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상석 '그대 위해 배 띄우리니'

clint 2022. 3. 31. 19:46

 

 

 

 

평범한 노부부로 보이는 사내와 여인이 있다.

오늘은 사내의 환갑날로 그는 어린애처럼 유난스레 들떠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에게서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난다.

사내는 근래의 일들이며 처자식의 이름까지 통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인은 그런 사내를 걱정하기보다 뭔가 감춰진 사실을 춰내려는 듯 보인다.

여인의 끈질긴 추궁에 사내는 마침내 지나간 사건 하나를 기억해낸다.

그것은 사내의 서른 살 생일 때의 일로, 고아로 태어나 산전수전을 다 겪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사업까지 완전히 실패한 그가 바닷가 절벽에서 자살을 시도한 일이었다.

그런데 해녀였던 여인이 마침 자신을 구해주고, 그것을 계기로 둘은 부부의 연을 맺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사내의 말이다. 그러나 여인의 말은 다르다.

사내는 절벽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당장 후회가 들어 누가 자기를 살려주기를 바랐지만,

여인은 사내를 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사내는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순간만약 이렇게 죽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나이 육십에는 경사스런 환갑을 맞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사내로 하여금 오늘이 자신의 환갑날이라는 망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결국 사내는 이미 죽었고, 그것은 불과 수일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내는 여인의 말을 부정하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쳐보지만, 끝내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난다.

노인은 차차 나이 삼십의 젊은이로 변해가고, 여인은 젊은 무녀로 변해간다.

결국 모든 걸 인정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내를 여인은 달래고 다그쳐가며 위로하고,

마침내 사내의 넋은 여인의 인도를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간다.

 

 

 

 

작가의 글 - 박상석

인생이 연극과 같다는 말은 참으로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인생은 태어나자마자 배역이 주어지고, 올라서 있는 무대가 너무나 실감나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절실하기에 이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인생이 어차피 연극인 마당에 왜 또 연극을 만들고 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인생도 연극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느껴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연극이 점점 인생을 꼭같이 닮아갈수록, 인생은 점점 연극처럼 가벼이 다가올 수 있을 겁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마치 이 말처럼, 연극을 인생처럼 생생하게 바라볼수록, 우리는 인생을 연극처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번 작품을 다듬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오태영, 김대현 선생님, 그리고 희곡을 쓸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던 김홍우 선생님께 이 자리 빌어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들과 나의 벗들, 주위 모든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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