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상현 '사로잡힌 영혼'

clint 2017. 12. 1. 10:39

 

 

몰락해가는 조선왕조와 근대화라는 과도기 속에서 많은 기행에 관한 일화를 남긴 화가 장승업의 예술적 고뇌와 깨달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화사 감찰관이라는 큰 벼슬을 받은 오원 장승업이 대궐을 두 번이나 몰래 빠져나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사실에 분노한 고종은 장승업에게 그 연유를 묻고 장승업은 지난날의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을 극중극 형식으로 고종에게 보여준다. 고금의 모든 화풍과 화법에 통달했다고 자신하던 장승업은 그림에 독창성이나 문자향 서권기가 없다는 당대 화단의 평가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문자향 서권기에 대해 탐구하면서 고뇌에 빠지며 방황하는 중에 일점대사를 만난다. 그 만남을 통해 그는 헛된 마음을 버리고 문자향 서권기를 의식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깨달음을 얻은 장승업은 대궐이 감옥처럼 느껴져서 몰래 빠져나간다. 그는 대궐에 갇힌 고종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군마도를 그리게 되는데 그림 속 말들이 달리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고종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모든 욕심을 끊어버리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사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장승업이 추구한 예술적 완성은 동양사상에 근거한 한국적 미의식에 근원을 둔다. 그는 직관, 통찰과 구체적 체험과 실천을 통한 깨달음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욕심의 근원인 자신의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그의 추구 과정이 자아와 개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가 빠른 장면전환으로 시·공간을 확대시키는 특징을 가진 영상기법을 이용하여 현대적으로 만들어졌다. 연출가는 무대장치를 거의 배제한 빈 무대로 만들고 주로 플래시백과 클로즈업, 오버랩 그리고 의식 속의 인물의 등장 등으로 장면전환을 자유롭게 한다. 무대에 상주한 코러스는 1인 다역의 연기로 별다른 변신 없이 40여 명의 배역을 연기한다. 그래서 동선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조명이 역동적인 장면전환에 큰 역할을 한다. 북소리·징소리와 같은 청각적 요소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일상적인 삶과 그 삶에서 벗어나지만 자유롭지 못한 고종과의 대조, 그리고 장승업의 예술적 완성에 대한 갈망과 고종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 무대 위에 펼쳐진다. 
1992년에 제10회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상·연출상·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유민영의 평론

국립극장이 야심적으로 펼치고 있는 창작극 개발의 두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사로잡힌 영혼"(이상현 작, 김아라 연출)은 한 화가의 고된 여도를 작품화한 것이다. 그동안에 나혜석 이중섭 등 선구적 화가들을 다룬 희곡들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색다른 작품으로 볼 수가 있다. 첫째는 작자가 정통 극작가가 아닌 방송극 작가라는 것이 우선 눈에 띄는데, 이는 또한 두 가지 상반되는 측면에서 관객에게 문제를 던질 수 있다. 즉 부정적인 면에서는 무대극의 짜임새가 부족할 수 있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반대로 자유분방한 형식이 오히려 관중에게 상상력을 확대시켜줄 수 있겠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의문은 적중했다. 이 희곡이 처음 제출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시큰둥했었다. 우선 형식상에서 볼 때 방송드라마를 전혀 탈피 못했기 때문에 매우 단선적으로써 무대형상화가 어렵겠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예의검토한 일부는 약간의 손질만 한다면 매우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있겠다는 주장이었다그때부터 작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재구성작업에 들어갔고 특히 신예 여류연출가 김아라가 적극적으로 창조작업에 나섬으로써 작품은 새 모습을 띄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구조에 많은 신경을 썼는데 이는 아무래도 장면에 치중하는 TV드라마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성에는 어느 정도 결함이 있었지만 반대로 정통 극작가들이 좀처럼 활용하지 않는 영상기법을 자유자재로 도입함으로써 작품의 극적 환상을 확대시킨 점은 돋보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색다른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극작가들이 나혜석, 이중섭의 인간적 에피소드에 포커스를 맞춘데 비해서 이상현은 화가의 작품 완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점이라 하겠다. 따라서 매우 유니크한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이 좋아지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절제 원칙을 엄수한데 있지 않나 싶다. 가령 주인공인 화가 오원의 경우 숱한 기행이 있었지만 대부분 배제하고 예술가로서의 고통스런 수행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이 그 하나이다. 이는 아무래도 작가 이상현의 높은 수준으로도 볼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방송드라마만 써왔기 때문에 대중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그는 오히려 정통 극작가 못잖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한 인간에 파고드는 특장(特長)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결과 성격창조에 성공했다. 아마도 한 예술가의 자기완성 과정을 이처럼 깊이 있고 극명하게 극화한 경우는 근대 희곡 사에서 매우 드물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동양화의 철리(哲理)를 넘어서 예술의 보편적 진실을 장승업이라는 한 화가를 통해서 구축이라는 어떻게 보면 극히 상식적일 수도 있는 진리를 매우 극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아마도 이상현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오원의 연구를 너머 동양화의 근본원리를 공부하고 다시 제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예술가의 자기 완성이란 것은 곧 자기 세계의 동양화의 근본적 바탕이 되는 동양 사상까지를 다각적으로 섭렵한 듯이 보인다물론 오원의 깨침과정을 위해서 일점 도사같은 인물을 설정한 것이 황당한 신비극 냄새를 풍기는 약점도 없지는 않다. 그러니까 감각적으로 진부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 예술가의 완성과정이 얼마나 지난한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환상을 제시한 것이므로 관중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현대적 감각이 매우 예민한 김아라 연출은 희곡이 갖고 있는 근본적 결함을 역으로 살릴 수도 있으리라 확신한다. 어떻게 보면 방송작가 이상현과 연극연출가 김아라는 세대 면에 있어서나 개성면에 있어서 대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만은 전혀 감각과 성향이 다른 김아라가 창조작업에 나섬으로써 오히려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만약 전문 방속작가가 처음으로 써보았다는 이번 작품이 성공을 거둔다면 극계에 조그만 충격을 던질 지도 모른다.

 

 

 

작가의 글

이 작품의 소재는 조선조 말엽에 살았던 화가 오원 장승업이다. 당시의 임금 고종이 오원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그는 어명을 어기고 세번이나 달아났다고 한다. 전하는 말로는 술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술을 좋아했다 한들 목이 몇 개이기에 어명을 세 번이나 어길 수 있을까. 아무래도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작자는 항설을 뒤집고 절대 순수를 추구하는 예술과 예술가란 무엇인지, 그것의 원형 하나를 형상화 해봄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의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보고자 한다. 세속적인 명리를 초개같이 여기고 천인합일(天人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추구하는 노장적 세계관을 통해, 일과 자연과 사람이 날로 분리되어가는 현대의 정신풍토에 작가 나름의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그림을 좋아해왔는데 어찌된 셈인지 차츰 그림보다는 그림의 사족이라고 할 평문에 오히려 더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림도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옮겨지면서 서양의 미학보다 동양의 화론에 더 심취하게 되어버렸다특히나 석도와 팔대산인 그들의 그림과 화론과 삶은 내게 있어서는 어느 경전, 어느 성서 못지 않게 많은 깨달음을 던져 주었다. 이런 관심이 이 작품의 모태가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화가 또는 예술가를 그리자는 것은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천지자연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꽉 찬 삶인지 그런 보편적인 문제에 맞닿아 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국립극장 창작극개발계획에 은택을 입어 생후 처음 희곡을 써보면서 오랜동안 젖어온 영상 언어와는 판이한 무대 화법을 익히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필자는 영상매체에만 종사) 흔히들 처녀작이라고 해서 신선감을 북돋우어 주지만 필자의 경우는 노처녀의 만혼도 아닌 과부의 재가에나 비길 형편이니 차제에 삶도, 작품도 최준의 계기가 되기를 축수해 본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태영 '난조유사'  (1) 2017.12.01
강철수 '돈아돈아돈아'  (1) 2017.12.01
유보상 '그놈이 그놈'  (1) 2017.12.01
윤조병 '도시의 나팔소리'  (1) 2017.12.01
이해주 '돌고래가 나오는 꿈'  (1) 20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