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용하 '귀신고래회유해면'

clint 2022. 10. 19. 10:22

 

 

포경선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온 개불, 박포수, 왈수, 동치 등은 포경선의 항로로 인해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경비정으로 인해 포경선을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남쪽에서 오랜만에 밍크고래 두 마리를 잡은 박포수, 완수, 동치 등은 카페에서 술판을 벌인다. 고래고기를 나눠주고 늦게 나타나는 해파리. 내해 미역을 보고 오는 개불과 쭈꾸미는 목도에서 발견된 돌이 천연기념물이라 말한다. 귀신고래를 찾는 개불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던 동치는 고래잡이를 관두고 노가다판에 가겠다며 나간다. 술판이 무르익을 무렵 염포댁이 찾아오고 이어 형사들이 개불을 잡아간다. 개불은 지니고 있던 해도가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는다. 해도에는 장생포에서 속초, 청진, 블라디보스톡 등 연안의 항구와 해안선이 표시되어 있고 그 해도는 간첩선 항로로 오해받는다. 귀신고래에 관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완수에게 동치는 같이 공사판으로 가자고 회유한다. 포경 회의에 갔던 박포수가 돌아와서는 고래 포획수와 출항이 축소됐음을 알린다. 출감한 개불을 염포댁이 데리고 오고, 해파리는 염포댁에게 용감의 미역이 다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린다. 동치는 마을사람들에게 공사 동의서를 받는다. 이산가족 방송을 본 왈수가 나타나고 동치는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염포댁은 개불에게 이산가족 찾으러 서울 가지 않으면 본인이 가겠다며 찾는 사람 이름 등을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 개불은 6·25 직전 청진에서 여동생을 남겨두고 장생포를 찾아왔다. 동치와 박포수는 공사 동의서 문제와 굿으로 인해 대립하고 염포댁은 개불의 이산가족을 찾지 못하고 서울에서 내려온다. 한편, 개불은 기름 탱크 위에서 미역밭의 공사 중지를 요구한다. 박포수는 개불의 선원수첩을 찾아왔다며 다시 배를 타자며 개불을 설득한다. 박포수 등은 고래를 잘 잡게 해달라며 망둥이를 데려와 굿을 하지만 동치가 나타나 포경이 전면금지 되었다며 굿을 중단시킨다. 미역 채취를 못 하게 된 염포댁은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술에 취한 왈수는 부평초 신세를 한탄한다. 개불은 귀신고래를 봤다며 목도로 떠난다.

 

 

 

전국연극제 대상작으로 선정된 이후 전국 초청 공연을 했던 작품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도 '고래'를 소재로 삼고 사실감 넘치는 사투리로 극을 이어가 지역성을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연극 '귀신고래 회유해면(回遊海面)'은 울산의 상징인 고래를 잡으면서 생계를 이었던 옛 울산 장생포와 그곳 소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다. 고래가 많아 '물 반 고래 반'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장생포. 공단 건설이 시작되고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이곳 주민들은 삶의 위기를 맞게 된다. 질펀한 사투리가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각 인물의 설움과 애환이 묻어나 마냥 웃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박용하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극을 왜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확고한 철학도 소신도 없이 막연한 동경심으로 나는 극단의 문을 두드렸다. 선배들의 술자리에서 귀동냥으로 듣는 연극이야기는 극단의 막내였던 나에게는 연극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키는 오아시스다. 그 시절, 울산에는 연극공연이 일년에 한두 편 막이 올랐으며, 연극에 관한 책을 한권 사려고 부산, 대구로 가야했다.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토요일 오후 10시 청량리행 완행열차를 타고 대학로를 찾아갔다. 그리고 오후 4, 730분 두 편의 공연을 본 후 월요일 미명의 시간에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 시절, 끝없이 물음을 던졌다. "연극을 왜 하느냐?” 나는 이 물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8년의 세월이 흐른 뒤 서울 남산자락에서 깨달았다. “연극을 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극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거창한 명분으로 시작했던 두 차례의 소극장운동, 창작극, 그리고 숱한 작업들이 범벅이 된 채 세월이란 탁류 속에 떠밀려왔다. 나는 아직도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 비겁하게도 지방이라는 환경을 탓했으며, 없는 배우, 노력하지 않는 배우를 탓했으며 길 없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다. "갈 데까지 가라" 그것은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는 표현과 상통한다.

귀신고래회유해면을 통해 나는 "갈 데까지 가라"는 진리의 초심을 가슴에 새겼다. “연극은 시대와 인간을 보는 창이다는 명제를 생각했다. 무대는 삶의 보편타당한 가치가 있음을 초석으로 다졌다. 자연의 순환이 삶의 순환, 역사의 순환이라는 진솔함이 또 다른 "귀신고래"가 되어 객석에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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