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키스 허프 '스테디 레인'

clint 2025. 2. 26. 09:55

 

 

 

그래도 모든 것이 그럭저럭 잘 돌아갈 줄 알았다.
그 날 밤, 총알 한 방이 대니의 집안으로 날아오기 전까지는.
자칭 시카고 최고의 경찰이라 자부하며 언젠가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경찰이 될 것이라 믿는 대니와 조이는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였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대니는 시카고 뒷골목 

창녀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포주들에게 흉악하게 굴기로 유명하다. 
반대로 조이는 여인숙과 다를 바 없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여자도 없이 혼자 
술을 들이키며 시간을 보낸다.
대니는 매일 저녁 혼자 사는 조이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이고 어느 날 저녁 
자신이 돌봐주는 창녀를 조이에게 소개한다. 그 저녁식사 시간은 엉망이 되고 
화가 난 대니는 그녀를 바래다주러 갔다가 엉겁결에 그녀와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포주 중 한명인 월터 일행에게 위협을 당하고 

한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대니의 가족들과 조이가 여느 때처럼 대니의 집에서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총알 한 방이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이 사건으로 아직 걷지도 못하는 대니의 어린 아들이 큰 상처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모든 일이 월터가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대니는 
경찰 업무는 아랑곳 않고 월터를 쫓기 위해 법의 수위를 무시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저질러 나간다. 그 즈음 시카고의 어느 뒷골목으로 출동한 

대니와 조이는 약에 취해 벌거벗은 어린아이를 마주한다. 

그들은 신분확인도 하지 않고 아이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남자에게 아이를 

돌려보내고 아이는 결국 시체로 발견된다. 
두 경찰이 피해자를 연쇄살인범에게 보냈다는 그 사실에 세상은 발칵 
뒤집어지고 두 사람의 경력도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꼬리를 물고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더 이상의 최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대니는 오로지 가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월터 일행만을 뒤쫓고 조이는 무너지기 직전인 대니의 가족들 
주변을 맴돌게 된다.



정의와 공정함에는 별 관심 없는 두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스테디 레인>은 사방이 늪지대인 범죄의 도시, 시카고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두 남자의 필연적 몰락을 그려낸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인물 군상들을 상반된 두 경찰을 통해 그려내며 본격 느와르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희대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의 실화를 차용한 이 작품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비참하고 끔찍한 사건이 바로 지금, 현실의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사건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대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법과 규율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잘못된 신념의 지반 위에 지어진 그의 스위트 홈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 아닌 비극으로 질주하는 폭주의 근원이 된다.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갖지 못한 채 ‘술’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내는 조이에게 현실은 ‘그냥 살아지는 어떤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인생을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비극의 운명으로 끌려들어간다. 
<스테디 레인>의 '느와르' 라는 장르는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그려내며 작품을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 차게 하고 관객을 어둡고 음습한 나락으로 이끌고 가는데 성공한다. 관객은 가랑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작은 사건이 결국 온몸을 흠뻑 적셔 더 이상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종결된다.

 

 


이 작품은 대사와 독백만으로 이뤄진 2인극이다. 

게다가 제목처럼 밖엔 우기인지라 비가 계속 내린다.  

이는 등장하는 두 사람의 '대사와 공간'이라는 공연의 가장 최소한의 

요소로 관객들이 이 작품을 파악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창한 무대장식, 등장인물의 정서나 극의 의미를 내포한 음악, 

화려한 조명 등의 관객의 이해를 돕는 모든 과장된 요소를 

과감하게 생략한 작품이다. 

오히려 이러한 모든 효과들을 덜어냄으로써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키스 허프
시카고 드라마티스트 소속 극작가로 활동하던 키스 허프는 <스테디 레인>의 성공과 함께 일약 스타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의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알아본 방송과 영화 관계자들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그는 에미상과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한 미국 유명 TV 시리즈<Mad Men> 시즌4에 작가 겸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2011 Writers Guild Award에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작업하는 '유명작가' 반열에 올랐지 만, 그의 작가로서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20여년간 낮에는 의학잡지의 에디터로 일하고, 밤에는 대본을 쓰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자신이 몸담은 극장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스테디 레인>과 같은 스타일의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1층에 자리 잡고 있어서 행인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영세한 시카고의 작은 극장 소속이었다. 우리는 대형극장의 넉넉한 예산이나 휘황찬란한 무대 효과를 사용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적인 무대장치만으로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쓰는데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Connecticut Magazine과의 인터뷰)
평생을 시카고에서 경찰로 근무했던 자신의 장인과 대화를 나누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윤리의 회색지역, 윤리의 이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키스 허프는 <스테디 레인>을 '시카고 경찰 3부작' 중 첫번째 작품으로 기획했다. 다른 두 작품인 <The Detective's Wife>와 <Big Lake Big City>는 최근 시카고에서 초연되었고, LA와 밀워키 등 미국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Keith Huff



제프리 다머 (JEFFREY DAHMER) 사건
이 작품에 두 경찰이 동양소년을 살인마에게 돌려보낸 건은 희대의 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실화로부터 나왔다. 제프리 다머는 1978년 1992년까지 총17명의 청소년을 살해한 것은 시간, 사체절단, 인육을 먹고 시체를 집에 전시하는 등의 기행으로 1990년대 전 미국과 전세계를 한 연쇄살인마이다. 1992년, 제프리 다머는 그의 손에서 겨우 탈출한 흑인 남성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15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같은 방에 수감된 죄수들의 손에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