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시민의 안전을 지켜드리는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입니다.”
도시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변신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질병처럼 번져 누군가는 스마트 폰이 되고 나이키 운동화가 되기도 하며, 머그컵으로 변신한 사람을 깨뜨려 과실상해죄로 검찰에 회부되는 사람도 생겨난다. 어느 날, 지호라는 남학생이 집을 찾아달라며 변신대책관리본부를 찾아온다. 지호는 변신했다가 돌아와 보니 자신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집도 이사를 가고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호는 다른 변신자들과 달리 자신이 무엇으로 변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조사원은 변종변신을 의심하며 지호에게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보게 한다. 지호는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 머릿속에서 지워진 일들을 떠올린다. 과거를 되짚어 엉킨 기억을 풀어낼수록 점점 더 깊은 외로움만 쌓여가는 지호. 과연 지호는 집을 찾고 자신을 변신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수 있을까.
엑소더스(Exodus)는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단이 퇴장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사물이 되어 사라진다면...? 청소년 연쇄 변신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공원 벤치에 앉은 어른은 미성년자 폭행죄로 잡혀간다. 청소년들은 왜 사물로 변신했을까? 아니, 왜 사물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물이 된 청소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 속 커다란 외침이 들리나요?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돌멩이로 변신하고,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못하면서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는 시한폭탄으로 변신한다. 사물이 되어 갑갑한 현실을 '탈출'하려는 아이들. 하지만 사물이 된 후에도 아이들은 깊은 심연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머그컵으로 변해버린 한 아이를 어른들은 깨질 것을 염려해 상자 속에 가둔다. 상자 속에 갇힌 아이의 눈에 비친 광경은 오로지 끝없는 어둠뿐. 청소년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어른들은 앞으로 연금은 누가 내냐며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눈에는 자라나는 새싹인 청소년들이 그저 '돈'으로 보일 뿐이니 참으로 비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중앙변신대책관리본부를 찾아온 지호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자신이 무엇으로 변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연극 엑소더스는 지호의 눈을 통해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을 보듬어주기는커녕 자기들의 잇속만 차리려는 어른들의 이기심을 통렬하게 꼬집는 연극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불수록 깃발은 더욱 거세게 아우성친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한목소리로 외친다. 우리의 아픔, 분노, 슬픔을 느껴달라고.
이시원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존재라고 하는데 10대 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규정지으며 더 불완전한 존재로 치부해버린다”며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의 아우성을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십대는 힘들다. 가족이 붕괴되고 학교에서는 외톨이로, 사회에서는 여전히 미성숙한 아이들로 취급 받으며 삶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존재라고 하는데, 십대 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규정지으며 더 불완전한 존재로 치부해버린다. 감성 돋는 십대들은 그래서 더 외롭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십대들은 무엇으로도 변한다. 베개도 되고 의자도 되고, 붕어빵도 되고 태블릿 피씨도 된다. 청소년들이 사물로 변하는 도시 풍경은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그 뒤에 드리워진 쓸쓸한 그림자를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없는 부모를 둔 덕에 일찍 철이 든 아이도 있고, 부모님의 갑작스런 이혼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차이고 그 쪽팔림 때문에 죽도록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들이 마음 붙이고 쉴만한 곳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들에게 사물로의 변신은 단잠 같은 휴식인지도 모른다. 또는 십대 청소년기를 내려놓고 ‘잠시 파업하겠습니다’하는 시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우성을 〈엑소더스〉를 통해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사물로 변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시라. 〈엑소더스〉는 당신이 꿈꾸는 변신이 무엇이든 그것이 당신을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의 박수와도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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