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서라벌 북청계단아래 매장되어 있는 백제 성왕의 유해를 가져가려고 신라에 진입한 백제의 왕손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주 선화의 미모에 매료되어 스스로 서동가를 지어 동래 장안에 퍼지게 한다. 신라 진평왕은 공주의 음란한 소문에 대하여 선화를 귀양보낸다. 그러나 성왕의 유해가 이미 화장된 것을 안 서동은 선화공주의 귀양지를 뒤쫓아 선화공주를 흠모하던 흑두의 일당을 물리치고 선화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어차피 누명을 쓰고 갈 곳이 없는 선화는 서동을 따라 백제로 간다. 그러나 나제동맹이 깨어진 백제로서는 몹시 당황하고 백제의 효순왕자는 부왕(위덕왕)에게 아뢰어 서동이 발견한 금광에서 캐어낸 많은 금과 함께 신라에 진사 시절을 보낸다. 신라에서는 이 커다란 사건으로 대신들 간에도 대립이 극심해지니 선화를 짝사랑하던 흑두는 화랑들을 충동하여 백제를 치자 하나 서동의 기지로 인하여 신라 증평왕의 화친 사자가 이미 위덕왕을 알연하였으므로 견원지간의 두 나라가 비로소 화친을 맺게됨을 백제의 용화산 사자사에 있던 서동과 선화에게 효순왕자가 전하여 주니 서동과 선화는 기쁨과 감격에 싸이며, 백제 위덕 대왕도 마침내는 두 사람의 결합을 선포한다.
작가의 글 – 이재현
전해져 내려오는 서동요의 이야기는 백제30대 무왕이 사비성 남지가에서 어머니가 그 못의 용과 관계하여 태어난 후 서동으로 자라다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산화가 아름답기 짝이 없음으로 서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쳐 불리움으로 종내 결혼했다는 설화가 歷史的으로는 考證이 안되는 많은 時差가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하여져 내려오고 있고 연극化도 벌써 오래전에 되었었다. 이번에 이 서동요를 근거로 하여 다시 집필하게 된 것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지게끔 새로운 구성을 해달라는 것이 劇場의 청탁이었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이 동화적 줄거리가 너무 재미있었고 나대로 그간 극화에 대해서 생각한 바도 있어 붓을 들었다. 먼저 이번 劇은 해설자 없는 構成을 하였는데 演劇的으로 말하면 解說의 역할도 많이 있는데 解說이 극 進行에 결정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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