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은 제주 4.3 사태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했던 시기. 제주의 한 부부가 주인공이다. 남자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고, 여자는 강인하다. (흡사 온달왕자와 평강공주 분위기다) 근근히 살던 중에 남자는 정직을 선택한 댓가로 재판 없이 서울로 넘겨지고, 여자는 남아서 아이를 키우고. 남자는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제주의 반동 영웅으로 성형수술까지 당하게 된다.
그렇고 그런 신파극으로 흘러갈 뻔 했던 이야기는 의외의 반전을 가지게 되는데 여자가 남자대신 변장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남자가 제주에 오게 되면서 부터다. 여자는 감옥에서 사람들을 봉기해 제주로의 회귀를 꾀하고 남자는 제주의 해녀 틈에서 해녀 파크의 리더가 된다. 제주라는 하나의 공간을 두고 두 사람의 이권이 맞붙으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귀여운 말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연극... 신비로운 조명과 셋트는 입장할 때부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들이 꽤 많았기에, 무척 안타까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절도있고 자연스러웠던 배우들의 무대매너, 구수한 사투리구사 및 섬세한 표정연기 등 구석 구석 살펴보면 칭찬할 부분들도 꽤 많았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물론 나라구 해서 무조건 목화의 작품을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방언으로 이루어진 대사들로 인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주도와 관련된 사건이였던만큼 오리지날의 분위기에 충실하고자 그렇게 모험적인 설정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사실 제주도민들이 유창한 표준어를 구사한다면 그 느낌이 많이 반감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을만큼 어설픈 방언을 사용한다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 얼마나 코메디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것인지, 가히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차라리 공연전이나 공연관람후에, 작품의 배경이나 취지에 관한 부연설명을 곁들인다면 관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제주도 방언에 관한 프린트물을 꼼꼼히 읽고서 공연에 임하였다. 나름대로 비교해가며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보다 많이 부드러워지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재미와 흥미도 가미가 된 느낌을 받았다. 배우들의 애드립인지, 아니면 설정 자체에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인진 모르겠지만, 가벼운 웃음을 던져주는 부분들이 늘어난 것 같다.
연극은 4.3항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모진 풍파를 겪어낸 제주도민들의 삶을 어수룩하기에 인간적인 성춘배와 짙은 생명력을 지닌 제주 여인 맹구자를 통해 재조명했다. 제주도 공연을 맞아 방언 부분을 보강하고 가족사 위주의 내용도 확장해, 서로 상처받은 제주도민들의 화해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은 해방 직후 이승만 박사의 초상화와 태극기를 팔며 생활하던 성춘배와 만삭인 그의 아내 맹구자. 1948년 4월3일 자정 한라산 오름마다 불길이 타오르고 토벌대가 제주도에 진입하자 만삭인 맹구자는 남편을 산으로 피신시킨다. 그러나 산에서 토벌대에 붙잡힌성춘배는 우라리에 불을 지른 방화범으로 오인돼, 20년 형을 선고받는다. 남편과 역할을 바꿔서 형을 살고, 우라리에 내려와 실제 방화범을 찾아내 억울한 누명을 벗어내는 맹구자의 모습속에 강인한 제주도 여인의 생명력을 담았다. 극의 말미에 마을 사람들이 재현하는 제주도 전통연희 '디딤불미'는 화해의 상징. 내년 농사에 사용할 쇠를 녹이기 위해 행하는 거대한 풀무질인 '디딤불미'를 통해, 갈라진 두 편은 역사의 상처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연출을 맡은 극단의 오태석 대표는 "처음에는 우리말을 순화시키기 위해 제주도 방언에 주목했는데, 제주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4.3항쟁을 빼놓을 수 없었다"며 "도민 30만명 가운데 8만명이 학살당한 4.3항쟁은 해방 직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자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데올로기의 상처를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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