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들은 공연관람에 앞서 이미 ‘강기춘’이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품는다. 제목에 고유명사가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일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추리를 시작한다. 심지어 그가 ‘누구인가‘를 직접 묻고 있는 제목 앞에서 관객들은 강기춘을 알아내야하는 과제를 받아들게 되는 것이다. 극장의 모두는 이미 강기춘이라는 이름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공연의 시작과 함께 의문의 사고로 죽고 마는 기춘. 아직 얼굴도 모르는 주인공을 첫 장면에서 죽이는 과감함은 관객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실상 자세히 아는 바가 거의 없는 소방서라는 공간도 흥미를 부추기는데 한몫한다. 이후, 소방관인 기춘의 죽음을 보상금과 명예가 주어지는 순직보다도 자살로 기록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서장의 태도라니. 초반에 배치된 장면들은 강기춘의 존재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에 대해 의문을 키워가기 충분하다. 호기심은 그의 등장과 함께 풀리기 시작한다. 기춘은 분명히 죽었던 본인이 다시 깨어난 것에 놀라며 장면 안으로 들어온다. 다시 깨어난 그는 영혼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재현하고 현재로 돌아온다. 관객은 그의 정체를 알지만, 무대의 인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단순히 시간을 뒤섞어 장면을 배치한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러나 그가 영혼이라는 사실은 과거 재현 장면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기춘 혼자서만 혼란스러워할 뿐 장면은 현재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 무엇보다, 이미 다 겪었던 과거인 줄 알면서도 기춘은 똑같은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재현하는데, 그 이유를 극의 전개 안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다. 과거 장면에만 등장하는 내레이터의 존재를 실마리로 삼자면, 재현은 강기춘이 자살한 이유를 관객에게 직·간접적으로 설명함과 동시에 소방관들의 일과를 소개하는 목적을 지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과거 장면들이 인물의 전사로서만 기능할 것이 아니라, 영혼이 된 기춘의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더욱 흥미로운 사건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반면, 극 중 현재에서 기춘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기춘이 결국 이승을 떠나는 장면은 희극적 소동의 마무리에 머물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강기춘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소방관의 근무실태를 ‘고발’하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상황실에 걸려오는 무책임한 신고 전화들에는 실소가 나오고, 동물구조나 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하는 소방관들, 거기에 ‘홈키파’ 챙겨가라는 구조대장의 지시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공연의 주제는 분명했다. 소방관들의 고충을 알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강기춘은 명백하게 소방관이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에도 강기춘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그가 소방관이라는 사실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소방관인 것 말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연출은 ‘사회적 지위’에 해당하는 소방관이 아닌 다른 모습의 강기춘, 그의 ‘사생활’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너무도 분명하게 소방관에 머문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강기춘은 직업적 특수성으로 작품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주제를 명확히 하지만, 바로 그 특수성으로 인해 관객의 보편적 삶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한 인물로 존재하기보다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으로 존재한다. 짧은 사건사고 기사 속의 소방관들처럼 단상으로 제시된 그와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황은 인간으로서 강기춘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되지 못한다. 그를 통해 소방관이 아닌 나에게도 해당하는 어떠함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소방관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접하며 사회인으로서 그간의 태도를 반성하고 도덕적 정의감을 되새김질해보았을지언정, 그를 빗대어, 기춘의 생각과 행동, 결정과 같은 인간성에 빗대어 나의 삶에 대한 성찰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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