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훈 '양날의 검'

clint 2022. 3. 19. 11:10

 

 

 

대를 잇지 않으면 아비가 자살해야 하는 마을, 대대로 이발소를 운영하는 초동영감 내외는 아들 동검이 자신들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란다. 그러나 아들 동검은 도통 이발에는 관심이 없다. 동검은 가위가 아닌 기타를 치고 노래하고 싶어 한다. 100년이 넘어 사람이 된 가위 영감은 초동영감의 이런 바램을 부질없다 여기는데, 어느 날 이 동네에 밤자 입구()자의 이름을 가진 금야구가 나타나면서 아비와 아들의 속 깊은 갈등은 극에 치닫고, 아들은 먼길을 떠난다. 잊혀져 가는 옛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순리를 거스르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연민이 탄탄한 구성과 문체로 이루어져 있는 <양날의 검>은 신화와 현실의 자유로운 넘나듦으로 관객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김지훈의 처녀작 '양날의 검은 한 젊은 작가의 자기 고백이며 선언이다. 이 작품에는 이제껏 몰래 숨겨온 마음, "남몰래 가슴에 묻어놓은 마음의 소리를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말하고 노래하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의식이 숨어있다. "양날의 검"은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물려 받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발소를 경영하는 아버지 "초동 영감과 그 아들 "동검의 세대간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와 열을 맞추는 단정한 머리손질이 생업인 아버지와 자신의 길을 가려는 아들 "아버지. 저는 노래가 좋아요" - 사이의 대항과 갈등 그리고 극복의 이야기인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그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그들이 진실이며 본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지키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가, 특히 한 젊은 존재인 '아들'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며, 강압과 체제의 상징인 '아버지'에 대항해 자신의 진실을 발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극의 스토리와 구조를 보면 '양날의 검"은 인류학적 현상인 '통과의례'의 구조가 잘 드러나 있다. 통과의례의 구조란 바로 <일상으로부터 분리시기- 혼돈과 카오스적인 위기상태를 경험한 뒤, 결국은 자신을 다른 존재로 변화, 변이(Transformation)시키는 시기로서 약간 붕뜬 상태인 경계가 허물어진 시공간성을 드러낸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기>로 이루어진 구조로서 반제의 문화 인류학적 개념이다. 양날의 검에서 확인되는 것은 극의 공간성이 바로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는 경계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상으로 실존하는 쇠붙이영감의 출몰로 알 수 있다. 그는 여기저기 존재하며 보였다 사라졌다 왔다갔다하는 존재로서 이 인물들이 사는 곳이 ''뜬 경계성을 드러내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활력을 불어 넣는 존재로서 아버지라는 기존의 구조에 반대하는 안티구조로서 "금야구"가 있다. '밤의 입구라는 의미의 이 인물은 바로 혼돈, 싸움, 갈등, 나아가 혁명, 파괴를 기존체계에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언제나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꿈을 숨긴채 고통스러워 하는 동검을 전복적으로 뒤흔드는 인물로서 폭력이 지니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이 인물이 지니는 이중적 성격, 즉 파괴와 생성의 성격을 순수함과 성적 매력의 확대를 통해, 어찌 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같은 존재로 그러나 야구방망이를 맨 폭력소녀로 형상화하기로 했다. 이미 이러한 기존체제, 즉 부모와의 갈등을 이미 격을 대로 다 겪은 문제적 인간으로서 금야구인 것이다.

양날의 검에는 이러한 아버지 체제와 금야구를 상징으로 하는 anti체제가 가위로 상징되는 쇠붙이영감을 배경으로 한 시공간에서 서로의 경계선을 허물며 만나고, 새로운 공간과 현실, 즉 새로운 "동검"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통과의례적 성격이 마치 청년이 성인이 되는 성인식(극에서는 결혼식)을 치르는 것과 같아서 청소년들에게 잘 받아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본질적으로 성인들도 삶에서 수많은 통과의례를 겪는다는 것에 모두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순간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위기의식을 잉태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는 주체는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그리고 나는 내 마음과 같이 가고 있는가를 우리는 몸으로, 온 마음으로 겪는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헌꿈"이 가고 아들의 "새꿈"으로 변화되는 세상, 노래하는 세상으로 극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다. 이러한 헌꿈에서 새꿈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격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연민, 사랑이 엄청난 에너지와 치열한 의식 그리고 강력한 시적 심리적 공간으로 확대 증폭되어서 표현 되어져야 하며, 그리고 이것은 전체적으로 극을 든 상태로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혹독한 통과제의를 겪은 관객도 새꿈을 꿀 수 있도록 한다는데 생각이 모아졌다.

그래도 머무르는 고민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이해와 연민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이미 상처당한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따듯한 밥상 나눌 수 있는 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극중에 열려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아무리 가족사의 이야기라도 "타자에 대한 존중과 본질적인 것은 갖고 간다"는 기본적 원리와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어떤 극성과 연극성을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아직 문제로 남아 있다.

아픔과 고통, 거의 죽음과 같은 통과의례적 과정을 거친 후 일상으로, 동시대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동검이의 노래이며 연극이며 예술의 기능임을 연습을 동반한 작품 분석과정에서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이 연극을 보고 어둠 속에서 사랑의 편지를 읽듯 텅 빈 항아리에 손을 넣어 마음을 더듬듯 그렇게 새 꿈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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