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프리드리히 실러 ‘잔 다크, 오를레앙의 소녀’

clint 2026. 2. 20. 07:48

 

 

서막-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소식은 오르레앙에서 뛰어 놀던

소녀, 쟌다크의 작은 가슴에도 불타는 구국심을 불러 일으켰다. 신성한 오크나무 가지에

앉아 잔은 하늘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이 나라가 패망하여야만 하나요? 영원한 태양이 비춰주는 아름다운 낙원. 우리 기쁨의

보금자리인 이 땅이 오만한 침략자에게 짓밟혀야 하나요? 자비로운 성모님, 프랑스가

해방될 수 있도록 제게 신통력을 주시옵소서, 당신의 순결한 여인으로서 당신을 위하여

증거하게 하소서. 아,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꿈틀거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광야를 치닫는 말발굽소리, 저 용맹한 나팔소리"
1막- 칼 7세의 生母인 이사보와 프랑스 공작인 부르군트까지 적에 가담한 고립상태에서 

칼 7세의 국고는 바닥났다. 군대 식량조차 없어 모든 걸 포기하려는 때 들려온 급보.

"적과의 싸움에서 우리 군사가 완전 패하여 산산이 흩어졌을 때 투구를 쓴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앞장서서 커다랗게 외쳤습니다. '돌진하라, 신과 성 처녀 쟌 다크가

그대들을 인도하리라” 하늘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고 적들은

갈팡질팡하며 죽어갔습니다." 승전의 환호성 속에 쟌은 왕을 우러러 말한다. 

"전하, 전 신이 보내신 오르레앙의 쟌· 다크입니다. 프랑스를 구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전하는 당당한 프랑스의 왕이 되실 겁니다. 우리는 이길 겁니다"
2막- 영국 지휘관 탈보트는 패배의 책임을 그들을 도와준 프랑스 공작 부르군트에게 전가해

서로 다투게 된다. 적에게 용서 없는 쟌은 목숨에 애착하여 구걸하는 영국장교 몽고메리를

무참히 죽여버리나 프랑스인의 피는 한 방울도 홀리지 못하게 한다.

"부르군트 나는 신의 뜻으로 당신에게 형제애의 손길올 내밉니다,"
부르군트의  마음에 서서히 진실한 영혼이 스며들어 그는 조국의 품에 돌아오게 된다.

 

 


3막- 연속되는 승리와 부르군트의 화해로 즐거움이 넘치는 궁전 안, 최고의 명예를 부여받고

뒤놔 백작의 청혼까지 받은 쟌은 고개를 젓는다. "전 순결한 처녀이자 신의 전사입니다.

어느 분의 아내도 될 수 없어요. 전쟁이 끝나면 다시 목동의 계집이 될 거예요."
그러나 그림자 같은 어두운 형체로 나타나서 불길한 예언을 내뱉고 사라지던 흑의의 기사, 

아아, 쟌은 죽여야 할 적의 장군 리오넬의 뜨거운 시선에 금지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일 수가 없어요. 달아나세요. 갑자기 왜 이러지, 안 돼, 사랑 같은 건."
4막- "조국을 구했으되 조국의 적을 향해 불타 오르다니, 오, 그를 죽여야만 한다니, 

인간적인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 모든 것이 그를 향해 불리는 지금, 사랑도 할 수 

없고 귀여운 아기를 가져서도 안된다는 하늘의 맹세를 배반한 것이 아닌가"
거리마다 웃음과 음악으로 가득찬 칼의 대관식날에 쟌은 홀로 사랑의 아픔을 씹는다.
이러한 쟌에게 아버지 티보는 그녀를 마녀로 몰아세운다. 모든 이의 찬사는 저주로 바뀌고 

하늘을 거역한 죄로 스스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쟌은 결백을 주장할 수 없었다. 

비참하고 외로히 쟌은 추방 되었다.

 

 


5막- 숲속을 방황하다, 적의 편이 된 프랑스왕후 이사보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쟌,

오해를 풀고 쟌을 구출하기 위해 결전을 벌이던 프랑스는 패전하고 있다. 그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쟌은 칼 7세마저 잡혔다는 소리에 하늘을 향해 온 영혼을 떨며 호소를 한다.

"주여 들으소서, 주님의 뜻으로 이 어려운 때 권능을 보여주소서."
놀라운 마지막 기적! 이제 현세의 사랑을 물리친 쟌은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끊고

적군 가운데 비수처럼 파고든다. 번개처럼 재빠른 칼과 용기는 적군을 완전 무찔러버린다.

그러나 승리를 보면서 조국의 품에 안겨 쟌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녀가 생명처럼 아끼던 흰 기가 순결한 그녀의 몸에 천사의 날개처럼 감싸 덮힌다.

"제가 우리 편에서 쫓겨나지 않은 거지요. 주님 감사합니다. 아, 무지개가 보여요.

천사의 노래소리에 하늘이 황금의 문을 여는 군요. 무거운 갑옷이 날개옷이 되는데요.

위로, 위로, 땅은 저 아래로,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해져요."

 



실러는 1801년 죽기 3년 전에 <오르레앙의 소녀>를 썼고 그 해 라이프찌히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니까 마치 타는 촛불처럼 그의 마지막 여력을 발휘할 때 이 작품은 쓰여졌다. 1801년부터 1805년 4월 그가 죽을 때까지 유명한 <빌헬름 텔>, <메시나의 신부>가 나왔고 <데메트리우스>가 집필되기 시작했다. 그의 만년의 작품으로 <발렌슈타인>에서 보여준 그 원숙함이 한층 두드러졌고 작가가 노리는 의도가 과감하기 이를 데 없이 노출되었다. 그 의도란 게 무엇인가?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에 유럽을 휩쓸던 이른 바 계몽주의에의 반발이 그것이다. 모든 걸 윤리로 따져 해결하려 들었던 당시의 풍조로 인해 자기 나라의 구국투사를 읊은 볼테르의 서사시에서 조차 쟌·다크 그녀는 한낱 외설과 풍자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쉴러는 이 풍조를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어찌 인간의 지성이란 것이 온통 역사와 현실을 두루 꿰뚫어 완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꿈은 무엇이며, 상징이란 또 뭐란 말인가? 꿈과 상징을 잃어버린 인간이 지성만으로 과연 위대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바로 이러한 반론을 쉴러는 <오르레앙의 소녀>를 통해서 제기하고 호통을 친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쟌·다크는 한낱 무식한 농부의 딸이었다. 그리고 중세 종교사회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환상을 통해 기적의 소리를 듣는 처녀였다. 그래서 싸움이 끝나고 그녀는 결국 화형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정설은 대체로 흔들리지 않고 5백여 년을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실러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쟌·다크는 환상 속에서 성자(聖者)의 모 습과 만나는 소녀- 그건 어디까지나 애국적 정열이라는 전제 아래에서였고, 순수한 이상과 믿음을 따르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쟌·다크는 뭇사람들의 손아귀에 잡혀 형틀에 매이는 대단원이 아니라, 끝까지 싸우다 목적한 바를 다 이룰 즈음 장렬한 전사(戰死)를 하게 했다. 역사가 기록한 쟌·다크의 죽음을 놓고 쉴러는 자기 이상주의의 꽃을 피우게 한 것이다. 또, 바로 이 이상에 대한 신념이 계몽주의적 지성을 상징하는 영국군올 여지없이 때려 부수게 만들었다. 사실 백년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프랑스란 母子가 서로 배반하고 臣下가 자기나라에 칼을 겨누는 구제할 길 없는 말기사회였었다. 이때에 개인의 욕망과 본능을 조절할 수 있는 이상주의란 그 자체가 기적이었던 것이며 쟌·다크를 싸고 도는 그 짙은 신비주의도 그 당시엔 항용 있을 수 있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다만 실러는 이 신비주의의 잎새를 애국적 정열로 향하게 했을 뿐인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 쟌·다크, 그러나 그 실체를 아는 이는 꽤나 드물다. 깃발을 들고 주먹을 앞으로 향해 내 뻗은 그녀의 모습은 도처에 있으나 그 힘의 실체를 아는 이가 드물다는 애기다. 그 실체를 차근차근히 예술로 정리해나간 실러의 기량은 작가자신의 의도까지를 포함해서 참으로 위대한 것으로 남게 된다. 그 실체는 또한 형장에서 그슬린 채 죽어 넘어진 그녀의 죽음 밑에 깔려 있었을 내적 진실, 그리고 예술적 의미를 아주 대담하게 파내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서막부터 5막에 이르는 동안 쟌·다크도 그 나름의 숱한 곡절올 겪는다. 신의 지시인 '남자에의 사랑'도 그녀의 가슴엔 싹트는 것이다. 이 속죄를 필요로 하는 대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모든 기적을 행한 후 결국 죽게 된다. 실러는 비극의 구성을 빈틈없이 발휘하면서 그가 구사한 낭만비극 <오를레앙의 소녀>는 할 얘기를 다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