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을 견디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유산균을 먹어야했던 여고생과,
그날그날의 일진을 부적처럼 품으려 했던 한 세월호 유가족의 만남.
이 관계 맺기를 통해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의미에 대해 탐구하며,
세월호의 상처가 왜 특정 개인의 것으로 함몰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의 글
상대의 고통을 헤아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헤아림은 하나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고, 무대는 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헤아림을 위한 과정은, 무엇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상처를 특수한 개인의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요소들, 그리고 그 앞에서 일어나는 침묵과 거짓과 착각의 앙상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 그 여정을 통해 마음 한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잠시 멈추고 함께 털썩 앉아 조용히 서로의 등을 쓸어내릴 수 있는 자리 말이다.
세월호 희곡 제안을 받고 거의 곧바로 수락했다. 당연히 부채감과 열패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세월호를 작품으로 쓰지 못할 것 같았지만, 마침 제안이 왔고 공연 시작 타이밍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쓰기 시작하면 맺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의 힘에 기대서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 제안을 받고 마감이 정해진 상태에서 글을 써본 게 처음이어서 너무 힘들었다. 공연 직전인 5월 말까지도 그랬다.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이번에 참여한)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시공간적 배경을 달리 하거나 동화 같은 장치를 통해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나는 제일 먼저 유가족을 등장시키기로 결심을 해버렸으니 답이 영 안 나왔던 거다. 대사 한 줄 쓰기조차 어려웠다. 진도가 너무 안 나갔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캐릭터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여고생 ‘민주’가 아무 상처가 없는 설정이었지만, 그 친구가 유가족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이야기를 쓰려다보니 유가족의 고통이 너무 커서 이야기가 성립이 안 됐던 것이다. 민주에게 개인의 고통을 부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진도를 낼 수 있었다. 아마 모든 작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글쓰기 체험이었다. 먼 훗날 세월호를 떠올릴 때 그 뒤에서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지금 우리가 그 도시에 갔을 때 받는 느낌 같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작품에 대해 아쉬운 점이라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여고생의 드라마를 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처음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건, 어른들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지만 아이들은 훨씬 더 즉각적이고 솔직하고 계산없이 던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품 안에서 많은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결국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이연주 연출도 우려했던 것이, 자칫 한 개인의 특정한 고통과 세월호의 고통이 같은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우려가 되고 걱정됐지만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출연 배우들이 세월호에 대한 여러 고민들을 가지고 그간 관련된 작품도 해온 분들이라서, 거친 초고를 단순히 희곡적으로만 아니라 주제적으로도 다각도로 잘 읽어줘서 수정 과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사실 인물이 집착하는 사주나 일상적인 얘기로 그 사람의 고통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 너무 피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야기로 풀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배우와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당연히 연습 후반으로 가면서 연출가와 배우가 많은 논의를 했을 것이다. 유가족 역을 맡은 배우 역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무게가 더 많이 느껴져서 내내 미안했다. 세월호는 누가 뭐라 해도 영원히 치유되어야 하는 고통이다. 그 해결의 완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 그것이 서사이든 인문학적 방식이든 어떤 종류여도 상관없이 계속 얘기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종국에 치유든, 윤리의 기준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이든 가능해지지 않겠나. 그 다양한 방식 안에 연극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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