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clint 2016. 7. 3. 18:07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의 구조는 주동인물 아이아스의 자살을 기점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아이아스가 착오에 의해 수치스러운 행위를 자행하고 자살에 이르는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반부는 아이아스의 시신 매장을 두고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테우크로스, 오디세우스가 논쟁을 벌이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두고 평자들은 양분구성으로 불렀는데, 이 양분구성은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대변하는 대조적인 원리와 두 주동인물 사이의 극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구조다 여기서 대조적인 원리란 아레테(arete)’와 변화의 원리다.

 

작품 전반부의 주동인물인 아이아스는 명예나 명성을 의미하는 아레테와 불변의 원리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후반부의 주동인물인 오디세우스는 변화의 원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전반부는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아스가 저지른 수치스러운 행동과 이에 따른 아테나 여신의 반응, 그리고 아이아스의 고뇌와 자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나타나 아이아스의 발자국을 쫓아 진영 주위를 맴도는 오디세우스에게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아스가 자행한 가축 도륙 사건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아스의 잔혹한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사{前史)가 필요할 것이다.

 

영웅시대의 아레테를 대변하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한 뒤, 그의 무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이는 다름 아닌 가장 큰 공을 세운 명예

로운 인물이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논쟁이다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피력한다. 그리스군은 무구의 행방을 두고 투표했고 그리스군의 총수인 아가멤논과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의 승리에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고 판단해 그에게 이 무구를 주기로 결정한다. 힘과 용맹성(아이아스)보다는 지략과 지혜(오디세우스)를 높이 산 셈이며, 이는 곧 영웅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용감한 영웅으로 평가받고 거대한 방패를 들고 그리스를 지키는 성벽으로 일컬어지던 아이아스는 이 결정에 승복하지 못한다. 이를 자신의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수치심을 느낀 아이아스는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가축들을 복수 대상으로 오인해 도살하는 사건을 저지른다. 그런데 이는 아이아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다.

 

 

 

<아이아스>의 서막은 아이아스의 행방을 추적하는 아테나 여신의 언급으로 시작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아스는 짐승들을 도륙하면서 아가멤논과 휘하 장수들을 죽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적들에게 해를 가하라는 고대 영웅시대의 중요한 도덕규범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여기서 소중한 사람들이란 혈연이나 결혼으로 연결된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료들을 포함한 개념이다. 아이아스는 이 규범을 깨고 트로이 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들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이아스의 학살을 어떻게 멈추게 했느냐는 오디세우스에게 아테나는 미쳐 날뛰는 아이아스의 두 눈을 현혹시켜 헛것을 보고 살육하며 거짓 기쁨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적을 비웃는 것보다 더 달콤한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이아스를 적으로 간주하고 조롱하겠다는 말이다. 아테나 여신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아이아스는 몇 가지 관점에서 비극적 결함을 드러낸다. 첫째 그는 무지에 따른 판단착오를 드러낸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자신을 더 이상 모욕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죽였다고 오인하며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막사 안에 포로로 잡아 두고 고문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에 따른 착오이고 오류다. 그가 죽인 것은 아가멤논과 장수들이 아니라 가축들이며, 그의 포로가 된 것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아이아스는 또한 아테나더러 지금처럼 동맹자로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는데, 이 또한 착각이다. 아테나는 그의 동맹자가 아니라 그의 적대자인 오디세우스를 돕고 아이아스가 광기에 사로잡혀 수치스러운 행동을 범하도록 해 조롱거리로 전락하도록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신을 두고 동맹자가 되라고 명하는 것에서 그는 또 다른 결함을 드러낸다. 이는 다름 아닌 그의 둘째 결함인 오만성이다. 아이아스는 불멸의 존재인 신을 필멸의 인간인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간주하며, 자신의 무용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는 오만성을 드러낸다.

아이아스의 오만성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의 아버지를 떠날 때 했던 말에도 드러난다. “항상 신들을 네 곁에 두고 싸워 이기라는 아버지 텔라몬의 말에 아이아스는 우쭐대면서 오만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 신들의 도움을 받으면 하잘 것 없는 자도 승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신들의 도움 없이도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아스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아테나의 도움을 거부하는데 이 역시 오만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여신이시여, 저기 다른 그리스인들을 도우세요. 적들은 결코 이 아이아스의 진영을 깨지 못합니다..” 이러한 오만성과 무지에 기인한 판단착오는 아이아스가 작품초반에 드러내는 비극적 결함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 결함은 한편으로 아이아스의 아레테를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스적인 이상과 명예를 지칭하는 아레테는 인간의 육체적 용맹과 정신적 강인성을 포함하는 탁월성과 비범성을 함의하는 용어였다. 아레태에 대한 집착은 비극적 영웅들의 특징이며 이는 또한 이들의 파멸에 관여한다. 그들은 아레테를 통해 자신의 영웅적 정체성과 정신적 탁월성을 드러내지만 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판단 착오가 비극적

결함으로 작용해 파멸에 이른다는 말이다. 소포클레스 비극의 주인공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아스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레테를 인식하고 확신하며 이에 대한 자긍심을 가졌던 인물들이며불굴의 용기와 의지로 운명에 맞섰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파멸과 비극적 종말은 모두 그들 자신이 보여 주었던 아레테의 추동력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아레테를 추구하다가 파멸하지만 결코 패배한 인물들이 아니다. 아레테에 대한 집착이 비극적 결함으로 작용해 주인공들은 모두 파멸에 직면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파멸 가운데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는 휘트먼(c. H. Whitman)의 지적은 적절하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영웅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누구보다도 이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일관성 있게 아레테를 추구하며 이를 지키려고 애쓴다. 불변하는 항구적 원리에 충실하고 일관성 있는 인물이다. 그는 또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는 인물이며 타협을 거부하는 외골수다. 아이아스가 드러내는 오만성은 다름 아닌 아레테의 추동력이 빚어낸 결과다. 즉 자신의 아레테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오만성으로 표출된 경우다. 아이아스의 광기는 다름 아닌 그의 오만성에 대한 아테나 여신의 징벌이다.

 

 

소포클레스

오디세우스는 광기에 사로잡혀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불행에 빠진 아이아스를 동정한다. “불운한 그를 동정합니다. 그의 불운한 운명이 그뿐만 아니라 제 운명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에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힘이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 재산이 넘친다고 신을 업신여기거나 네 힘을 자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단 하루에도 인간의 모든 행운은 사라질 수도 있고 불운이 행운으로 다시 변할 수도 있다" 인간의 오만성에 대한 경고다. 아테나는 결국 신에게 불경스럽고 자신의 무공을 자랑하는 오만불손한 아이아스를 미망에 사로잡혀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아이아스의 행동은 자신의 본심에 따른 것이 아니다. 아이아스를 신의 희생자로 간주한다면, 수치스러운 행위에 대한 아이아스 자신의 책임은 경감될 수 있다. 아이아스가 자행한 수치스러운 행위가 아테나 여신이 불어넣은 광기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아스는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이아스는 자신의 착오와 잘못을 인식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을 스스로 불러들였다고 생각한다. 아이아스는 용맹한 자신이 가축들을 도살해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망자들이 사는 어두운 지하의 암흑이 나를 비추는 유일한 빛이 되었구나. () 내 곁에 있는 이 죽은 동물들과 함께 내 과거의 영광도 모두 사라져 버렸소." 아이아스는 자신의 미친 짓을 두고 이제 그리스 전군이 칼을 빼어 그를 죽이려 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신이 불명예에 둘러싸여 누워 있다고 한탄한다.

아이아스는 인간들과 신들 모두 그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자신에 대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모욕과 불공정한 처사를 참을 수가 없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살아 있어 전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면, 당연히 자신이 그 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가멤논이 비굴하고 교활한오디세우스에게 상을 주어, 그가 자신의 승리를 가로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광기라는 질병을 보내 자신을 속이고 조롱한 아테나여신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아이아스는 다음과 같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밝힌다. “자신이 처한 곤욕스러운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야 () 엔젠가는 죽을 필멸의 인간이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 있는 게 뭔 의미가 있겠어. 고귀한 사람이 라면 명예롭게 살아야 해. 아니면 명예롭게 죽거나.. 자신을 짓누르는 재앙과수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아스가 하는 말이다.

그리스군 전체가 자신을 경멸하기에 아이아스는 전쟁터로 다시 갈 수도 없고, 빈손으로 수치스럽게 고향의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도 없다. 트로이로 가서 홀로 싸우다가 전공을 세우고 명예롭게 죽을 수도 없다 그것은 자신이 적으로 삼은 아가멤논을 기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향에 계신 소중한 아버지를 명예롭게 하는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아스가 홀로 내린 결론이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명예로운 죽음만이 자신의 아레테를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이아스가 수치스러운 삶을 극복하기로 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명예로운 죽음이다.

 

아이아스가 자행했던 수치스러운 행동의 원인은 디름아닌 무구 재판을 두고 아이아스가 느꼈던 수치심이다 고대영웅시대의 문화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은 영웅의 조건이고 이는 곧 명예로운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명예로운 죽음은 곧 아름다운 죽음이요 영광스러운 죽음이었고, 이는 곧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명예를 획득하는 방법이었다. 영웅시대의 인물들은 모두 인간이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의식했고, 이 필멸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 즉 명예로운 죽음을 통해 얻은 명성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해 신에게만 기능한 불멸성을 획득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터에서 공동체를 위한 명예로운 죽음은 아름다운죽음이고, 수치스러운 삶은 추한삶이다. 수치스러운 행동을 저질러 더 이상 명예롭게 살 수 없는 아이아스에게 남은 것은 명예롭게 죽는 길뿐이다. 그리하여 아이아스는 자살을 결심한다. 아이아스는 아름다운 죽음을 통해 불멸의 명예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아킬레우스처럼 공동체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광기에 사로잡혀 저지른 수치스러운 행동과 그 결과에서 연유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아스의 자살을 다른 관점에서 고려할 수 있다. 자살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손에 두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이아스의 죽음은 유의미하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영웅시대의 아레테를 손상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또한 역설적으로 아레태를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이 자신의 주인임을 천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살은 곧 시간의 흐름, 즉 변화를 정지시키는 행위와 같으며, 자신의 항구적인 아레테를 죽음으로 지켜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아스로 대변되는 과거의 가치와 오디세우스로 대변되는 현재의 가치가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과거 영웅시대에 영웅들의 지배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던 아레테와 기원전 5세기경, 민주제로 이행하던 아테네의 새로운 가치관 {설득과 소통)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현재의 가치관이란 오디세우스가 구현하는 변화의 원리이며, ‘과거의 가치관이란 아이아스, 그리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가 구현하는 불변의 원리다. 그리고 아이아스는 이 불변의 원리의 중심에 서 있다. 아이아스의 죽음으로 인해 항구적인 불변의 가치를 신봉했던 과거의 영웅은 사라지고 설득과 소통으로 변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새로운 영웅 오디세우스가 부상한다.

 

아이아스의 죽음을 기점으로 <아이아스>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된다. 변화의 원리를 대변하는 오디세우스는 후반부사건을 주동하는 중심인물이다. 대부분의 비극은 주인공들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죽는 시점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아스의 시신 매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시신매장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메넬라오스는 자신들을 공격한 아이아스를 트로이 인들보다 더 고약하고 호전적인 적으로 간주한다. 그는 또한 아이아스가 상관에게 복종하지 않는 불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메넬라오스는 어떤 경우라도 아이아스의 시신을 매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이아스의 이복동생인 테우크로스는 사건의 발단이 된 무구 수여를 두고 진행된 투표의 불공정을 들어 아이아스를 변호하고, 그의 시신 매장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는 시신 매장을 반대해 고인과 신들을 모독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신의 법을 어기지 말고 매장을 허용하라는 테우크로스에 맞서 완강하게 매장을 반대하는 메넬라오스는 불변의 원리를 따르는 인물이다. 그는 적은 적이고 친구는 친구일뿐, 적이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아스를 소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적들에게 해를 가하라는 도덕원리를 위반한 인간으로 간주하고 공공의 적으로 간주한다. 아가멤논 역시 적은 적일 뿐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이아스의 시신 매장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디세우스에게 준 것은 공정한 판정에 의한 것이며, 이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동체를 지탱하는 법이 확립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테우크로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투표 결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큰 황소라도 조그마한 채찍 하나면 길을 똑바로 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용맹성보다 지략이 승리에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오디세우스를 칭찬하고 아이아스를 사실 이상으로 폄하한다. 그러나 테우크로스는 아이아스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일과 아이아스가 자진해서 핵토르와 일대일로 맞서 싸웠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아이이·스의 명예로운 행동을 강조한다.

 

이 논쟁의 자리에 등장한 오디세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들의 다툼을 중재한다. “아이아스는 나에게 가장 고약한 적이었소 그는 나를 적대적으로 대했지만 난 그를

수치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이곳 트로이에 온 모든 그리스인들 중에서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훌륭한 전사라는 걸 부인하지 않아요. 그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지 않아요. 그럼 아이아스 한 사람을 망치는 게 아니라 신들이 정한 모든 법도를 위반하는 것이 될 테니까요"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를 적으로 싣L아 미워했지만 그가 탁월한 전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아가멤논에게 아이아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정의의 원칙뿐만 아니라 신의 법도 위반하는 불경한 행위임을 주지시킨다. 오디세우스는 변화의 원리와 설득의 힘을 대변하는 인물답게 상황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보여 준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아가멤논은 아이아스를 공격하다가 다시 그를 존중히는 오디세우스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공격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가 보여준 최고의 용맹”, 즉 아레테가 적으로 삼았던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고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고오늘은 친구지만 내일은 적이 될 수 있다는 변화의 논리를 피력한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아스를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가장 미워하는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을 내뱉는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에게 적은 적이고 친구는 친구다. 불변의 원리에 매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설득을 통해 이러한 불변의 원리를 해체한다. 아이아스를 적으로 삼은

아가멤논을 설득해 그의 시신 매장을 허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디세우스는 우주의 본질이 불변이 아니라 변화에 있다는 새로운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부상

한다. 그리고 이는 아이아스로 대변되는 영웅시대의 종말과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설득과 말의 힘을 강조하는 민주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에게 설득되어 마지못해 시신 매장을 허락하고, 오디세우스는 테우크로스에게 아이아스의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돕겠다는 뜻을 밝힌다. 테우크로스는 예상을 벗어난 오디세우스의 행동에 놀라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을 돕겠다는 오디세우스의 뜻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고인이 된 아이아스가 언짢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오디세우스의 설득과 중재에 힘입어 최종적으로 아이아스의 시신을 매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변의 원리와 변화의 원리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테우크로스는 여전히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에게 저주를 퍼붓고, 아이아스의 시신에서는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은 듯 여전히 검은 피가 솟구치고 있기 때문이다. 설득으로 변화를 주도했던 오디세우스가 시신 매장을 돕기를 청했지만, 테우크로스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상반된 것들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갈등이 여전히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작품이 종결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고전 학자들이 간파했던 것처럼 그리스 비극에서 인물의 성격은 곧 운명이다. 인간의 성격이 곧 그 자신의 운명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말이며, 운명적 요소보다도 성격적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아이아스>에서도 운명과 개인은 대립하고 운명이 아이아스의 삶과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이아스 자신의 성격이다. 아이아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가혹한 운명에 맞서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레테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아레테의 추구, 자긍심 그리고 자기 신념을 고수하는 일관성과불굴의 의지가 아이아스가 영웅임을 드러내는 추동력이다. 그러나 아레테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과 신념을 고수하고 타협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외골수적 성격은 다른 한편으로 아이아스의 파멸에 관여한다.

 

아이아스는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우다가 파멸한다. 그러나 그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과 선택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결정과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면서 아레테와 영웅적 면모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살은 다름 아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행위다. 그러나 아이아스의 죽음은 그로 대변되는 불변의 원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마지막에 영웅시대의 가치를 대변하며 불변의 원리의 중심에서 있던 아이아스가 죽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설득과 소통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며 변화의 원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시대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부상한다)

 

아이아스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간의 힘을 인식하지만, 운명처럼 작용하는 그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자살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려는 행동과 같으며,

육신의 소멸을 통해 아레테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역설적 행동이다 이는 또한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명예를 획득하려는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