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홉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한 체홉 작품 리메이크 작
극단<백수광부>1998년<굿모닝? 체홉>이라는 작품으로 체홉과 대중의 현대적 대화를 꾀했다
체홉 4대작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자매, 벚꽃동산의 주요 이미지를 해체해 전혀 새로운 무대언어로 구성하는 실험적 작품임. 극은 마임 - 무용 - 부조리극 형식의 9개 장면으로 구성되며 베케트, 칸토르, 이오네스코, 마기 마랭같은 현대 예술 거장들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차용해 체홉 작품들을 다시 읽는다.

이성렬의 무대는 마치 움직이는 꼴라주처럼 서로 무관한 듯한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얽혀있으면서도 그 어지러운 충돌이 이미지의 유영에 머물지 않고 때때로 섬뜩하게 현실을 환기시킨다. 그러고 보면 그의 꼴라주는 체홉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보았던 그의 연출작인 작은파티의<키스>(1996)나<나무는 신발가게에 가지 않는다>(2000)<자객열전>(2003)과 같은 해체적인 경향의 작품은 물론이고<불티나>(2001)<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2003)와 같은 재현주의적 드라마 공간에서도 그의 무대에서는 때때로 불편한 농담처럼 이질적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위악적인 기괴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때때로 그의 기괴한 이미지들은 슬프고도 아름답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대라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적절한 배분과 정렬에서 비롯되는 쾌감이라기보다는 불가해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몸’으로 가로지르는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열정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연배의 연출가들과 달리 선생님을 모시고 오랜 수련기간을 거친 그의 이력을 놓고 보면 그의 무대에서 도드라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흥미롭다.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극단 백수광부라는 이름에 대해 “웃기면서도 심각한, 그런 양면의 얼굴을 가진 이름, 이거 진짜 연극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의 연극은 양면의 얼굴을 가진 현실을 더 생생한 현실로, 그리고 충만한 연극적 에너지로 드러낸다.
평론가 김방옥이 이성렬에 대해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무덤덤하게 오가”며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대가 지니는 원천적 생명력에 빠져 ‘노동’하고 있는 연출가”라고 말했듯이 그는 무대의 ‘원천적 생명력’을 바탕으로 날카롭게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미처 완성되지 않는 공허한 이미지를 펼쳐놓기도 한다. 그 공허함에는 그의 관념적 언어도 한몫을 한다.
같은 연배의 연출가들과 달리 선생님을 모시고 오랜 수련기간을 거친 그의 이력을 놓고 보면 그의 무대에서 도드라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흥미롭다.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극단 백수광부라는 이름에 대해 “웃기면서도 심각한, 그런 양면의 얼굴을 가진 이름, 이거 진짜 연극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의 연극은 양면의 얼굴을 가진 현실을 더 생생한 현실로, 그리고 충만한 연극적 에너지로 드러낸다.
평론가 김방옥이 이성렬에 대해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무덤덤하게 오가”며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무대가 지니는 원천적 생명력에 빠져 ‘노동’하고 있는 연출가”라고 말했듯이 그는 무대의 ‘원천적 생명력’을 바탕으로 날카롭게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미처 완성되지 않는 공허한 이미지를 펼쳐놓기도 한다. 그 공허함에는 그의 관념적 언어도 한몫을 한다.

이성렬의 연출 프로필을 보면 체홉 무대가 많다. 그는 98년 초 체홉의 희곡을 모티브로<체홉 연습><굿모닝? 체홉><놀랬지 체홉>을 연달아 올렸다. 그리고 2001년과 2004년에는 각각<세자매>와 체홉의 마지막 희곡인<벚나무 동산>을<굿모닝? 체홉2>라는 제목으로 올렸다. 모두 그의 극단 백수광부와의 작업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은<바냐 아저씨>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체홉 무대는 더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왜 체홉에 열중하는 것일까. 연출가가 한 작가에 열중하는 것이야 별다른 주목거리가 아니지만 이성렬의 체홉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 점이 있다. 우선 그는 최근 체홉 무대를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 유학파가 아니다. 그는 대학동아리에서 연극을 시작해서 오태석의 목화를 거처 임영웅의 산울림극장에서 짧지 않은 수업시대를 보낸 국내산 이다. 그리고 그의 무대는 체홉을 현대연극의 고전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한 모스크바예술극장의 심리적 사실주의 무대와도 거리가 있다. 체홉의 언어를 들어내고 이미지극으로 꾸민 일련의 체홉 연작들은 물론 체홉의 언어로 되돌아 온<세자매>와<굿모닝? 체홉2>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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