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홍진형 '오르페우스의 아내'

clint 2022. 8. 1. 09:18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의 아내는 에우리디케다.

독사에 물려 죽게된 아내를 살리고자 지옥까지 찾아간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복제인간 이야기지만 생체실험을 하다가 죽은 아내를 복제로 살려낸 것에서

오르페우스의 향을 느씰 수 있다.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에 한국인 유리와 태수 부부가 살고 있다. 부부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복제인간 연구에 참여했던 유능한 생명공학자였다. 하지만 연구 중 진행된 인체 실험이 문제가 되어 부부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유리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다. 사실 태수는 복제인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와 함께 그린란드로 온 유리가 바로 태수가 만든 복제인간이다. 원래의 유리는 1년 전 있었던 인체 실험의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유리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다. 태수는 불법 인체실험에 대한 비난 때문에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복제인간 유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그린란드에 왔다. 자기 정체를 모르는 유리는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유리는 동생 제호에게 편지를 보내 남편이 과학자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6개월 전 죽은 누나의 편지를 받은 제호는 태수가 복제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바로 그린란드로 찾아와 태수에게 복제인간 연구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태수 역시 진심으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구를 다시 시작할 경우 복제인간인 유리는 실험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태수는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호의 제안을 거절한다. 제호는 태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거액의 투자를 약속한 투자자들까지 그린란드로 데려오지만 그래도 태수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한다. 그때 유리가 혼자 돌아가겠다는 폭탄 발언을 한다. 그녀는 오래 전 자신이 주도해 진행했던 태아의 체외 배양 연구를 재개하고 싶다고 말한다. 태수는 그녀의 귀국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태수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유리는 귀국을 결심한다. 그리고 태수의 염려대로 재개되는 복제인간 연구의 실험대상이 된다. 태수 역시 유리를 따라 한국에 돌아와 복제인간 연구에 합류한다. 태수는 유리의 신체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위험한 실험들을 거부한다. 그리고 유리는 연구의 최고책임자인 제호에게 자신 역시 연구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그녀의 연구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위협하는 실험은 당분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제호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태수와 유리,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제인간 연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해외의 경쟁 연구소로 인력 유출 사태가 벌어진다. 제호는 상황이 더 악화되어 지지부진한 연구 상황에 지친 투자자들이 연구소의 자산인 복제인간, 즉 유리를 경쟁 연구소에 팔아넘기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급기야 제호는 경쟁 연구소에 넘기느니 우리가 직접 유리를 실험하겠다며 그녀의 몸에 칼을 대려 한다. 그때 유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중들에게 복제인간의 존재를 알리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일반 투자자를 모집하고, 국가의 개입을 유도해 연구소의 자산과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얘기한다. 기자회견 당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자는 유리의 제안과 달리 태수는 과거의 불법 인체 실험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일부만을 고백한다. 유리는 직접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유리는 복제인간 연구에 대해서는 말하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자신이 몰래 연구한 태아의 체외 배양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인터넷에 오픈 라이센스로 공개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뒤이어 연구를 계속 해달라고 얘기한다. 제호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을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유리는 그런 제호에게 연구소의 자산으로 등록된 자신에게 어떻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냐 질문한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은 유리의 바람과 달리 그녀의 태야 체외 배양 연구가 아닌 복제인간의 등장에만 쏠린다. 그리고 복제인간 유리는 국가의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어 국가 연구소로의 이동이 결정된다. 제호는 계속 연구의 최종 책임자로 남기 위해 국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태수는 함께 옮겨가지 않는다. 유리의 태외 체아 배양 연구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과거에 행해진 인체 실험이 유리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태수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유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유리는 실험실 컴퓨터에 남아있는 유리의 신체 데이터를 완전히 소거해달라고 부탁한다

 

 

 

작가의 글 - 홍진형

임신과 출산이라는 행위는 한 여성을 남편에게 종속시킨다. 그리고 임신하는 순간 사회인으로서 여성의 생활은 중단돼 버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회는 자아실현, 커리어의 성공과 같은 사회생활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가치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설파한다. 한 사람에게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동시에 요구하는 상황이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인류라는 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반복돼야 하는 행위다. 인류라는 종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임신과 출산을 여성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SF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복제인간과 태아의 체외 배양이라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기술을 소재로 한 생명체의 모체로서의 여성의 역할과 사회인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의 충돌에 대해 쓰고 싶었다.

 

홍진형 작가는 한국극작가협회 가족연극으로 데뷔했다. 그는 가족연극을 통해 인간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단계들을 섬세하게 그렸고, 엇갈린 대회를 통해 심리 변화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홍진형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이 품고 있는 욕망에 대해서 규정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여성들은 '아내' 혹은 '어머니'라는 타인과의 관계로만 그 정체성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오르페우스의 아내>에서 복제인간이라는 SF적 소재를 사용해 부부관계를 이야기한다. 극 속에서 남편에 의해 복제된 아내가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 모습을 통해 진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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