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영팔 '미쳐가는 처녀'

clint 2017. 12. 9. 16:18

 

 

<미쳐가는 처녀>는 1924년 10월에 발표된 김영팔의 처녀 희곡으로 작가 김영팔은 이 작품이 <개벽>이 현상공모한 작품중 선외가작으로 당선되는 것을 계기로 극작을 시작하게 된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시기에는 신파극에 대항하여 서구 사실주의극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로 이 작품 역시 우리 나라 초기 사실주의극이 갖는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당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자유연애를 그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다소 우유부단하면서도 막연한 개화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 춘일이 주인공이다. 가정이 있음에도 영애와 연애를 하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버림받는 여인 영애의 실성으로 작품은 결말이 난다. 이러한 기본 줄거리를 담고 있는 <미쳐가는 처녀>는 극적 구성에 있어 인과관계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며, 등장인물의 성격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극중 흥식은 춘일의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개화사상가이자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로 작가 김영팔은 그의 첫 희곡에서부터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등 프로작가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유교적 전통 윤리와 근대적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파탄하는 젊은 여성을 통하여 근대적 개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비극을 그린 신파극 계열의 작품이다. 전문학교 학생 춘일은 처가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신여성인 영애와 연애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전통적 사회 윤리와 근대적 애정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에게 그의 친구는 ‘개성의 혁명’을 강조하며 북간도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춘일은 의리를 중시하는 전통 윤리를 벗어버릴 만큼 근대의식이 투철하지 못하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북간도로 도주하려 하지만, 마침내 춘일이 아내가 있는 기혼자임이 밝혀지고 이로 인하여 영애는 미치게 된다.
이리하여 그들의 모든 꿈은 좌절된다는 줄거리로서 종래의 통속적인 신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흡한 대로 근대적 개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통하여 당대의 주된 관심사인 신구갈등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이 단순한 신파극적 해결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1920년대의 희곡 경향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附記 이번 文藝篇의 소설 흰 달빗戱曲 미쳐가는 處女의 두 , 本誌 8월호에 發表入學試驗寫眞求景戱曲 '犧牲者'의 두 편과 아울러, 本誌 7월호에 發表한 현상문예의 選外佳作임니다. 頁數關係로 해서, 이러케 띄염띄염 發表하게 되어서 作者讀者에게 매우 未安함니다.

 

 

김영팔(金永八, 1904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예술인이다. 작가 겸 배우, 방송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소설희곡, 를 창작하였다. 일본에서 니혼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20년도쿄 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에 창립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연극에 뜻을 두고 형설회순회극단이라는 이동 극단이 벌이는 순회 공연에 학생 배우로 출연하였다. 형설회가 해체된 뒤에 신극을 연구하는 극문회를 안석주와 함께 조직한 바 있고, 염군사의 동인이 되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염군사가 파스큘라와 합체하여 결성한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도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초에 경성방송국에 취업하였다가 카프에서 제명당하였다.

데뷔작은 1924년에 발표한 단막 희곡 〈미쳐가는 처녀〉이다. 문단 활동은 이때부터 1930년대 초까지에 집중되며, 희곡 10여편과 소설 10여편이 남아 있다. 작품의 주제는 좌파적 사회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전통적 인습과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다루고 있다. 전통 인습에 대한 비판은 〈미쳐가는 처녀〉와 〈여성〉에 드러나 있고, 프롤레타리아의 저항을 다룬 작품은 〈싸움〉, 〈부음〉, 〈곱창칼〉, 〈마작〉 등이다. 1927년에 발표한 〈부음〉부터는 주인공이 투쟁에 나서는 하급 노동자로 묘사되어 전형적인 경향파 문학으로 분류된다. 송영과 함께 카프를 대표하는 극작가였다.

그러나 카프 제명 후에는 반봉건, 반계급을 향한 투쟁 의지가 치열하던 작품 경향이 변화하여 〈그후의 대학생〉,〈우는 아내와 웃는 남편〉 등의 세태극을 내놓았다. 〈그후의 대학생〉은 한국 최초의 모노드라마 희곡이다. 김영팔의 작품에 대해서는 프로 문학 초창기에 시류를 따라 잠시 편승했던 좌경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이러한 시각이 지나치게 우파적인 것이라며 염군사와 카프에서의 주도적인 활동, 1920년대에 가장 많은 희곡 작품을 발표한 작가라는 점에서 좀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1932년 이후로는 절필하고 경성방송극에서 방송인으로만 활동하였다. 미군정 시기 동안 월북하였다가 한국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