음을 웃는다. 봉애는 훨훨 날으듯 도망을 친다. 순보가 쫓아가 앞을 막는다. 두사람은 주저앉아 밝게 웃는다. 순보가 주머니에서 먹을 것을 꺼내 봉애에게 먹여 준다. 봉애는 좋아하며 꼬박꼬박 받아 먹더니 그 새를 못참아 반대쪽으로 도망친다. 순보는 또 꽃을 꺽어 모으는데 봉애는 상여와 함께 어느새 사라졌다. 순보는 봉애를 찾다 절망하여 쓰러진다. 비극성을 향한 환타지 공간은 현실과 초현실의 결합, 삶과 환상의 결합을 통해 점차 확대되어진다. 세월이 흘러 순보는 사생아나 다름없는 딸을 친딸 삼아 그물을 꿰맨다. 갈매기 소리와 바닷가 파도 소리가 그 때의 비극적 여운을 잔잔하게 일깨워 준다. 작가는 이 공연에서 비극적 상황을 중첩 확대시키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그로 인해 팔푼이 처녀 봉애를 아내로 맞이해야하는 상황, 겁탈 당하는 상황, 봉애의 죽음, 사생아를 자식으로 기르며 살아야 하는 순보의 처지 등은 갈등과 긴장을 유발시키는 주요 성분들이다. 감상층을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이 같은 요인들이 상호 앙상블을 이루며 힘을 발휘하였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비극의 정형성을 무리없이 창출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공연의 언어 처리 수법은 주목할 만 하다. 토속언어와 사투리가 각각의 상황 창출과 동기 부여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이 점은 구수한 음색과 해학성이 강한 토속 언어를 통해 비극적 흐름의 신파적 퇴행을 가로 막고 구성력을 부분적이나마 두텁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욕정을 가눌 길 없어 봉애를 겁탈한다던지 과부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던지 하는 이야기는 철저히 배우들의 대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고된다. 숨은 과거사건이 현재화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인과성이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의 희곡은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극작가 오청원은 이 공연에서 김창일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보완해야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로서 그의 활약은 소도시로서는 유난히 극작가 배출을 많이한 목포의 맥을 이어가는 구실과 지역 연극이 가장 소망스럽게 장려되어야하는 자생 연극의 핵을 이루는 구실을 겸하고 있어서 계속 주목을 받아온 셈이다. 그러나 이 작가가 앞으로 개선해야 될 것은 이야기 설정의 단조로움, 장막극으로서의 복합적인 구성, 그리고 작가의 다양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단계 승화될 때 목포의 자생 연극은 서울 연극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연극으로 성장할 것이다. 잦은 장면전환의 번거로움, 부분적으로 노출된 인과성 및 사실성의 결여는 극구성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 순보가 술집 색시에게 사기 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선 팔푼이 아내의 계도를 위해 사리가 분명한 분별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관된 성격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본 강령에서 이탈됨을 의미한다. 아울러 사생아를 임신한 봉애를 임종 직전의 어머니 앞에 아내라고 꾸며대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어머니가 팔푼이 봉애를 모를리가 없기 때문이다. 팔푼이에다가 사생아를 밴 봉애를 어머니가 죽고 없는 이 마당에서도 아내로 맞이한다는 점, 개연성을 살릴 틈새메꿈 작업이 필요하다. 구성면에서의 문제를 김창일 스스로 인정하면서 "극작과 연출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의 전반적인 강점은 "전개의 테크닉 면과 지루하지 않은 대사 그리고 순박함에서 우러나온 감동성"으로 요약되어지고 있다.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창작극을 출품한 그의 극작 열의는 알아줄 만하다. 공연설계의 힘이 축적될 때 양질의 극작설계의 힘이 창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각 지역 연극계에 커다란 도전이자 자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창일의 기본 스타일은 리얼리즘 연극 틀거리이며 여기에 폭 넓은 극적 환타지와 서정적 무대 이미지가 항상 구축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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