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상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선욱현] 뛰어난 작가, 관객과 흥미진진한 줄다리기
희곡은 갈등과 모순을 다루는 문학으로 결국 그 갈등이나 모순이 너무 쉽게 드러나 버리면 극이 그 순간 끝나버리는, 흥미를 잃게 되는 순간이 된다. 뛰어난 극작가는 관객(독자)과의 줄다리기를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하느냐가 늘 관건인 셈이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며, 우리 사회 여러 모순과 갈등에 시선을 두고 있음은 긍정적이었지만, 그 문제 제기가 단순한 전개와 해결로 끝나버리는 거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작가 안에서 이미 결정된 일을 들려주는 구조가 아닌 독자 혹은 관객의 상상력과 줄다리기가 이어졌으면 한다. 단막극은 단순히 짧은 길이가 아닌 ‘함축’이 생명이다. 얼마나 많은 고민이 제시한 짧은 상황 안에 담겨있느냐가 단막극의 ‘강렬함-깊이’가 될 것이다. 당선작을 고민하던 중 ‘빵집 찬들’은 살기 위해 훔쳐야 했던 오늘의 청년 사정이 아련했으나 쉽게 결말이 나타나 당황스러웠다. 조금 더 훔친 이와 범인을 찾는 이,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 라인이 중첩된다면 더 흥미로울 거 같았다. ‘낙하하는 무게’는 현세의 힘겨움에 이어 사후까지 이어지는 불평등의 문제가 흥미로웠지만 제시한 가정 외에 더 사유를 부르는 여운이 조금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마음을 끈 건 ‘두더지 떼’였다. 땅을 파고 들어가서 살려는 지하인간과 그 바로 위에 건물주 꿈에 부푼 지상인간이 와서 작은 구멍을 통해 조우하게 된다. 조금은 단순 이분법적 설정이지만 양극화되는 우리 사회 작금의 정서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극 중 지하인간이 ‘지하는 당신들께 아니에요’라는 대사는 확장이 가능한 울림이 있었다. 원고를 덮은 후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생각하게 했던 ‘두더지 떼’를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투고하신 모든 예비 극작가분의 정진과 건필을 빈다.

[당선소감] - 이예본
“사랑하는 모든것 무대위에…연극하며 살 것”
무엇이 이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벅차오름, 환희, 초조, 긴장…. 너무 많은 감정이 한 몸에 얽혀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데 용기가 되어주신 분들과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과, 앞으로 읽어주실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의식주(衣食住), 그 중에서도 주(住)의 역할이 유독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이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채 돌아가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모두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연극하며 살겠다는 다짐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무대 위에 있다는 확신이 견고해지는 요즘입니다.
항상 기둥과 뿌리가 되어주는 승현, 형우, 다후, 나아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김미도 교수님께 이 기쁨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예본
-1999년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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