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래는 말더듬이 아비와 둘이 산다. 이들 부녀는 밤마다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서로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정혼을 약속한 바우는 성을 축조하는 인부로 뽑혀 나가지 않으려고 결혼을 서두르지만 달래는 대답을 못한다. 마을 사또는 달래를 소실로 맞으려고 포졸을 보내 최종 날짜를 통보한다. 아비는 달래에게 도망칠 것을 권하지만, 달래는 문둥병에 걸려 스스로 집을 나간 어머니를 두고는 못 간다고 울먹인다. 몇 해가 지나고 아비와 어미와 달래와 바우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그들끼리 행복하게 산다.

최인훈은 대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희곡 장르에서 대사보다 더 많은 침묵과 느린 동작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낯선 시도는 공연된 연극에 대해 좋은 평을 듣기 힘들었다. 그리고 희곡에서의 그러한 시도조차 좋지 않은 지시문이라는 평을 들었다. 살펴본 두 희곡 작품 모두 긴 지시문과 적은 대사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그것은 앞선 평처럼 좋지 않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비록 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지시문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또한 느린 대사와 말더듬이를 등장시켜 극 전체의 흐름이 조금 느린 듯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음향과 조명등으로 긴장을 유지했다. 또한 오히려 긴박한 상황에서 그 느림과 침묵은 더욱 긴장을 가중시키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구전되던 이야기와 설화를 끌어다가 우리 민족의 한과 그 승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부분에서도 여러 장치를 통해 독자와 관객에게 조금 더 강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마지막 부분에 보면 사람들이 용마를 타고 올라가는 장수아기와 부부에게 '다시는 오지말아 훠어이 훠이'라고 가락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장면으로 막이 내린다. 우리가 바라는 메시아를 새 쫓아내듯 '훠어이 훠이'라고 부르며 쫓아낸다. 이 작품에서는 '옛날 옛적에'가 붙어있지만 과연 오늘날 우리는 메시아가 왔을 때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오늘날은 메시아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일까?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가 핀다. 진달래 산천에 소외받는 이들의 큰 소리로 웃음소리가 퍼질 수 있는 그런 현실을 만들 수 있을까? 불합리한 현실에 안주하고 그것을 한으로 간직하고 살 것인지 용기를 가지고 삶을 선택해 이상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린 것이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현실에 대항하기가 조금은 쉬워진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인훈은 보는 이들에게 그것을 묻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여름, 김을 매고 있는 처녀 달내, 그녀를 사랑하는 총각 바우는 노역 가기 전에 결혼해 달라고 재촉하지만 달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미가 그리워 토굴로 가서 어렸을 적 엄마가 들려주던 소금장수 이야기를 떠올리는 달내.
겨울 밤, 새끼를 꼬는 아비와 바느질을 하는 달내, 아비에게 꿈에서 누가 슬피 울며 문을 열어 달라 했지만 열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때 문 밖에서 목쉰 여자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달내는 엄마 같다며 문을 열어주자 하고 아비는 죽은 사람이라며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포교가 와서 사또가 달내를 후첩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시집보낼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아비는 아무 말이 없다. 이때 바우가 나타나 소문에 들리는 달내의 이야기를 묻는다. 아비는 바우에게 달내와 함께 달아나라고 한다.
짐을 꾸리며 아비는 달내에게 어미의 비녀를 주며 잘 살라고 당부한다. 그날 밤 달내는 꿈에서 어릴 적 산불로부터 구해주었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를 두고 못 간다고 하자 아비는 잊어버리라며 달랜다. 이때 달내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달내는 엄마라며, 아비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 뛰쳐나간다.

최인훈 작가가 문둥이 설화를 모티브로 쓴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의 비극과 희망이 담겨 있다. 작가는 당대 현실을 은유적으로 그렸다. 문둥이 엄마와 말더듬이 아비를 둔 달래, 그리고 그녀의 연인 바우가 주인공이다. 바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쌓기에 끌려간다. 달래는 사또의 첩으로 가게 된다. 아비는 달래와 바우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문둥병에 걸려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어미와 혼자 남아 시련을 겪게 될 아비를 두고 갈 수 없는 달래의 심적 갈등은 높아만 진다. 작가는 이들의 삶을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의 언어로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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