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던 DMZ(Demilitarized zone)에 작년 경의선에 이어 경원선 철도 부설 소식이 날아든다. DMZ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지뢰가 제거되고 경원선이 지상에 깔려 인간의 발길이 닿게 되면 시화호 처럼 오염될 것을 염려한다. 인간은 인간만이 대적 할 수 있는 것. 인간을 상대해서 싸울 수 없는 동물들은 한국전쟁 중에 전사한 유엔군, 국군, 중공군, 인민군들을 되살려 내어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동물들의 정성과 무당의 힘을 빌어서 곰 쓸개, 마늘, 쑥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부생군(復生軍-다시 태어난 군인)은 동물들과 힘을 합쳐, 지상으로는 지뢰제거 작업을 지연시키는 한편, 경원선 철도가 지하로 깔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로써 경원선은 지하터널 노선으로 채택되고 DMZ는 평온을 되찾는다.
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문젯거리가 무엇일까? 치솟는 기름 값? 아니다. 바로 환경오염이다. 점점 숲이 사라지고 멸종되는 동식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가 자랑해온 문명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지 모른다.
[내 사랑 DMZ](작 오태석)는 분단조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DMZ를 소재로 생뚱맞게 환경의 소중함을 말한다.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 깊은 뜻이 숨어있다. 이 작품은 수십 년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를 통해 환경오염과 함께 폭력과 전쟁의 폐해를 비판했다. 철조망이 쳐진 평화로운 동물마을. 여우, 노루, 원앙 등 온갖 동물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이곳의 특이할 점은 인간이 한명도 없다는 점. 오염의 주범인 인간이 없으니 이곳은 깨끗한 자연환경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는 쇠똥구리가 석류 씨가 박힌 똥을 굴리면 다음 해에 석류꽃이 핀다. 거름도 필요 없고 알맞게 비만 내려주면 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요즘 시대에는 새삼스럽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작품은 하찮아 보이는 쇠똥구리, 꿀벌 등 작은 곤충들을 통해 생태계의 법칙을 말해준다. “살충제 맞았어요, 도와주세요.” 몸이 뒤틀린 채 신음소리를 내는 꿀벌. 마치 총에 맞은 듯, 칼에 찔린 듯 아파하는 꿀벌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꿀벌이 날아다니며 하는 일은 꿀을 모으는 것보다 암술과 수술을 왔다 갔다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이 더 크다. 이들이 잘못되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꿀벌이 없으면 꽃가루받이는 누가해?” - “인간이 해야지요.”
쇠똥구리와 꿀벌은 생태계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곤충들이다. 작품은 이들의 역할을 보여주며 자연보호를 외친다.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다. 잘못하다가는 인간이 붓을 들고 암술과 수술을 왔다 갔다 하며 꿀벌 역할을 겸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북의 합의하에 경원선 철도가 DMZ에 깔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DMZ에 인간이 들어온다는 소리다. 한국전쟁 때 죽은 군인을 살려내 대신 싸우게 하기로 합의한 동물들은 무당에게 도움을 청한다. 긴급 투입된 치악산 남포골 무당. 원숙하게 창을 해대는 무당에게서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무당이 사용한 환생도구는 찜질방이 생각나는 불가마다. 마늘, 쑥 등 팔도 산천의 특산품을 모아놓고 비장의 무기를 꺼내면 삼신할멈이 소원을 들어준다. 가장 중요하고 희귀한 마지막 물품은 바로 곰의 쓸개. 여드레 정도 쓰고 다시 곰에게 넣어줘야 한다는데 판소리 가락과 함께 쿵짝쿵짝 진행되는 이 부분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단군신화, 수궁가가 생각나는 재밌는 아이디어에서 토속적인 색채가 풍겨 정겨움이 느껴졌다. 곰이 쓸개를 꺼내는 장면은 귀엽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관객들은 쇠똥구리로 태어나게 해달라며 자살을 하는 부분에서 폭소가 터뜨렸다. 출연하는 주요 동물들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고개를 까딱 까닥 움직이며 ‘닭대가리’발언을 일삼는 꼬꼬닭, 귀여운 원앙, 염소 할아버지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손을 오그리고 턱 밑에 괸 배우, 누구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배우들은 각 짐승의 특징을 잘 잡아 누가 봐도 한 눈에 어떤 동물을 연기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일반적인 짐승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도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거미는 든든한 전사로 나오고 거머리는 인정사정없이 피를 빤다. 사람이 무섭다며 원앙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앙증맞게 느껴진다. 결국 경원선 철도는 지하로 깔리게 되고 DMZ는 평화를 찾는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남았으니 살려낸 군인들을 다시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것.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철조망을 넘는 군인들을 지하 세계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작품은 DMZ의 이중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전쟁으로 죽은 젊은 군인들, 분단으로 갈라져 서로 으르렁 거리는 남북. DMZ만큼 전쟁과 폭력으로 피폐해지는 세상을 상징하는데 더 좋은 것이 없다. 죽은 군인은 쇠똥구리로 다시 태어난다. 손에 피 안 묻히고 씨를 뿌리는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다소 어려운 주제를 동물들의 입을 빗대어 말하는 연극[내 사랑 DMZ]는 노래와 춤을 이용해 분위기를 발랄하게 만들었다. 동물의 탈을 쓰고 노래하는 모습은 토속적이면서 시골스러워 보는 내내 알 수 없는 흐뭇함이 느껴졌다. 특히 마운틴고릴라 춤은 객석의 박수소리를 이끌어내며 흥겨운 분위기를 돋웠다. 그러나 이미 멸종했다는 말에 씁쓸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내 사랑 DMZ]는 2002년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공연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