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성민 '위대한 무사고'

clint 2024. 1. 2. 08:19

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 심사위원 이성열 장성희(대표 집필)

희곡 부문 응모작은 모두 101편이었다. 단막극의 길이나 시·공간 제한 등 기본 조건을 넘어서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화와 이미지를 다루는 문학적 훈련, 동시대적 주제와 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가 의식, 연극이 담아낼 수 있는 행동 서사 등을 찾자는 시선으로 응모작들을 읽었다.

일단 대화를 쓸 줄 아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대화를 시늉한 독백에 그치거나 상황만을 그릴 뿐 진전 없는 구조가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타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작품은 매우 적었다. 설명적인 대사로 채우거나 인물 각자의 혼잣말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 다수였다. 최종까지 거론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지구 반대편에서 스쿼트를 하는 사람들'에는 학교폭력에 희생된 동생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누나가 등장한다. 과거를 현재화하는 솜씨, 명료하고 탄력감 좋은 대사 구사가 큰 장점이다. 다만 극중 누나가 가해자로 오인한 필라테스 강사의 강습 장면은 공연 시 소재가 지나치게 희화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말 또한 콩트적 반전 구성을 넘어서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은하수에 묻었다'는 세련된 언어 구사와 풍성한 이미지 구축이라는 장점으로 끝까지 우리를 고민하게 했다. 무엇보다 상징과 은유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으나 인물 구도가 카뮈의 희곡 '오해'를 연상케 하는 점, 다채로운 이미지를 연상케하는 언어는 문학적 아름다움에 그칠 뿐 과연 무대 위에서도 그 힘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를 지우기가 어려웠다. 사막화된 남도 해변이라는 장소적인 사실성을 고려해서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또한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시적 환상이 담긴 작품의 매력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위대한 무사고'는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 소년이 경험하는 겹겹의 부조리를 다룬다. 신문 기사 몇 줄로 요약되는 사건 사고 속에 어떤 마음들이 부딪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한다. 다소 극적 긴장을 상승시키지 못하는 사실의 나열이 아쉽지만 일단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상자를 열어젖혀 보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고립된 개인의 내면 독백을 담은 다른 응모작들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었다. 사회와 언론이 다 못하는 일을 좀 더 응시하고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말을 찾아주는 일, 그것을 우리가 경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연극과 희곡의 대화적 속성이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 올린다.

 

당선소감 - 윤성민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일어나선 안 될 일들에 대해 쓰겠습니다.

뒤풀이의 뒤풀이의 뒤풀이의 뒤풀이에 남은 사람들은 아홉 명이었습니다. 밖에는 폭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택시는 저희를 구하러 오지 않았는데요. 되풀이되는 뒤풀이 속에서 가질 것 없이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분씩 무엇을 쓰는지 고백했고 시와 희곡을 쓴다고 말한 건 저뿐이었고 등단을 못 한 것도 저뿐이었는데 좋은 분들이 곧 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집에 돌아와 두 시간을 잠들어 있다 당선 전화를 받았는데요. 이 정도로 곧 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에 뵙게 된다면 제가 사고 싶어요.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고 70명 정도 되었을 때, 도무지 감사하지 않은 분이 없어서 적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왜 소감문에 본인 이름이 없냐고 섭섭해 하실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을 하면서 저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화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면 부족할 테니 회사 얘기는 쓰지 말라고 한 현수와 지윤님, 예림님, 유진님, 규태님, 데브팀 분들께,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북엔드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왔기에 배울 수 있었던 가르침들을 생각하면 많은 이름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먼저 홍창수 교수님께, 5년 전 교수님의 전화로 저는 느려도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감사의 말을 여기서 쏟아내면 만날 때 어색하니 직접 뵙고 감사의 말씀을 전할 게요. 하율쌤, 민호쌤, 종우쌤, 태현쌤, 항상 유쾌하고 상냥하신 희곡 전공 선생님들이 저는 좋습니다. 제가 쓴 작품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해주신 김왕근 배우님, 그건 지금 쓰고 있습니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이제 교수 아니라고 자꾸만 정정하시는 이영광 선생님.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저는 너무 어렵지만 제자이면서 동료 시인이 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을 염려해주시는 이혜원 교수님, 소감문을 쓰고 있는 오늘도 상냥한 의사 선생님의 호통을 들었지만 저는 지지 않아요. 그래도 건강해져서 교수님께 좋은 작품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계시는 박유희 교수님, 덜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게요.등단하면 업고 교정을 돌겠다고 하셨던 박형서 교수님은 45도 각도로 웃어주세요. 황수대 교수님, 임곤택 교수님, 박혜상 교수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과 재능이 부족하네요. 그래도 가르쳐주신 분야에서 좋은 소식 들려드리고 싶어요. 항상 학생들의 진로와 꿈을 도와주려 애써주시는 과사무실 신선영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느린 속도로 살고 있는 저를 믿어주시는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제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나가 있어서 저는 살아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해요. 다 같이 할머니를 뵈러 가요. 온통 감사 범벅 속에서 마구 떠오르는 이름들에게 무책임한 감사를. 장성초 현석, 우림, 후인, 한길, 강우, 종호, 우석, 보희, 동윤, 병우, 현호, 윤석, 연준, 주민, 일산대진고 현우, 용준, 진교, 재윤, 홍규, 현주, 상모, 진언, 동완, 민규, 석영, 호영, 건희, 준행, 영진, 돼지길드 해연, 은비, 철호, 연지, 상원이에게, 광욱, 정완, 유라, 규보, 은일, 나연 선배에게, 가혜, 현정, 슬기, 태영, 연주, , 지은, 예경, 준우, 정수, 경남, 태욱, 진원, 정민, 은혜, 지영, 혜윤, 지경, 은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동기들과 13학번 후배들에게, 지은씨, 원재, 원정, 수현이 계속, 잘 쓰기를 바라며. 상냥한 재경쌤과 상혁, 우준, 수민, 겨레, 희선, 예슬, 유미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요. 지호 선배와 선우쌤, 수연씨의 두 번째 책이, 경은 선배의 첫 시집이 곧 나오길, 승원이의 시를 지면으로 많은 사람이 보게 되길 바라며. 지원이에게, 너는 네 생각보다 더 소중함을 잊지 말길. 잊는다고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많이 부족한 작품의 좋은 점을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문학을 하는 자들의 활로를 열어 주시는 한국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는 동안 많이 쓰겠습니다.

 

1991년 서울 출생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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