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월리엄 사로얀 '호밀밭을 통해 온 사람들'

clint 2026. 2. 20. 06:13

 

 

 

 

Coming Through the Rye (1942)
이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단막 작품이다.

한 목소리(해설)에 의해 상황이 설정된다.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 태어나기 직전의 천상의 세계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그들이 다음 생으로 환생 직전까지

꿈과 희망과 혹은 좌절을 얘기하며 대기한다.

그러나 일단 인간으로 환생하면 그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고 목소리는 설명한다.

소년 버치는 할아버지한테 자신은 9년밖에 못살고 다시 돌아왔다고 푸념한다.

그런 소년을 캐럴 할아버지는 경험으로 달랜다. 스티브란 청년은 우울하다.

그 이유는 자신은 살인자로 한 인간을 죽이게 되어 있단다. 그 어떤 이유도 모르고...

또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녀와는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자신이 죽여야 하는 사람과 또 사랑하는 여인을 잠시 스치듯

만나는데 호각이 울리며 그들은 사라진다.

아기 탄생의 울음과 함께....

 

 

 

어떠한 미국의 연극사를 보아도 월리엄 사로얀 (William Saroyan : 1908 ~ '81) 이 다른 작가들처럼 한 章이나 독립된 항목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와 동시대 작가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유독 사로얀에 관한 이야기는 슬쩍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그는 미국연극사 주류밖에 서있는 외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사실 사로얀은 연극계에 소개되기 전에는 소설가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소설 <The Human Comedy>와 자서전적 소설 <내 이름은 아람(My Name is Aram)>은 아직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는 걸작이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회나 현실하고는 동 떨어져 살고 있는 괴짜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퍽은 문명의 공해에 오염되지 않은 동심 가득찬 귀여운 그의 주인공들은 독자를 매혹케 했다. 사로얀 역시 명성이나 부에 관심이 없는 어느 면에서 외로운 괴짜이다. 그는 아르메니안 이민의 아들로 태어나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주 후레스노에서 자랐다. 가난 속에서 살아 온 그의 학벌은 고작 초급중학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아르메니아 이주민들이 몰려 사는 동네에서 소년시대를 보내서 그런지 그의 초기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많다. 아르메니아 민족의 성격은 잘 알 수 없으나 사로얀의 소설 (그리고 후에는 희곡) 에 나오는 사람들은 찢기는 듯한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매우 낙천적이며 꿈이 많다. 사로얀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훗날 그의 극이 환영을 받은 이유도 모든 작중들이 30년대의 불안사회를 배경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사회문제를 파고든 것과는 판이하게 사로얀은 불가사의한 장소에서 꿈을 먹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무대에 등장시켰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고생했다. 신문배달을 필두로 전보 배달을 하며 호구지책을 세웠고 포도밭에서 품팔이도 하였다. 그러나 틈만 있으면 도서관에 들리고 읍내에서의 연극은 돈이 없으면서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숨어들어가 구경했다. 그는 가끔 읍에 찾아오는 서커스를 좋아했으며 이 서커스에서 격으로 하는 버드빌(Vaudeville)을 무엇보다도 즐겼다. 플롯도 엉성하고 즉흥적인 소극이라 할 수 있는 이 버드빌은 훗날 그의 극작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는 미국 작가들 중에서 가장 단시일 내에 작품을 완성하는 속필로 알려져 있다. 번개처럼 작품을 쓴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작가들처럼 문장의 법이나 작품기법 때문에 고심하지 않는다. 그는 11살 때 이미 자기 나름의 창작법을 발견했으니 타인의 문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다음과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다른 사람이 만든 법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 작품을 썼다는 모든 사람에 대해 잊어 버려라. 타이프 치는 법을 배워라. 그럼 제인 그레이처럼 빨리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존 변위 또는 기존법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일생을 살아 온 그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문장에는 스타일(Style)이 없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기존 스타일의 부재. 이것 자체가 사로얀 스타일이기도 하다. 유진 오닐을 비롯한 많은 연극인들이 젊었을 때 하버드 대학 영문과에 설치된 조지 피어스 베이커 교수의 창작법 교실에 물려가 극작법을 배웠다. 베이커교수는 근대 미국연극의 始祖처럼 존경을 받아 온 인물이며 그의 <극작술 (Dramatic Technique)>이라는 책은 극작지망생들에게는 성서처럼 간주되는 명저이기도 하다. 유진 오닐의 초기 단막극들은 베이커교수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한 구성, 위기감의 조성 그리고 무대에 깔리는 긴박한 감정을 강조한 베이커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극작의 기본법을 강조하였다. 당시 작가들은 베이커교수의 제자임을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로얀은 젊은 극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베이커교수의 강의를 듣지 말고 간단한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술이나 마시며 예쁜 얼굴을 보고 미소를 던지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우리는 연극을 대할 때마다 그 주제의식을 논하고 그 형식을 따진다. 그리하여 한 작가의 작품을 어떤 형식 범주 속에 집어넣고자 한다. 그러나 최소한 사로얀의 희곡, 그리고 무대에서는 그러한 상식적인 관습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는 주제의식이나 형식하고는 관계가 없다. 극작에서 말하는 구성 또는 플롯도 그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희곡의 관습이나 약속의 구속도 받지 않는다. 그는 아마 미국 연극사상 가장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극을 쓴 최초의 작가일지 모른다. 그는 극계의 명성도 외면한다. <내 마음은 고향언덕에(My Heart's in the High-land)>라는 그의 작품에 모든 작가가 선망하는 퓰리처상이 주어지자 그 수상을 거부했다. 그의 이미 발표된 희곡들에 비해 그리 좋지도 않은 극인데 이 극에만 퓰리처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해명이었지만 그러나 진심은 상 같은 것 자체에 신경을 쓰는 작가를 멸시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큰 사람 또는 위대한 인물도 없고 강한 성격이나 큰 욕망을 갖고 있는 인물도 없다. 가난에 짓눌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작은 사람들이 사로얀의 극중 인물이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으며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의 말년이 되어서 사로얀의 극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스타일이 없는 극을 썼다는 사로얀이지만 그 무 스타일이 오히려 그의 독특한 스타일로 받아 들여졌고, 불안시대에서 살면서도 우화 또는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인물들이 낙천적이며 소박한 꿈이 더없이 귀중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사실주의적 테두리 안에 서도 그의 극에는 슈르리얼리즘(Surrealism)의 요소가 짙으며 또한 부조리연극의 도래를 앞질러 예고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그의 극이다.
그는 미국 연극사외 특이한 존재로서 칭찬도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제 사로얀의 막은 끝났다. 시작에서 끝까지 작은 것을 사랑했고 꿈을 예찬했고 인간은 궁극적으로 선하다는 사실을 그의 마음과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써온 사로얀은 앞으로 다시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며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될 날이 찾아올 지도 모른다.

 

월리엄 사로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