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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 악마의 서사시'

clint 2023. 2. 17. 13:44

 

 

악마의 서사시 1920년대 불가코프가 쓴 세 편의 중편 소설 가운데 첫번째 소설이다. 

작품은 전체의 줄거리를 정돈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치 뿌연 안개 속윤 헤매듯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대변하며 전개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0년 때는 전시 공산주의 시대로 실제로 작품 속에서 나타나듯, 

봉급대신에 성냥이나 포도주 등을 주었던 시대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며 정상적인 근무를 하던 평범한 사무원 까로뜨코프가 정신병원까지 갔다가

마침내 옥상 꼭대기 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은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전개된다. 

 

사건은 성냥 공장에서 근무하던 까로뜨코프가 봉급 대신에 받은 질 나쁜 성냥으로 인하여 눈에 화상을 입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직장 상사가 밤사이에 해임되어 버리고 새로운 국장으로 깔리소네르(구레나룻이 없는)가 부임되어 온 줄도 모르고, 까로뜨코프는 새 국장을 몰라보는 실수를 저지름과 동시에 결재 서류에서 국장의 이름이 <깔리소네르>인지도 모른 채, 여직원들에게 <깔리손(속바지)>을 지급하라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해고 되고 만다.

작가는 많은 인텔리겐짜들이 갑자기 직장에서 내몰림으로써 하루아침에 정상적인 질서가 무너져 내리던 당시의 사회적 혼란상을 암시하고 있다. 그 후 자신의 부당해고를 알리기 위하여 국장(깔리소네르)을 쫓고 쫓는 까로뜨코프의 추격전은 마치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까로뜨코프에게 똑같이 생긴 두 명의 깔리소네르 (구레나룻이 있는 깔리소네르와 구레나룻이 없는 깔리소네르)가 나타나며 까로뜨코프 자신도 까로브코프로 오인받는다. 까로뜨코프가 분실한 자신의 신분증을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코믹한 사건들은 당시 무식한 프롤레타리아관료사회의 경직성을 그로테스크하게 풍자한 불가코프 적 사실주의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까로뜨코프가 신분증을 재발급 받으려고 찾아간 사무실의 한 서기보는 서랍 속에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서기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치 로봇처럼 서랍 속에서 일어나 기어 나온다. 그는 서랍 속에서 나오자마자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무조건 기계적으로 마구 써대기 시작한다.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들처럼, 오로지 하나의 명령에 의하여 전후 사정 안 가리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당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시각이 여기에 담겨 있다.

 

결국 작가는 정상적인 사람이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는 당시의 대 혼란상을 자신의 고유한 <그로테스크 적 사실주의>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까로뜨코프가 옥상 꼭대기로부터 땅을 향하여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질 때, 그의 눈에는 반대로 회색빛 건물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자신은 위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악마의 서사시>는 난해하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가 비약한다. 착각과 오해가 만들어낸 상황들이 이어지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파편적이라 전혀 몰입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넘어선 진행이다. 동문서답이 오가는 장면들이 이어질 때는 뭐지? 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앞부분에서 급여 대신 생산품을 받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전개다. 주인공의 착각에서 비롯한 실직이 새로운 모험으로 이어진다. 쌍둥이가 핵심인데 당사자는 이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와 비슷한 이름을 둘러싼 오해는 다른 상황을 만든다. 이 두 상황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읽으면서 하나로 연결하기가 어렵다. 그냥 달릴 뿐이다. 하나의 명령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인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는 평을 제대로 감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하나씩 머릿속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