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공항의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 바에서 만난 두 남녀. 남자는 신생 인터넷 기업에 자금을 대고 조언하는 일을 하는 부유한 결혼 3년차였고, 여자는 여자 대학교에서 문서 보관 담당자로 일을 하는 미혼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평생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 낯선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남자는 해안가의 부지를 사들여 집을 짓는 중이었는데, 시공업자와 아내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 앞에서 확인한 그는 엄청나게 화가 났고,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불륜 장면을 목격한 일주일 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자문했던 질문, 아내를 죽이는 일에 대해 그녀에게 털어놓자, 놀랍게도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한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에요."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살인을 계획하는 남편 테드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그를 돕는 릴리의 스토리와 과거 릴리의 행적이 교차 진행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1인칭 화자였던 주인공 테드는 1장을 끝으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시작된 2장은 릴리와 테드의 첫 만남 장면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테드가 죽이려고 하던 아내 미란다와 살인 계획을 모의하다 혼자 남겨진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3장에선 그녀들 외에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킴볼과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릴리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독특한 가정 환경과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컸지만, 사실 그녀를 그저 사이코 패스라고 치부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라는 합리화, 그리고 내가 만약 누군가를 죽이고,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의문이다.
- 번역 노진선의 글 중에서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불도저로 초원을 밀어버리면 시신이 발견될 수도 있고, 혹은 그 위에 호텔이 지어져 더 완벽하게 매장될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한다는 아빠의 말은 어떤 뜻일까? 혹시 아빠는 이미 우물 속 시체를 발견하고 먼저 손을 쓴 건 아닐까? 아빠가 미국으로 돌아온 직후 갈퀴로 낙엽을 긁어야겠다고 말한 대목, 한밤중에 소리 지르며 깨어났다는 대목은 그냥 우연일까? 아니면 우물 속 시체를 발견하고 그런 것일까? 또 남의 일에 지극히 무관심하던 엄마는 왜 갑자기 환경주의자가 됐을까? 엄마도 뭔가를 알고 공사를 반대한 건 아닐까? 평생 자식을 방치 해온 부모가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속죄하려 했을까? 물론 이것은 과장된 해석일 수 있다. 아빠가 아무리 갈퀴로 낙엽을 긁었다 한들 몽크스하우스를 벗어나 초원까지 갔을 리 없고, 밤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건 단순히 교통사고 후유증일 수 있다. 이 결말의 반전이 릴리가 잡히는 것일지, 아니면 이번에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일지는 독자의 해석에 달렸다. 여러분의 다양한 해석을 기대해본다.
'좋아하는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터 스완슨 '아낌없이 뺏는 사랑' (0) | 2023.02.24 |
---|---|
피터 스완슨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0) | 2023.02.23 |
김성종 '여명의 눈동자' (0) | 2023.02.21 |
나다니엘 호손 '주홍 글씨' (0) | 2023.02.20 |
정명섭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0) | 202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