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창극 '동리- 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clint 2025. 11. 8. 08:52

 

 

젊은 신재효는 백원이라는 청년으로 등장하여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세상이 싫어
판소리를 수련하기 위해 열심히 주변의 소리꾼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만난 백원이 마음으로 사랑했던 인물은 가난한 처녀 봉선이다. 
봉선은 백원이 자신을 거두어 줄 것은 소망했지만, 
백원은 그녀의 재주를 살려 소리꾼을 만들기 위해 기방(妓房)에 보낸다. 
봉선은 그곳에서 기녀 계향으로 성장한다. 
봉선은 평생의 스승 백원을 그리며, 마치 17세기 후반의 이매창과 같은 
삶을 보낸다. 여기에 그녀가 낳은 딸이 진채선으로 등장한다. 
진채선은 백원을 찾아와 몸을 거두어줄 것을 애원했지만 
백원은 그 어미에게도 그러했듯이, 진채선에게 판소리를 수련시켜 
최초의 여류명창으로 만든다. 백원은 당시 판소리 애호가 대원군이 있던 
서울로 진채선을 보내 판소리를 널리 알리도록 한다. 
그녀가 서울로 떠날 때 백원에게 남긴 소리가 '도리화가'이다.

 



[초연] 2012년 9월 14~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 2012 전주세계소리축제 "광대의 노래" 동리 신재효 탄생 200주년
문순태의 원작소설 <도리화가>를 지기학이 각색· 연출한 <동리-오동 봉황을 기다리고>(2012)는 창작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곡은 김백찬이 맡았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2015. 10)에서 우수작품상과 연출상, 소리꾼 김대일(백원 역)이 남자창우상을 받기도 했다. 아호가 동리(桐里)인 신재효의 <도리화가>를 원점에 놓고, 그의 판소리에 관한 일대기를 그린 창극이다.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신재효는 살아있는 동명이인 백원으로 등장한다. 그의 가치관은 동시대 최고의 음악으로서 판소리를 창조하려는 것인데, 그런 소리꾼을 봉황에 비유했다.

 

 

 

'도리화가'는 실제로 신재효의 창작 가사인 이 창곡으로 실전되었지만, 화려한 복사꽃보다 소박한 외얏꽃(살구꽃)을 즐기는 가사에서 시인으로서의 순수함이 묻어난다. 오동나무(백원)에 앉았던 봉황(진채선)은 마침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상징이다. 창곡 '동리'를 통해, 신재효는 백원의 심정을 노래한다. 이 창곡은 신재효가 꿈을 꾸던 판소리의 영원성을 암시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이 작품이 종래의 작품과 달리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요인은 서정적인 노래의 확장에서 비롯된다. 백원· 봉선· 진채선 사이에 매우 끈끈하고 아름다운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종래의 서사 창 형식을 극도로 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패러디 형식으로 가창함으로써 창극의 격조와 분위기를 살린 것도 잘된 요소이다. 코러스(광대들, 마을 사람들)와 인물들의 극적인 개성을 조화시켜 전체적인 현장성을 높였다.

 


이 작품은 소리꾼 신재효(1812~1884)의 삶을 담은 음악극이다. 소리꾼의 삶을 소리가 중심인 음악극으로 그린다는 것은 ‘보존’이자 동시에 ‘창작’이다. 따라서 ‘광대의 노래’는 국악의 예인을 그릴 때 지향해야 할 표현 형식이라 생각한다. 영화감독의 삶은 영화로, 소설가의 삶은 소설로 그려내는 것은 장르의 메타적인 차원을 사유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형의 유산과 관련된 예인을 기록한 텍스트를 양피지 문서에서 일으켜 무대 위의 입방체로 그리는 것은 또 다른 무형유산 보호 정책이 된다. ‘광대의 노래’는 소설가 문순태의 ‘도리화가’의 활자를 무대로 일으켜 세운 작품이다. 중인 계급인 것을 속이고 서원에 입학했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 세상살이를 한탄할 때는 방랑을 하는 신재효로, 봉선을 만날 때는 사랑에 빠진 신재효로, 그리고 훗날 여류 명창으로 이름을 날릴 진채선(1847~?)과 만날 때는 스승 신재효이자 제자를 연모하는 신재효로 그린다. 

 

 


문순태 작가의 글
소설 <도리화가>는 신재효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것에 대해 절망을 안고 방황했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진채선과의 이야기 외에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 타령>> 등 여섯 마당을 정리한, 73세까지 판소리에 쏟은 삶에 비중을 두었다. 또한 아전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모은 이재의 솜씨, 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푼 휼민정신, 풍류적 삶과 당시 신흥 부자 세력으로 등장했던 중인 서리들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다루었다. 혹자는 완판본 ‘춘향전’과 신재효가 개작한 <춘향가>를 비교해 볼 때, 신재효의 개작본이 원래 ‘춘향전’이 가지고 있었던 민중의 발랄성을 상실해 버렸다고도 하나, 동리 신재효만큼 판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것의 정리에 힘쓴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소설 <도리화가>는 1991년 ‘음악동아’에 2년간 연재했고 1993년 도서출판 햇살에서 출판했던 것을 보완하여 2014년 복간하게 되었다.  

 

2015년 영화 ‘도리화가’가 개봉. 류승룡이 신재효 역을, 수지가 진채선 역을 연기했다. 이종필 감독.

 

신재효(1812~1884)
전라북도 고창의 아전 출신이었던 그는 사재를 털어 수많은 소리꾼들을 후원하고 가르치면서 구전되어 오던 판소리 열두 마당 중에 여섯 마당의 체계를 잡아 작품화했으며, 광대가 갖추어야 할 법례를 마련함으로써 판소리를 광대들의 기예가 아닌 예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그 결과 신재효는 ‘어전 광대가 되려면 신재효의 문하를 거쳐 와야 한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많은 명창들의 스승이 되었고, 그가 살았던 고창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성지가 되었다. 특히 그는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소리판에 진채선이라는 여성 명창을 데뷔시키고, 그녀와의 사이에 〈도리화가〉라는 애틋한 연가까지 남김으로써 대가의 풍모에 로맨티스트의 이미지까지 갖추었다. 
19세기 중후반의 조선 사회를 솔직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는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은 섬세한 줄거리와 예리한 풍자를 통해 사회 비판의 한계를 넘어 문화적 카타르시스까지 이끌어낸다. 오랜 세도정권의 그늘 아래 학정과 수탈로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그 시절, 아전들은 지방 수령과 함께 ‘탐관오리’라고 불릴 정도로 백성들에게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행패가 오죽했으면 유학자 조식은 “우리나라는 이서(吏胥) 때문에 망한다.”고 통탄하기까지 했다. 그런 시기에 신재효는 실천적인 지식인이자 교육자로써 괴리되었던 양반과 평민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문화적 욕구는 물론 신분 상승이라는 가외의 목표까지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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