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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개의 심장'

clint 2023. 2. 18. 14:33

 

불가코프는 1925 1월에서 3월 사이에 중편 개의 심장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공식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까지는 작가의 운명만큼이나 어둡고 긴 터널을 거쳐야 했다. 19251 7 악마의 서사시’, ‘비운의 달걀과 몇몇 단편들이 수록된 문집 악마의 서사시는 압수되었으며, 1926 10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뚜르빈 가의 하루가 초연된 후에는, 작가에 대한 비난이 더욱 더 심해져 1927년 초,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개의 심장의 각색에 대한 계약마지 파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1925년 중편 개의 심장을 완성한 후에, 자신의 작품을 친지나 친구들이 모인 문학 모임 등에서 여러 번 낭독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훗날 6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후인 1987 6, 잡지 즈나마에 처음으로 개의 심장이 발표되었을 때, 독자들에게 아주 낯설지 만은 않은 작품이 되게끔 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불가코프는 한번도 개의 심장의 각본을 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의 많은 예술극장에서 이 작품에 대한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많은 배우와 연출가들이 이 작품을 해석하고 각색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의 심장 이 쓰여진 1920년대 모스크바에서 생식기관의 이식에 의한 인간 본성의 교정 및 우생학 등에 대한 논의는 신문 등의 저널리즘을 통하여 흔히 유행하던 화제 중의 하나였다. 또한 당시는 혁명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대혼란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모든 분야에서 볼셰비키의 혁명 이데올로기가 강요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본래 의사 출신인 작가 불가코프는 당시 유행하던 화제, 즉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에 대하여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관심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 의사가 개- 샤릭을 정자 분비관의 이식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 샤리코프로 변형시키는 수술로 나타난다. <쁘레오브라젠스키라는 이름도 <변형시키다>의 뜻을 지닌 러시아어 쁘레오브라지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개를 인간으로 변형시키는 비자연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수술을 볼셰비키의 파괴적인 혁명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수술이 잘못되었음을 마치 혁명의 부당함을 알렸듯이, 주인공 쁘레오브라젠스키를 통하여 전한다. 이는 개를 인간으로 변형시키는 수술의 성공 후에 샤리코프 (-인간)라는 결과물을 놓고, 과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와 같은 수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정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조수 보르멘딸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기에서 불가코프는 자신의 주인공 쁘레오브라젠스키를 통하여, 인간 사회에도 자연에서와 같은 법칙이 존재하며, ‘변화, 일련의 과정을 무시해버리는 혁명적 방법이 아닌, 자연의 진화와 같은 점진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였을 때,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개 샤릭에게 이식된 뇌하수체는 죽은 끌림 추군낀의 것이다. 러시아어로 추군> 강철을 의미하며, 이는 또 다른 강철을 의미하는 단어 스탈리>와 연관된다. 이는 작품 속에서 샤리코프의 외모가 스탈린과 매우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편. 쉽게 변형될 수 없는 강철의 성질을 지닌 샤리코프를 인간으로 변형시키려는 쁘레오브라젠스키와 그의 조수 보르멘딸리의 반대편에는 같은 프롤레타라아 출신의 쉬본제르와 그가 이끄는 담콤 (주택관리위원회)이 통상한다. 쉬본제르가 샤리코프에게 지어 준 이름 뿔리그라프 뿔리그라포비치뽈리그라프>는 러시아어로 복사기라는 뜻이다)에서 알 수 있듯 이, 샤리코프는 쉬본제르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하수인이며, 그의 기계적인 복사판이다 처음에 쉬본제르 일당이 쁘레오브라센스키 교수의 아파트를 공용화하기 위하여, 그의 아파트에 나타났을 때, 교수는 이를 끝까지 막아낸다. 불가코프 문학에 있어서 아파트 즉, 집은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상징임과 동시에, 수 세대에 걸쳐서 잘 보존되어 온 인텔리겐차의 전통과 관습이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는 대상으로서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쁘레오브라젠스키 교수는 샤리코프가 자신과 동일한 인텔리겐차 출신이 아니며, 단지 잘못된 수술 (실험실 속에서의 혁명)에 의하여 탄생되었음을 강조하는 반면에, 쉬본제르는 샤리코프가 자신과 동일한 프롤레타리아 출신임을 강조한다, 그는 쁘레오브라젠스키 교수의 아파트를 프롤레타리아에게 평등하게 분배하여 주는 데 실패한 후, 교수의 아파트에서 실험실적 혁명에 의하여 탄생된 샤리코프를 교수의 불법적인 아들로 간주하면서 쁘레오브라젠스키를 부르주아로 몰아 맹렬히 공격한다. 하지만, 샤리코프는 쉬본제르에 의해서 통제받고 그에 의하여 조정될 수 있듯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도 통제받고 지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의 소유자이며, 이는 누군가에게 항상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 소비에트 적 충실견의 인간형을 연상시킨다. 또한, 샤리코프가 입고 다니는 가죽 재킷의 복장은 쉬본제르 일당뿐만 아니라 혁명 시대의 국가 보안국의 복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가 맡은 직책은 모스크바 시내를 배회하는 모든 유랑 동물들 (특히 고양이)을 제거하는 숙청 지부의 관리 책임자이다. 결국 인텔리겐차 쁘레오브라젠스키는 프롤레타리아의 저질적인 인간본성을 교정하기 위하여 실험실 인간- 샤리코프를 창조하였으나, 그것은 창조가 아닌 또 다른 변형물 -인간을 만들어 내는 중대한 실수였음을 곧바로 직시하게 되며, 따라서 샤리코프 (-인간)를 다시 샤릭()으로 환원시키는 수술을 단행한다. 마치 불가코프 자신이 당시에 저질러지고 있던 혁명의 소용돌이를 다시 혁명 이전으로 환원시키고 싶었던 것처럼.

 

 

고려대 러시아연극회 공연중에서

 

 

이 작품은 중편소설이지만 연극적인 구성으로 변경하기가 다소 수월하기에 최근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연극으로 텍스트화 하여 많이 공연되고 있다. 특히 그로테스크한 줄거리 구성에, 그리 장면 변환이 많지 않은 아파트의 한 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백미는 역시 불가코프가 스탈린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개-인간'을 통한 풍자에 있겠다.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자꾸 연극무대장면이 연상되는 것도, 그리고 작가가 많은 대화체로 끌어가는 것도 많은 희곡을 즐겨 쓴 그의 작풍에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