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clint 2025. 6. 3. 06:51

원작을 하유상이 각색하고 문고헌의 연출로 극단 춘추에서 공연하였다.

 

 

 

캘리포니아주의 샐리너스 계곡에 사는 새뮤얼 해밀튼 일가족과 
아담 트래스크와 그의 가족이 등장한다.
아담 트래스크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처럼- 냉혹하고 사악한 여자 
캐시에게 말려들어 그녀를 사랑함으로 비로소 생의 보람과 환희를 느낀다. 
아담은 캐시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위해 부친에게서 받은 재산을 정리하여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을 물색하다가 샐리너스 계곡에다 자리를 잡는다. 
그는 샐리너스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을 얻어 거기에 아내 캐시를 위해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할 꿈에 젖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 속에 동물의 

잔혹성을 감준, 아내 캐시는 이러한 그의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다. 
그녀는 쌍둥이를 낳은 후 몸이 회복되자마자 갓난 애들을 내팽개치고 집을 
떠나 직업 창녀의 길을 택한 후, 창녀로서 이름을 떨쳐 명성과 돈을 얻는다. 
그러나 아내의 배반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아담은 생의 보람을 송두리째 
잃고 암담한 좌절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카알은 마치 구약성서의 
아벨과 카인 형제처럼 한 사람은 선을 한 사람은 악을 품고 자라고 있다. 
카알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에 대한 갈등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아담은 자연히 천사 같은 외모에다 선한 아들 아론을 사랑하게 된다. 

카알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 때문에 마음속에서 끝없는 투쟁을 벌이며 몸부림친다. 
이브가 낳은 카인과 아벨이 질투 때문에 형제 살상을 벌이듯이 사악한 

여자 캐시가 낳은 쌍둥이 아들 아론과 카알 역시 서로 반목하다가 마침내 

카알은 아론을 전쟁터로 가게 하여 전사하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를 견디지 못한 카알은 자기들의 어머니가 창녀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아론에게 복수하고, 아론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을 팽개친 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스타인백이 50세 때 쓰여진, 그의 원숙하고도 포용적인 인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의 결실로서, 인간 회복의 가능성을 추구한 20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고향인 샐리너스 계곡을 무대로 하여 인간의 선악 투쟁이 구약성서의 카인과 아벨의 주제에 의해 상징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인간애라는 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20세기 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케일이 웅대하고, 주제 면에 있어서도 관용과 인간애로 감싸진 대작이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가리켜 자신의 최대작, 대표작이며 이 작품 이전에 씌어진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습작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선악, 애증의 운명이 농도 짙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원죄를 주제로 하여 20세기의 신화를 창조하려고 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의 작품들을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하기도 하고 대개의 경우 자각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의 대작 <에덴의 동쪽>은 처음에는<샐리너스 계곡>이라고 했다가 다시 제목을 바꾸어 1952년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이 지적 또는 철학적 정점에 이르면서 작품속 중국인 가사 관리인 리이가 이렇게 묻는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에 따라 세상이 이룩될 수는 없나요? 고통과 광란의 원인이 밝혀지면 이런 것들이 뿌리째 뽑혀질 수는 없는 가요?" 자각의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검토된 인생(examined life)을 리이는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소설에서 스타인백은 이렇게 자각되고 검토된 인생의 어려운 성취과정을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세상을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스타인벡의 주된 관심사가 구약성서 창세기 4장에 나오는 히브리어<Timschel>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카인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죄를 다스리게 하리라." 물론, 여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너희들이 죄를 다스리라." "너희들은 죄를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에 달려 있느니라." 이 말은 인간의 의지 또는 자아인식에 따라 죄를 다스릴 수도 있고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자유의지 또는 자아인식의 의지를 담고 있다. 캐시가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산파역을 맡았던 새뮤얼 해밀튼의 팔을 물어뜯었을 때, 또는 그녀의 사악한 행위가 악마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때마다 아담을 유혹하는 뱀에 비유되기도 했다. 트래스크가 샐리너스 계곡에 낙원을 건설하려다 모든 일이 파멸에 이를 때 성경의 <낙원에서의 추방>에 비유되기도 했다. 쌍둥이 형제가 시기하고 아론이 전사하게 되는 장면은 카인과 아벨이 벌이는<형제 살상>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구약성서의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은 카인의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애의 부족으로 죄를 짊어지게 되고, 원죄를 짊어진 인간은 선과 악, 애(愛)와 증(憎) 사이에서 헤매게 되지만, 이 두 갈래 길을 선택하는 권리는 인간이기에 갖는 권리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각의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자기 행위에 인과(因果)를 예지하는 자유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인간이 자기 의지에 따라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존 스타인벡

 

원작과 영화, 연극의 차이
원작 소설 중 마지막 4부 내용만으로 영화 제작했기에 원작과 차이가 조금 있다. 소설 시작부터 등장하나 3부에서 사망하여 회상 등의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새뮤얼 해밀턴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애덤의 가족인 아버지 사이러스와 동생 찰스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특히 3, 4부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 중국인 집사 리는 아예 빠졌다. 이로 인해 칼이 사업을 위해 5천 달러를 빌리는 것도 어머니에게 빌리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어머니 캐시에 대한 관계도 일부 수정되어 원작과는 다르게 칼과 대화를 더 많이 하며 모정이 남아있는 것으로 되었다. 또한, 애덤은 아내가 동부로 떠나 뭐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나 칼이 폭로해 진실을 알게 된다.
에이브라와 칼은 아론이 입대하기 전부터 몰래 사랑이 싹트는 관계로 나오나 소설에서는 아론 입대 후부터 조금씩 사랑이 싹트다 아론 사망 후 더욱 가까워진다. 칼이 윌 해밀턴과 동업을 하여 애덤이 날려먹은 상추 값을 보완하는 부분도 소설과 다르다. 상기했듯 칼은 집사 리에게 5천불을 빌려 윌 해밀턴과 동업을 시작했으며 리와 윌에게만 아버지에게 돈을 선물로 주는 계획을 말하고 비밀로 부쳤다. 영화에서는 어머니에게 5천불을 빌린 후 돈을 벌어 아버지에게 선물로 주기 전 에이브라에게만 계획을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난 후 아론은 미친 채로 입영 열차에 실려가는 것으로 나오며 애덤은 이걸 보고 뇌졸중이 오는데 소설의 아론은 몰래 편지만 쓰고 입대하여 이후 소식을 듣고 애덤은 1차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애덤은 곧 회복하나 아론 사망 소식을 듣고 2차 뇌졸중이 와 사망에 이르게 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애덤에게 칼의 죄의식을 없애달라고 호소하는 역할을 소설에서는 리가 했지만 영화에서는 에이브라가 한다. 무엇보다 영화에서는 캐시와 아론의 사망이 나오지 않는다.
연극은 원작소설보다는 영화쪽과 유사하다. 무대에서 공연 되기에 시간 공간의 제약 때문에 그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