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선희 '성웅 이순신'

clint 2021. 10. 28. 10:24

 

 

칼럼을 쓰는 작가 박현제는 편집장으로부터 이순신에 대한 글을 쓸 것을 의뢰받고 그의 족적을 찾아보기 위해 짧은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사실 그는 탐탁치가 않다. 이순신에 대한 책이나 영화는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을 뿐더러 무결점 무 단점의 인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속내야 어떻든, 박현제는 별 기대 없이 통영 인근의 한 섬에 도착한다. 때마침 그 섬에서는 해신 굿이 한창이다. 십 몇 해 전쯤 엄청난 풍랑이 덮쳐 사람들이 죽고 많은 피해를 입은 후로 매년 섬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굿을 지내는 것이다. 그곳의 이장은 현대판 이순신이라 불릴 정도로 현명하고 용감하다며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풍랑이 왔을 당시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현제는 과도하게 위인 행세를 하는 이장과 지나치리만큼 친절한 동네 사람들이 어딘가 불편하다. 한편 그 시각 서울에서는 요양사 둘이 이 섬으로 향하고 있다. 이 섬이 고향인 이씨 노인이 요양원을 탈출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간혹 자신이 이순신이라고 말하는 치매노인으로 요양원 안에서 장군님이라 불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별다를 것 없는 여정에 다음날 뭍으로 나가려던 박현제는 그날 밤 꿈속에서 이순신의 환영을 만나고 다음 날 아침 섬사람들의 갑작스런 술렁임에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이씨가 이 섬으로 탈출했다는 요양사의 전화를 받고 이장과 몇몇 마을 사람들은 동네를 뒤지기 시작한다. 해신굿이 끝나고 바다에 띄웠던 모형 배가 부서져 섬으로 다시 흘러들어왔다. 두려움에 휩싸인 이장은 무녀 월향을 다그친다. 풍랑이 비껴갈 거라고 하지 않았냐는 이장의 추궁에 월향은 풍랑은 피해가지 않지만, 이 풍랑을 잘 맞게 도울 영웅이 왔으니 무사할 거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윽고 섬에 숨어있던 이씨가 요양사들에게 붙잡혀 나타난다.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월향은 바다를 향해 노래를 부르며 과거 풍랑이 왔던 그 날을 불러 내는데...

 

 

 

 

우리 현대인들이 원래 알고 있던 이순신의 모습을 새롭게 구현해내고 있다. 연극 속의 사건을 크게 두 가지로 교차해가며 보여주는 방식이다. 연극 이순신은 비록 조선시대 사람이지만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어딘가에는 이순신이 있고, 또 그는 이순신이 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영웅처럼 나타나 도와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에 과거 속 이순신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시대를 막론하고 불멸하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과연 이순신이 괜찮았을까... 견딜만 했던 것일까... 에서부터다. 억울하게 잡혀가 고문을 받고 어머니를 잃고 아들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은 그가 과연 정말 대의만을 생각하여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는 슬픔과 변민에 미치지 않았지만 대의에 미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극 속의 이씨는 과거의 이순신과 닮은 아픔을 지니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은 그 당시의 인물들을 교묘히 닮아있다. 그들은 다른 시대에 다른 개념으로 나라를 또 섬을 구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의는 같았고 그들은 개인적 번뇌를 한 발자국 뒤에 두었다. 어쩌면 그것이 영웅의 조건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에 과거 속 이순신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시대를 막론하고 불멸하다. 그는 없지만 그의 정신은 어떤 형태로던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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