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천년의 수인'

clint 2017. 12. 8. 11:54

 

 

1949년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을 살해한 후, 50년 세월 동안 민족의 역적이 되어 온갖 모멸을 받으며 살아온 노테러리스트 안두희. 1980년 광주 진압군의 일원이던 청년, 사격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았고 한 여학생이 쓰러졌다.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죽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죽은 여학생의 관을 붙잡고 우는 바람에 유족회 사람들로부터 살인범으로 몰린 젊은 영혼. 1952년 지리산 히아골에서 빨지산 활동을 하다 잡혀 지금까지 복역중인 비전향 장기수, 1949년 7월 김일성이 김구를 처단하기 위해 조직한 암살조의 일원이기도 했던 81세의 노인. 이 세 사람이 한 병실에서 만난다. 오랜 시간동안 세상이라는 감옥 속에 혹은 실제의 감옥 속에 갇혀서 지내온 이들의 삶. 감옥에서 탈출하려 하고, 감옥으로 숨으려 하며, 감옥 속에 머무르려 하는 이들 세 명의 수인, 책임지지 않는 역사가 되풀이 되었던 한국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며, 현대사의 대표적 사건들 속에 희생양이 된 이들, 갇혀진 삶을 산 수인들을 바깥에서 이들을 지켜보았던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를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 “감옥 바깥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했던가. 책임지지 않는 역사의 굴레에 놓여있는 당신은 지금 감옥의 안쪽입니까, 바깥쪽입니까?”<백마강 달밤에>이후 새로운 연극세계를 보여주겠다며 5년만에 떨쳐 일어난 오태석씨는 “이번 작품은 심판되지 않은 역사, 책임지지 않고 숨은 자들에 대한 테러”라고 말한다.<사육><태><1980년 5월><필부의 꿈><백구야 껑충 날지마라>등을 통해 우리시대를 노래한 그가 이번에는 비틀린 역사에 광기의 칼날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칼을 가는 주인공은 30년 넘게 연극계를 빛내온 동갑내기(41년생) 이호재와 전무송. 뜨거운 열정의 이호재는 안두희, 성인을 닮아가는 전무송은 비전향 장기수역을 맡았다. 70년대 드라마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태석의 작품에서 명콤비로 날렸다. 이들 세 사람의 해후는 79년<몰보라>를 끝으로 헤어진지 꼭 20년 만이다. (국민일보 1998년 4월 14일, 이광형)   

 

    

 

 

… 오태석씨는 96년 박기서씨가 안두희를 타살한 사건에서 번쩍하는 영감을 받아<천년의 수인>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이 이 연극의 주제는 천근처럼 무겁지만 무대는 날아갈 듯이 가볍다. 김구의 죽음, 한국전쟁, 박정희 암살, 광주학살 같은 현대사의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이 거론되면서도 시종 익살과 풍자가 끊이지 않는다. 관객을 포복절도하는 웃음 속에 몰아넣으면서 작가 오태석씨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해방 이후 직금까지 우리는 비극의 책임소재를 한번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을 회피하며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는 동안 똑 같은 잘못이 다시 저질러졌다. 이제 그런 역사는 끝내야 한다.” (한겨레신문 1998년 4월 23일, 고명섭)

 

 

 

 

… 한 병실에서 이들이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탈출하고 싶은 안두희, 차라리.... 
<백마강 달밤에>이후 5년만에 선보이는 오태석의 신작이다. 96년 말 안두희의 죽음을 보고 써내려간 작품으로 지난해 봄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기 위한 연습도중 제작불가 판정을 받았던 문제작이다. 오태석은 이 연극을 통해 뒤틀린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한다. … 오태석은 “이번 무대를 잘못 꾸미면 천년이 아니라 만년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국경제 1998년 4월 28일)


<천년의 수인>은 전혀 전통적인 소재가 아니면서도 극적 테크닉 면에서는 철저하게 전통적인 기법들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다. 프로시니엄 무대를 쓰면서도 객석을 제외한 3면의 상방팔방을 등퇴장로로 열어 놓아 마치 마당극과 같은 자유로운 출퇴를 보인다. 긴장과 이완의 흐름을 적절히 반복하는 장면 구성과 각 장면 안에서도 긴장을 자유자재로 풀었다 놓았다하는 방법은 역시 우리 전통극의 호흡을 따른다. 침상의 높이도 최대한 낮추어 배우들은 결국 서있거나 퍼질러 앉아야 자연스러운 우리네 고유한 행동양식을 편안하게 보여준다. 서양식 극장과 무대, 양복 일색의 의상, 가장 현대적인 역사를 다루는 가운데서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오태석은 진정 한국적 연극의 달인이다. (<공연과 비평>1998년 5-6월호, 김미도)

 

 

 

 

 

오태석 연극의 주된 테마의 하나는 ‘부권부재의 연극’이다. 그의 연극이 끊임없이 한국사회의 집단들의 위계질서의 정점에 있는 바람직한 모습의 가장, 군주, 지사들의 부재를 안타까와하는 부재의 유희이며 그 질서를 향유하지 못하고 박탈된 자들의 아픔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라면 저번<도라지>와 마찬가지로 이번<천년의 수인>도 결국 그 가치의 질서가 주는 화평함을 박탈당한 안두희, 광주진압군 장용구, 비전향 장기복역수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모두 총을 쏘라고 한 사람은 따로 있고 자신들은 그 하수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역사의 희생자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태석은 관객들이 안두희를 –더구나 자신을 윤봉길이나 김재규와 동일시하는 그를- 역사의 희생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는가? … (<객석>1998년 6월호, 김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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