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워드 새클러 '위대한 백인의 희망'

clint 2015. 11. 14. 08:08

 

 

 

 

 

남성 극작가들이 여성주의적인 희곡을 드물지 않게 써왔듯이 백인 극작가들도 백인의 흑인 차별을 고발하는 인종주의 극을 간헐적으로 써왔다. 물론 이 경우 여성 페미니스트들이나 흑색인종주의자(black racist}들로부터 그 합법성을 쉽게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랄트 뮬러(Haralt Muller) 나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샘 셰퍼드 (Sam Shepard)와 같은 남성 극작가들이 남성 인물들을 보다 격별하게 정죄하거나 회화하는 강력한 급진적 여성주의 극을 창조해 내면서 여성주의극의 정전에 때때로 가세했던 것처럼, 백인 극작가 하워드 새클러 (Howard Sackler) 역시 한 위대한 흑인 권투선수의 비극을 다룬 〈위대한 백인의 희망 (The Great White Hope)>에서 백인사회 전체를 통렬하게 고발하면서 급진적 흑색인종주의 극의 정전에 합류했다. 따라서 그의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인종주의 극 연구의 일환으로 삼아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복합적인 의미를 점검 해 보는 것은 현대미국 희곡문학의 주요 주제이며 미국 사회의 핵심적 딜레마인 인종적 편견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위대한 백인의 희망>에서 새클러는 한 인간의 비극과, 그 비극을 초래하게 한 내부적, 외부적 요인들에 관심을 모은다. 이는 그의 미완성 희곡 〈새멀위스(SCTimelweis>>에서도 나타났듯이 그의 일관된 관심사였다. 그리고 주인공이 흑인일 경우, 인종차별이 그의 파멸을 야기하는 하나의 주요한 사회적 요소로서 개입되기 십상이다 주지하다시피,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 차별 - 대부분이 백인의 흑인 차별이었지만 - 은 오랫동안 미국 생활의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백인극작가 새클러는 이 작품에서 특이하게도 흑인으로서 가장 과격한 흑백 분리주의자들인 이마무 아미리 바라카 (Imamu Amiri Baraka)와 제임스 발드윈 (James Baldwin)과 동일한 문제접근법을 취한다. 즉 “백인의 학대를 먼저 보여준 다음 흑인의 저항 을 외삽한다.” 얼핏 그는 감성적이고 위험하며, 불합리하고 편집증적인 입장에서 백인사회 전체를 흑인들의 개체성과 집단적 선을 파괴하는 악의 집단으로 규정짓는 듯이 보인다. 존 사이먼(John Simon)은 이 극의 도덕적 우주를 “르로이 존스(LeRoi Jones)(Baraka)의 우주만큼이나 단순하고 거짓된 것"으로 보고 그 속에서 "엘리(Ellie)와 골디(Goldie)가 백인인데도 선하게 그려진 까닭은 그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인물의 성격과 극적 행동을 자주 희생시키는 바라카나 볼드윈과는 달리 새클러는 주인공의 몰락을 야기 시키는 내면적인 요소들, 즉 성격을 강조하며 행동을 통해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에 그의 극은 교훈에 빠짐이 없이 매우 극적이다.

 

 

 

최초의 흑인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잭 존슨(Jack Johnson, 극의 잭 제퍼슨)의 생애를 바탕으로 씌어진<위대한 백인의 희망>은 존슨이 1908년 리노에서 챔피언십을 획득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1915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그것을 잃는 것으로 끝난다. 3막 19장의 방대한 서사적구성은 한 선한 흑인이 세계챔피언에 등극하지만, 흑인 증오에 똘똘 뭉친 사악한 백인들에게 배반을 당해 나라 밖으로 쫓겨난 뒤 육체적, 정신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다가 마침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비록 반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극은 I960년대의 미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다룬다. 특히 1910년대의 제퍼슨(존슨)과 1960년대의 무하메드 알리(Muhammed Ali) 사이의 많은 공통점들- 애정관계를 제외하고 - 을 감안하면 새클러가 1960년대 말의 미국 사회를 상정하고 있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새클러는 "미국 문화의 중심부와 이 공동체의 삶과 인식의 중심부를 향하여 최소한 부분적인 거울이라도” 비추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미국사회는 "백인 사회를 조롱하고” "백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고약한 ‘깜둥이 놈'을 용서하지 못하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사회였다.” 새클러는 모든 백인들에게 흑인들을 억압하고 파괴시키는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 했거나 간접적으로 공모한 것에 대한 죄의식을 함께 나누자고 초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흑인 권투선수의 정당한 승리로부터 불가피한 패배에 이르기까지의 극의 구조는 일차적으로는 한 참회하는 백인 작가의 양심선언이지만 이차적으로는 인종 차별이 그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시행자들까지도 파괴한다는 엄숙한 경고이기도 하다.
악한 집단으로서의 백인 사회가 선한 희생자로서의 흑인 개인에게 가하는 파괴력을 비극적으로 도해하기 위해서 새클러는 먼저 사실적인 존슨을 연극적인 제퍼슨으로 확대한다. 새클러는 도덕적인 힘이 있는 주인공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그의 파면이 일반의 동정을 불러일으켜서 극의 목적을 달성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존슨은 그러한 이상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새클러의 목적은 사실을 충실하게 그리는 데 있지 않고 사실을 수정 가능한 소재로 삼아서 인종적 편견의 사회적 폐해를 고발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고발을 전달하는 형식으로서 심미적 거리를 강조하는 희곡보다는 감정이입을 전제로 하는 비극을 택했다. 인종 차별의 아픔을 백인 관객들이 흑인 주인공과의 감정적 동화 작용을 통해서 일인칭적으로 체험할 때 작가가 바라는 깨달음에 더욱 확실하게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새클러는 첫째, 방어하는 백인 챔피언을 토미 번스에서 짐 제프리스(극의 프랭크 브래디)로 교체했다. 1908년 12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존슨에게 챔피언십을 빼앗겼던 토미 번스는 역대 헤비급 챔피언 가운데 가장 왜소하여 170cm의 신장에 79.5kg의 체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제퍼슨 같은 거한이 이처럼 왜소한 챔피언을 물리친다는 건 대단한 승리가 아니어서 연극적으로 힘이 없다. 설령 그것이 흑인 도전자의 백인 챔피언에 대한 승리일지라도 거기엔 인종적 상처가 깊이 파이지 않는다. 더구나 백인들에게 번스는 “챔피언십을 쟁취한자라기보다는 타이틀을 잠시 맡은 자일뿐이었다. 따라서 작가는 존슨보다 거구이며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바 있고 "백인 종족에게 헤비급의 권좌를 돌려줄 것으로 믿어졌던 전 백인 챔피언 짐 제프리스를 방어하는 현 챔피언 프랭크 브래디로 소생시켰고 대전 장소도 호주의 시드니에서 미국의 리노로 바꾸었다. 그 결과 제퍼슨의 승리를 실제보다 훨씬 큰 크기를 갖는 한편 육체적인 우월성을 상실한 백인들의 깊은 상처를 더욱 예리하게 만들면서 인종적 갈등을 분명하게 미국적인 주세로 부각시켰다. 새클러는 또 그의 주인공을 확대하고 고결하게 만들기 위해 내면적인 수단도 동원한다. 클라이브 반즈와 줄리어스 노빅(Julius Novick) 둥을 포함해서 많은 평론가들은 주인공이 너무 선하고 너무 고상해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새클러의 지나친 표백을 비판했다. 그들은 이것을 극의 중대한 결함으로 본 것이다. 새클러가 존슨의 삶과 시대의 사심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평론가들의 주장이 옳다. 그러나 연극적인 관점에서는 옳지 않다. 새클러는 연극적인 필연에 의해서 제퍼슨을 고상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백인 창녀들을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잭 존슨을 단 하나의 여인 엘리너 백먼에게 충실한 잭 제퍼슨으로 변신시킴과 동시에 극의 초점을 확립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백인 창녀들을 하나의 백인 여인으로 통합시켰다. 법정에 서서 존슨이 그녀를 유괴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여인은 누실 캐머런(Lucille Cameron)이었고, 제퍼슨이 맨(Mann) 법령을 범했다고 체포됐을 당시 같이 있던 여인은 벨 슈라이버 (Belle Schreiber)였으며, 자살을 한 여인은 에타 듀리애였고, 그의 유배생활과 아나바에서 제시 월라드(Jessie Willard)와 마지막으로 싸울 때까지 그와 동행했던 여인은 다시 누실 캐머런이었다. 새클러는 이 백인 창녀들의 행동에서 부도덕성을 제거하고 그들을 정숙한 엘리너 백먼으로 통합하면서 그 녀로 하여금 제퍼슨을 고결한 인물로 만드는 데 기여하게 했다. 즉 그녀 자신의 정숙함과 충성스러움은 제퍼슨이 그녀에게 충실한 한 그의 도덕적인 힘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정숙한 그녀가 제퍼슨을 오로지 육체적이며 성적인 의미로 파악하려는 시카고의 백인 검사 앞에서 제퍼슨을 옹호하며 "그이는 너그럽고 친절하고 예민해요"라고 진술할 때, 제퍼슨은 백인 사회의 편견과는 달리 매우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강점이 있는 인물로 확립되는 것이다. 새클러가 주인공의 크기를 확대하기 위해서 실제의 인물이 지녔던 중요한 특성 하나를 그대로 따른 것이 있다. 즉 인종적 이슈로부터의 독립 이다. 실제의 존슨이나 극중의 제퍼슨은 모두 같은 흑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그들이 성취해낸 것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지 결코 그들이 백인을 정복한 흑인이기 때문에 쏟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흑인의 희망'이기를 거부한다. 한 예를 살펴본다. 리노에서 타이틀 매치가 있기 직전에 제퍼슨은 그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한 떼의 흑인 무리들을 만나는데, 그는 곧 그들이 기도 하는 진정한 목적이 그의 승리로 유색인종으로서의 긍지를 찾는 데 있음을 발견하고 분개한다. 흑인들 역시 그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무리를 이끄는 집사가 제퍼슨에게 피부색은 검은데 생각이 검지 않다고 힐난하자 그는 단호한 어조로 인종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 그는 인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 줄 것을 요구한다. "오, 하나님, 저 자가 코를 부러뜨리지 않게 해주소서.”, "아니면, 오 하나님, 저 자가 총 맞지 않고 도시를 빠져나가게 해주소서.” 이렇게 그는 소망하고 있는 흑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미 백인 사회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는 터에 동족으로부터도 고립되고 또한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노스롭 프라이{Northrop Frye)가 지적했듯이 비극은 한 사회집단 내의 여러 인물들보다는 한 개인에 더 관심하며, 미 주인공의 휴브리스 측정할 사회적 규범을 표현한다. 바꾸어 말하면 비극의 영웅은 사회로 부터 고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사회적 규범은 인종편견이며 주인공의 휴브리스는 인종주의로부터의 독립성이다. 새클러는 제퍼슨을 흑백 모두의 사회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비극적 영웅으로서의 그의 크기를 확대한다. 흔히 ‘비극적 결함'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하마르티아(hhamartia)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의 본질로서, 비록 그 해석과 적용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현대 비극에도 상당히 유효한 개념이다 아서 밀러(Arthur Miller)는 '비극적 결함'을“자신의 존엄성, 자신의 정당한 신분에 대한 이미지가 위협받을 때 수동적으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 성격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수잔 뱅어(Susanne Langer) 는비극의 행동을 "자기 완성의 리듬 안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제퍼슨은 비극의 영웅에 대한 이 두 가지 개념을 종합한 주인공이다. 그는 맨 법령 위반이라는 부당하고 억울한 누명으로 4년형을 선고받고 인생의 절정기를 감옥에서 가만히 썩어야 된다는 생각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식으로 살고 싶습니다. 돈도 좀 벌고 싶고요, 권투도 하고 싶어요! 난 세계 챔피언이 될 차례가 됐고 또 실제로 됐어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챔피언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보석 중에 도피하여 챔피언으로서의 자기실현을 위해 유럽으로 자기 유배의 길을 떠난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리고 자기의 정당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새클러는 제퍼슨의 비극적 결함을 실제의 존슨의 것보다 더 영웅적으로 만든다. 이 흑인 챔피언의 유럽 유배생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기록이 있었다. 잭 존슨은 자서전에서 그의 유럽생활이 어디를 가나 권투 챔피언으로서, 훌륭한 레슬링 선수로서 그리고 완벽한 연예인으로서 환영 받고 유쾌하고 풍족했던 것으로 회고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기자들은 그의 유럽생활이 미국의 인종차별을 그대로 복사한 유럽판 박해의 연속이었다고 기록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 챔피언이 호텔이나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에 입장을 거부당한 적도 부지기수이며 거기서의 삶은 가난과 폭음을 향한 점진적인 추락이었다. 새클러는 후자를 택한다. 역경 속에서 자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영웅적이기 때문이다. 부주의함, 흑인 여인들에 대한 심한 편견, 무의미하고 거짓된 가치에 대한 중독 등 인간적인 약점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어째든 새클러는 도덕적인 힘과 불굴의 자기실현 의지를 지닌 흑인 영웅을 창조했다. 잭 제퍼슨의 선한 정도가 지나치는 만큼, 새클러는 그의 몰락을 강요한 부도덕하고 파괴적인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백인 사회를 철저하게 사악한 집단으로 해부한다. 백인 미국인들의 통렬한 참회를 겨냥한 처리이겠다. 그러나 비록 극이 일방적인 흑백논리에 의해 전개되기는 하지만, 작가는 파괴당하는 쪽이나 파괴하는 쪽이 극적 상황과 유기적인 맥락을 유지하며 거의 완벽한 인과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과격한 흑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작위적인 분노가 여기서는 느껴지지 않고 따라서 연극성이 희생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백인이 지배 인종인 미국 사회는 흑인 헤비급 권투 선수가 챔피언십에 도전한 것을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도전자가 백인들을 물리치며 챔피언십에 점점 다가오자 부패한 프로모터들, 기자들 등 전 미국이 백색의 우월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찾아 나서며 마침내 이미 은퇴한 백인 챔피언 브래디를 설득하여 링에 복귀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한 도전자와 챔피언 사이의 평범할 수 있었던 싸움이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발전한다. 백인 사회가 인종적 우월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이 떠오른 흑인 도전자를 물리치는 것뿐이다 비록 제퍼슨은 흑인도 백인도 아닌 한 독립된 인간임을 선언하지만, 하얀 미국은 그가 흑인이고 또 그가 백색의 우월성을 위협했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한다고 한사코 고집한다. 그래서 백인들은 즉시 제퍼슨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개시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결과가 파생한다. 백인 사회의 인종 차별에 의한 제퍼슨의 몰락은 당연히 예정된 것이었지만, 그러는 와중에 동원된 '백인의 희망들'도 함께 파괴되는 것이다. 인종적 편견은 개인이 선택한 소신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인 관습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희생을 문제 삼지 않으며, 새클러는 바로 이 그릇된 사회의식의 자기 파괴력을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브래디의 패배는 그래도 덜 충격적이다. 자신의 노쇠를 느껴 은퇴 생활로 자족하겠다는 그를 대통령까지 가담한 사회적 압력을 통해서 링으로 복귀시킨 백인 사회가 애당초 그의 패배를 필연화 하고 있기 때 문이다. 여러 해 뒤 이름도 없는 꼬마(Kid)-그의 이름 없음은 그가 한 개체이기보다 한 사회의식임을 시사한다. - 가 드디어 제퍼슨을 물리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키드의 승리에서 가장 처참한 패배가 읽혀진다. 그의 승리는 왠지 공허하다. 작가는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환호하며 날뛰는 군중들과 움직임을 잃은 키드를 대조시킨다. 군중들이 키드를 어깨에 메고 밀짚모자를 공중에 던지며 행진함 때 키드는 "하얀 로브를 입은 채 거의 움직임이 없다. 글로브를 낀 한 손은 뻗고 있다. 챔피언 벨트가 그의 목 주위를 감고 있고 머리 위로 티월을 썼다. 뭉개진 붉은 얼굴은 거의 보이 지 않는다. 그는 가톨릭 행렬의 나무로 만든 성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이다. 백인들 에게는 그가 탈환된 백인의 우월성을 상징하겠지만 그에게는 오직 짓뭉개져 핏빛으로 물든 얼굴만이 남아있다. 그 역시 백인 사회의 파괴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제공된 희생 제물인 것이다.
키드의 승리는 이전의 제퍼슨의 승리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제퍼슨이 브래디를 누르고 '챔피언 카페'를 열어 승리를 자축할 때 그의 흑인 지지자들이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기는 하지만, 그 승리는 순전히 그의 것이며 흑인 사회는 그것을 위해 이무 것도 기여하지 않았다. 제퍼슨은 혼자 힘으로 백인 챔피언과 싸워 승리한 것이다,. 요컨대 그의 승리에는 영웅적인 성질이 있다. 반면에 키드의 승리는 오래 전부터 하얀 미국이 의도적으로 준비한 것이다 하얀 미국은 제퍼슨을 속이고 고문하여 국외로 내몰아 인생의 절정기를 낭비하게 하였고 그에게 가난과 절망을 강요하였으며, 결국 이 위대한 챔피언은 백인 사회의 핍박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육체적인 자기 학대와 정신적인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키드와의 시합이 있기 전부터 제퍼슨은 이미 탈진한 상태였다. 키드는 이기도록 되어 있었고 그 거짓된 승리는 그가 대표하는 위선적인 백인 사회의 것으로서 영웅 성을 전혀 띠지 못한다.
백인 사회가 파괴할 표적은 그들의 인종적 절대 우월성을 위협하는 제퍼슨이다. 그가 챔피언이 된 바로 그 순간부터 하얀 미국은 그를 파괴할 음모를 시작한다. 아니 그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타이틀전을 얼마 앞두고 제퍼슨이 백인 여자인 엘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백인 기자들에게 들킨 것이다. 유태인인 매니저 골디는 기자들에게 이 금지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그 역시 소수 민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 위험한 사랑이 궁극적으로 초래할 화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자들은 잠시 '사이'를 둔 뒤 그의 청을 들어준다. 이 '사이'는 기자들의 응낙이 조건적임을 시사한다. 제퍼슨이 질 경우 그들은 백인 사회의 인종적 긍지에 손상을 가하는 이 금지된 관계를 구태여 폭로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제퍼슨이 이긴다면 그들은 상처받은 인종적 우위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룹 파괴해야 하므로 둘의 사랑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브래디의 승리를 위한 다각적인 장치에도 불구하고 제퍼슨이 승리한다. 이제까지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은 많은 백인들에게 백인의 절대 우월성을 표상해 왔기에 그들은 브래디의 패배를 "최대의 국가적인 재양'으로 받아들인다. 제럴드 월즈(Gerald Weales)가 지적한대로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대표하는 캡틴 댄은 하얀 미국이 흑인에게 패배한 것에 대한 분노와 충격을 감추지 않으면서 이 타이틀이 갖는 육체적 우월성의 상징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설명한다. 당장에 이 새 흑인 챔피언을 물리칠 만한 '백인의 희망'을 찾지 못한 하얀 미국은 제퍼슨의 존재를 잠시도 용납할 수 없어 그들의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그를 합법적으로 함정에 빠뜨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시카고의 시민 지도자들이 지방검사의 사무실에 모여 부도덕을 이유로 제퍼슨을 체포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얼핏 지방검사에게 제퍼슨을 체포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에게 백인여자와 동침하는 제퍼슨을 파멸시킬 합법적인 흉세를 꾸미도록 부추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시민 지도자 집단에 끼여 있는 '잘 생긴' 흑인 의사- 이 인물의 이름 없음에 주목하라 - 가 그들의 방문 의도를 명확하게 요약하면서 인종 문제가 주요 이슈임을 선언한다. 그는 제퍼슨이 법으로 억제해야 함 모든 것을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모두의 동의를 얻는다.

 

 

 

새클러는 백인의 인종적 편견이 갖는 또 하나의 파괴적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 이 흑인 인물을 시민 지도자 집단에 포함시켰다 즉 인종 차별주의는 그것에 순응하는 흑인들마저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 흑인 의사는 외견상 백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수용은 피상에 그쳐서 다른 백인 지도자들이 그의 면전에서 "깜둥이”라는 모욕적인 호칭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할 정도다. 이 의사는 백인 사회에 간신히 받아들여지기 위해 정체 상실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선 그는 극의 다른 모든 흑인 인물들과 달리 백인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백인의 가치관을 옹호한다. 제퍼슨이 흑인들에게 잘못된 인생관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흑인한테는 공장에서 1달러를 버는 것이 잭 제퍼슨씨를 흉내 내는 일에 그 일 달러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게 보여야 합니다.” 의사보서 특권적인 삶을 사는 그는 제퍼슨이 표상하는 속인들의 자기실현 투쟁을 탄핵한다. 그는 자신의 특권적 신분을 유지하고자 백인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말만 하변서 백 인들의 거짓된 환영에 묻혀 그의 이름 없음이 증명하는 정체 상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제 지방검사는 연방 경찰인 딕슨과 공모하여 제퍼슨을 와해시키는 공작에 엘리를 끌어들이려고 유혹한다. 그는 제퍼슨이 엘리와의 관계를 시작하면서 돈이나 술로 유혹하거나 또는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나 엘리로부터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접근 했다는 중언을 듣는다. 법적으로 제퍼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자 지방검사는 오로지 육체적이고 성적인 의미로 제퍼슨을 인식하면서 그녀에게 흑인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시이먼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작품이 권투를 영웅적이고 고상한 행위로 묘사했다는 점을 들고, 이 극이 긍정하는 중심 가치를 심히 불쾌하게 받아들이면서 작품 자체를 폄하했다. 제럴드 월즈는 반대로 새클러가 권투선수를 주인공으로 택한 것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보인다. "즉, 인기 있는 미국의 모든 스포츠 종목 중에서 권투만이 팀이 아닌 개인이 상대와 맞서 싸우는 경기” 라는 것이다. 새클러가 권투를 소재로 선택한 것은 옳았다.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가 한 반항적인 흑인에게 가하는 파괴력을 그리는 데 있어서 파괴적인 권투야말로 적절한 배경이 되어준 것이다.
새쿨러는 19장면으로 구성된 이 대하드라마를 통해 인종적 편견이 그 희생자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까지도 파괴하는 위험한 사회의식임을 성공적으로 도해했다 이 가공할 게임에서는 승자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패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긴 키드나 진 잭 제퍼슨이나 다 같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패배한 모습을 띠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을 흑색 인종주의 극으로 보는 이유는 새클러가,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엘리와 골디 등 두 소수민족에 속하는 유대인들을 제외한 모든 백인들을 이 파괴적인 관습의 사악한 가해자로 묘사하고 반면에 극에 등장하는 모든 흑인들을 선량한 희생자로 미화하는 등 균형이 한 쪽으로 쏠린 흑백논리에 의해서 이분법적으로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백인의 박해와 흑인의 역경에만 초점을 맞추어 전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 백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