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어항 속의 열대어를 들여다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저마다 자랑하듯 스스로의 행복을 되씹듯 마냥 평온하기만 하다. 어쩌다가 열대어가 이 차가운 북극에서 살게 되었을까? 제 고장을 떠나서 저렇게 평화를 단조롭게 반주하는 열대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러나 아름다운 열대어의 세계에도 무서운 쟁투는 있었다. 한 놈이 다른 한 놈을 쫓아내고 물고 늘어지자 피를 흘리고 바둥댔다. 그것은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금시 무서운 악마로 변하는 경우와 흡사했다. 나는 이런 열대어의 생태를 보면서 하나의 비극을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결국은 이기적이요 고독한 생명이다. 자기 보존을 위해서 보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저버리는 잔인도 감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필연성에서라기보다 그릇된 편견이나 우월감에서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 「그로리아」라는 혼혈 여를 통하여 이 열대어의 비극을 그려보고자 했다.
줄거리
내과 병원 원장인 양병섭과 이마리아 부부는 슬하에 이남 이녀를 둔 중류 가정이다. 맏아들 진우는 얼마 전에 미국 「사우스 캬롤라이나」주립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획득하여 오늘 귀국하는 것이다. 두 내외간은 아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병원을 진우에게 물려주고 미리 작정한 대로 얌전한 며누리를 맞아 드리고 여생을 즐기자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이마리아 여사는 교회 일에 열성적인 크리스챤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도, 철학도인 둘째 아들 진수, 그리고 출가한 딸 진희는 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 속히 이들이 믿음을 가져 줬으면 하는 게 소망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우는 미국에서 흑인 여성 「그로리아」를 대동해서 돌아왔다. 결혼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너무나 놀랐고 허를 찔린 느낌이어서 얼마 동안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 이마리아는 그런 여자를 며누리로 맞을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그로리아」에게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적대시한다. 「그로리아」는 중국인 아버지와 「폴튜칼」계의 니그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그녀는 막연하나마 아버지의 나라인 동양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가는 길에 공원에서 백인 고등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하려던 찰나 진우에게 구원을 받는다. 알고 보니 같은 대학의 법과 학생이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동정에서 우정으로 우정에서 애정으로 변한다. 「그로리아」의 집안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다. 「그로리아」는 인종차별에 대한 반발도 있거니와 같은 유색인종으로서의 친근감이 크게 작용하여 진우를 따라 한국으로 온 것이다. 이마리아는 「그로리아」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자신이 집을 나가겠다고 까지 나와 출가한 딸 진희 집에서 묵게 된다. 그러나 「그로리아」는 진우만은 자기편일 것으로 알고 임신 했음을 고백한다. 진우는 지금 이 판국에 애기를 낳는다는 것은 도리어 가족이나 부모들의 적대심을 더 조장시키는 결과밖에 안 된다면서 낙태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로리아」는 강력히 반대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그로리아」는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마침내는 어떤 과민증까지 일으키게 된다. 진우는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여 친구의 병원인 정신 신경과 병원에 입원 수속을 연락한다. 이 사실을 안 「그로리아」는 자기를 억지로 정신병자로 만든다고 발악을 하며 거의 발광 상태에 이른다. 이런 증세를 보고 이마리아와 딸 진희는 「그로리아」의 출현이 자신의 위신과 가문을 더럽히는 결과라고 생각하자 병원에서 지어 온 진정제에다가 극약을 타서 들여보낸다. 매사에 의심과 회의를 품은 「그로리아」는 시아버지가 지어 준 약을 먹으려 하지 않고 열대어가 든 어항에다가 버린다. 다음 순간 열대어가 죽는 꼴을 보자 정말 발광하여 어항을 바닥에 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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